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친한 친구가 둘 있다. 

하나는  엄청 부자다. 십 몇년 전에 남편이 죽으면서 부자가 되었다. 엄밀히 따지면 친구가 수단이 좋아서 부자가 된 거라고 봐야한다.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작은 유산을 부동산시장에 잘 굴려서 수백억대의 부자가 된 것이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원룸과 상가에서 한 달에 천만원 가까이  렌트비가 들어 온단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더니 정말로 그런 것같다.

그러나 그녀는 돈에 굉장히 무섭다. 평생 써도 못 쓸만큼 돈이 넘쳐나지만  돈 쓰는 걸 죽기만큼 싫어한다. 본인한테 쓰는 것도 아까와하는 것이다.

자기는 근검절약한 사람이라고 뿌듯해하는데 내가 보기엔 근검절약이 지나쳐 궁핍에 가깝다. 궁상에 가깝다. 대화도 무조건 돈에 관한 거다. 어떤 방식으로 돈을 불렸고  일상생활에서 어떤 방법으로 돈을 아꼈는지가 제일 큰 주제요, 관심사다.

이번에도 그녀가 자랑스레 말했다. 깜빡하고 냉장고에 넣지 못하고 밖에 둔 밥이 쉬어 있길래 버리기 아까와서 물을 넣어 끓여서 먹었다고. 그렇게 또 한 끼를 떼웠다고. 

한 번 놓친 끼니는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도 있는데 그런 그녀가 나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그건 좀 지나치지 않냐고  한 마디했더니 그녀가 언성을 높였다. 

“내가 이룬 부가 그냥 저절로 된 건 줄 아니? 안 먹고 안 쓰고 쥐어짜듯해서 이룬 결과야!"

그렇게 지독하고 인색하니 옆에 사람이 없다. 몇 있는 형제와 친척과도 거의 절연하고 산다. 자기들 못 사는데 좀 안 나눠준다고 불평들을 해서 다 끊어버렸단다. 또한 괜찮은 남자가 다가와도 ‘이놈이 내 돈 보고 붙는 것 아닌가’ 겁이 나서 아예 시작을 못해 본단다. 소문에 들으니 자식 셋이  벌써부터 어머니의 재산때문에 암투가 치열하다고.  첫째와 둘째는 서로 의절단계까지 거의 갔다고 한다.

강아지랑 둘이 사는 게 얼마 재밌는데, 하는 그녀. 그녀의 얼굴에 묻어나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나는 보았다.

또 한 친구는 첫 번째 친구와 확연히 사는 방법이 다르다. 일단은 먹고 입고 쓰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용산의 미군부대에서 일한 엄마를 통해 어릴 때부터 미제물건만 섭렵해서인지 지금도 웬만한 한국물건은 거들떠도 안 본다. 내가 미국에 와 있나, 착각이 들 정도도 집안에 있는 물건은 온통 미제 일색이다. 

사실 그녀의 형편은 그리 썩 좋지 않다. 남편도 직장이 변변찮고 조기유학 보내 거의 이십년을 넘게 돈 퍼부우며 뒷바라지 했던 딸 마저 공부도 마치치 못하고 우울증을 얻어 몇 년째 집에 와 있고 그녀도 확실한 직장이 없다.

그런데도 그녀의 생활은 풍요롭다. 매일 저녁 미국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한다. 미국촌놈인 내가 듣도 보도 못한 비싼 미제화장품을 쓰고 있다. 

최근엔 2억을 융자내 집을 싹 고쳤단다. 아닌게 아니라  집이 좋다. 반짝반짝 새집 같다.

융자 빚은 천천히 갚으면 된단다.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니고 돈 모아 죽을 때 지고 갈 것도 아닌데 하루를 살아도 우아하고 호화롭고 편안하게 살자는 게 지론이라는 친구다. 

최근 미국인 10% 이상이 빚을 지면서 사치생활을 하고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뱅킹 어플리케이션업체인 ‘핀토닉’은 지난 달 25일,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미국인 8명 가운데 1명(약 12.5%)이 빚을 지더라도 호화로운 삶을 과시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이는 유명인들의 사치스런 삶을 미화하는 소셜미디어가 일반일들에게 호화로운 삶을 동경하고 경제력 능력이상의 소비를 부추기기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위의 두 친구를 만나고 그들의 삶을 비교하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빚을 지면서까지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올바른 삶의 자세가 아니었다. 그러나 돈을 쌓아놓고 있으면서 쉰밥을 버리지 않고 끓여먹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쪽에 서 있을까. 돈을 삶의 가장 우선 순위에 두고 사는 인색한 사람일까. 내일 일은 나 몰라. 에라,  어쨌거나 일단은 쓰고 보자 하는 규모없이 헤픈 사람일까. 그리고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살아가는 데 정답이 있을까마는 나는 두 쪽 다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얼마나 다행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