한 지인의 식당 그랜드 오프닝 파티에 초대받아갔다. 오래전에 문 닫은 한 식당건물을 사서 보수 및 증축하는데 온갖 시행착오를 겪었다고했다. 따라서 예정일보다  2년이나 넘긴 후 아주 어렵게 오픈한 자리였다. 식당은 단독건물이었는데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됐다는 얘기를 뒤받침이라도 하듯 빼어난 인테리어를 자랑하고 있었다. 식당이 아니라 무슨 호텔같았다. 인테리어에 관심많은 나는 잔뜩 차려진 음식은 뒤로하고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하나하나 뜯어보고 들추어 볼 때마다 와아,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문 손잡이 하나, 화장실의 수도꼭지 하나도 예사롭지 않았다. 여지껏 가 본 식당 중 가장 멋졌다. 근사했다. 주위사람들도 모두 입을 모아 최고의 시설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화려하기 그지없는 식당안팎과, 테이블을 가득 채운 손님들과, 바쁘게 움직이는 종업원들의 모습을 보는데 가슴이 뭉클하면서 코 끝이 찡 해오는 거였다. 이렇게 문 열기까지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싶은 마음에. 그리고 그 고생끝에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멋진 식당을 세운 사실이 너무 뿌듯하고 기뻐서. 내 사업체도 아닌데, 그 식당에서 내가 앞으로 돈 벌 것도 아닌데 형연할 수 없는 기분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한국마켓이 있다. 한국인에게는 물론 타인종 손님들에게 널리 알려진. 우리 직장에서도 그 마켓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인근에서 제일 큰 규모를 자랑하는데다 항상 세일 품목이 있어 주류사회에 명성이 널리 알려진 것이다. 나는 그 마켓의 주인이 한국인이라는 게 참 자랑스럽다.  직장동료들이 그 마켓을 언급하는 일이 있을 때, 나는 침을 튀기며 자랑한다. 우리 한국인이 운영하는 마켓이라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가면갈수록 타 마켓과 경쟁이 치열해지는데( 최근에는  가까운 곳에더 큰 마켓이 들어선다는 소문도 있다) 별 탈없이 잘 꾸려나가고 있는지. 앞으로도 잘 꾸려갈 수 있을지. 그 마켓에 손님들이 북적대면 안도의 숨이 쉬어진다.  손님들이 많아 좁은 통로로 카트를 밀고 다니는 게 힘들 정도일 때도 짜증이 나기보다 흐뭇한 마음이 먼저 든다. 차로 자주 지나가는 거리에 위치한 한 대형 건축자재 판매점은 이상하게 늘 텅텅 비어 있다.  문 연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가끔 필요한 게 있어 들러보면 손님보다 직원들이 더 많다.  대낮같이 밝게 켜진 조명들과 난방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쉬어진다. 하루 전깃세만 해도 엄청날 텐데 어떻게 감당을 하나. 종업원들 월급이나 줄 수 있겠나. 정말 걱정이 된다. 그래서 전구 하나를 사더라도  반드시 그 곳으로 간다. 코스코가 훨씬 저렴하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남편을 설득해서. 지나가다 주차장에 차가 좀 있는 걸 보게 되면 안심을 한다. 이제 장사가 되는구나하는 안도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런 나를 두고 주위에서는 말한다.  “그렇게 안 해도 될 온동네 걱정을 다 하니 밤에 잠이 안 오지. 쓰잘 데 없는 걱정 좀 그만해. 걱정 안 해줘도  그 사람들이 당신보다 더 잘 먹고 잘 살아!” 아니다. 예전에는 안 그랬다. 나는 놀부 마누라같은 사람이었다. 심술 더럭더럭한 내 얼굴처럼 생긴대로 논다는 말이 적용되던 사람이었다. 누가 성공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심사가 꼬였다. 배가 마구 아팠다. 내가 두 손 놓고 방심하고 있는 사이 다른 사람들이 앞질러 가는 것 같아서. 그래서 그들의 성공을  폄하하기 바빴고 실패하길 은근히 빌었다. 그러다가 뭐가 잘 안 되고 있다는 얘길 들으면 얼마나 고소하던지.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나이들면서 그 꼬인 마음이 없어졌다.  대신 측은지심이 생겼다. 자비심이 생겼다. 너그러워지고 관대해진다.  내 주위 사람들, 정말로 모두모두 다 잘 되었으면하는 기원을 늘 하게된다. 좋은집을 샀다던가  비지니스가 잘 되고 있다던가 아주 훌륭한 배우자를 들였다던가하는 경사스런 소식을 들으면 그 좋은 소식을 들리게 하기까지의 노고와 수고가 안쓰럽다. 어쨌든 고생끝의 낙이 왔으니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한다.  안 좋은 소식에는  직접 당하고 있는 일처럼 낙심이 된다. 내가 원래 위로하고 격려하는 걸 어색해하는지라 직접 손 잡고 등은 두드려주지 못하지만 상대방의 슬픔과 아픔에 감정이입해 가슴이 아프면서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이런 마음은 주위사람들한테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은 좀 덜 한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왜 그리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많이 일어나는지. 뉴스로 이런저런 사건이나 사고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 특히 어린아이나 동물들과 관련된 비극적인 소식에.  나이가 들면 무덤덤해진다고 한다. 산전 수전 공중전 지하전 다 겪다 보니 크게 놀랄 일도, 크게 화 날 일도 없어진다나. 세상만사 다 그러려니 달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반대다. 날이 가면 갈수록 남의 슬픔과 기쁨이 더 진하고 깊게 가슴에 다가온다. 남의 일이 다 내일 같이 여겨진다.  누구 말대로 얼음같이 투명한 감수성을 가져서인가. 아니면 주책바가지여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