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한국에  다녀왔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살짝. 일주일 동안 살짝. 갈아입을 속옷이 든 작은가방 하나만 들고 살짝. 이웃집 다녀오듯이 살짝.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은 부담주기 싫고 부담받기 싫어서였다. 

내 주위의 정 많은 지인들, 나  한국간다하면 가만 있지 않는다. 죽어라 사양하는데도 차비에 보태라며 얼마라도 찔러 준다. 그걸 받으면 빈 손으로 돌아 올 수 없다. 답례로 뭐라도 사다줘야  노잣돈받은  도리인데 그게 귀찮다. 내 것은 물론이고 남의 물건사러 다니는 일이 너무도 귀찮다. 그리고 이제는 늙어서 손에 뭐 들고 다니는 것도 힘에 부친다.

말이 일주일이지 가는 데 하루, 오는 데 하루를 잡아 먹으니 정작 한국에 머무른 날은 닷새밖에 되지 않았다. 

가까운 산사로  나들이도 가고 제주도로 여행도 가고 소문난 맛집도 들리고  예전에 우리가 살던 집도 가보고 등등의 많은  스케줄을 짜놓았던 동생들과 친구들의 원성이 높았다.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 또 그러네. 예전부터 별난 것을 알긴 알았지만 정말로 별나고 별나다. 닷새 머물자고 그 비싼 비행기표 들여 서 그 먼 데서 날아왔나그래? 이렇게 짧게 있다 바람처럼 다시 떠나버릴 걸 뭐하러 오냐?” 

20여년만에 만난 박경숙이라는 친구는 비행기표를 물리고 며칠만이라도 더 있다 가라고 닥달했다. 다음에, 하고 나는 친구를 달랬다. 다음에는 반드시 넉넉한 일정을 잡아 올께. 그러나 나는 안다. 다음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역시 나는 닷새 이상은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 아버지가 생전에 늘 강조하던 말이 있다. ‘생선하고 손님은 사흘만 지나면 냄새 난다’는 말. 그러니 어딜 가서 오래 죽치며 민폐 끼치지 말라는 말. 

그 말이 명언이다. 만나서 처음에야 반갑겠지. 못 본동안의 밀린 얘기하느라 밤 새는 줄 모르겠지. 있는 것 없는 것 다 꺼내 최선을 다해 대접해주고 싶겠지. 

그러나 그 반가움이라는 게 오래 안 간다. 태산같이 밀린 얘깃거리도 하룻밤이면 다 떨어지고만다. 나눌 얘기거리가 궁색하니 서로 어색해서 하릴없이 텔레비젼만 쳐다본다. 그러나 텔레비젼 보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따분하고 지겹다.  그래서 뭐하고 놀까, 서로 눈치만 살핀다. 그렇다. 이제 서로 불편할 일만 남은 것이다.

특히 한국사는 사람들, 얼마나 바쁜가. 새벽같이 나갔다가 밤 늦게 들어오는 빠듯한 일상이다. 톱니바퀴같이 꽉 짜인  일상이 손님이 있으므로 해서 흐트러진다. 서로 못할 짓이다. 

그래서 나는 얼굴만 잠깐 보는듯 마는듯하고  떠나온다. 반 나절, 아니면 하루. 길어야 이틀이다.  반가운 마음이 희석되기 전에,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아쉬워할 때 떠나오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에 또 만나도 반갑지않겠나.

무엇보다 나는 ‘한국 체질’이 아니다. 한국에 발을 딯는 순간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고생스럽다. 

내 지인 하나는 한국이 세상의 천국같다고 말한다. 먹을 것 지천이고 생활시설 편리하고  물건들 저렴하고 언어가 통해서. 그러면서 자기는 한국체질이란다. 한 번 가면 보통 두 달은 머무는데 친구들, 가족들 만나고 맛있는 것 먹고 여행하느라 그 두 달이 짧단다.  돌아오는 날이 가까와지면 아쉬워죽겠단다. 그냥 평생 한국에서 머물러살았으면 좋겠단다. 그녀가 아니더라도 미국보다 한국이 훨씬 좋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미국살이가 체질에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나는 아니다. 나는 한국하고는 뭔가 잘 안 맞는 것 같다.

첫 번째는 한국에서는 잠을  못잔다는 것. 여기서도 쿨쿨 잘 자는 편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그야말로 긴긴밤을 매일 하얗게 새운다. 남들은 며칠이면 극복된다는 시차가 나는 미국에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인 것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머리는  멍하고 눈은 아프고 입맛이 없어진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구경도 못할 갖가지 음식들이 전혀 맛있는 줄을 모르겠다. 친구들과 동생들이 장어집, 꿩고기집, 한우불고기집 등 여기저기 데려가지만  잘 먹지를 않으니  그들은 대접한 보람이 없고 나는 그들에게 미안하다. 돈은 돈대로 아깝고.

게다가 생전 없던 변비마저 생겨서 고통스럽다. 여기서는 매일 가는 화장실을 한국에서는 돌아올 때까지 한 두번밖에 못 간다. 메일 하루도 빼지않고 하는 운동을  걸러서 그런가 싶은데. 한국에서는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니 어쩔 수가 없다.

전화만  있으면 다 해결된다는 한국의 배달문화도 별로 부럽지 않다. 노동강도와 시간에 비해 인건비가 턱없이 낮은 것 같았으므로. 배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기분이 들었으므로. 단돈 5 천원에 집채만한 상자를 택배로 부칠 수 있었는데 특정장소까지 무겁게 들고 갈 필요도 없었다. 전화 한통에 직원이 집에까지 와서 가져갔다. 인건비가 얼마나 싸면 저럴 수 있을까,  5천원 중에 택배직원에게 지불되는 돈은 얼마나 될까, 가슴이 아팠다.

마음이 또 아팠던 것은  한국에 갈 때마다 목격하는 불쌍한 개들. 일 미터도 안 되는 목줄에 매여 평생 산책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주는 밥이나 먹고 집지키는 용도로 쓰여지는 개들. 반면 차가 쌩쌩 다니는 길거리에 주인이 있는지 없는지 혼자 마구 돌아다니는 개들도 지천이었다.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하려고 개들을 찻길에다 풀어놓는지.

이런저런 일을 눈으로 보면서  스트레스받고 못 자고 못 먹고 못 싸다가 미국에 돌아오게되면 이 문제가 조금씩 해결이 되는 것이다. 누구 말대로 나는 ‘미국체질’인가.  건방지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