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씨의 강아지 ‘방울이’. 7파운드의 말티즈다.

W 씨 말에 의하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영리한 강아지란다. 내가 보기에도 방울이는 아주 영리하고 똑똑하다. 영리하고 똑똑하다 못해 영악하다. 암컷답게 애교도 많지만 조막만한 게 아주 앙칼지고 사납고 질투도 많다. 주인이 다른 강아지를 안아주거나 쓰다듬기라도 하면 난리가 난다.

우리집에 올 때마다 먹을 것 주고 안아주고 쓰다듬어 줘도 절대 곁을 안 준다.

우리집 강아지 ‘밍키’는 숫놈, 비숑 프리제다. 나이가 들기도 했지만 성격 자체가 조용하고 점잖기가 부처님이다. 방울이가 우리집에 놀러오는 날이면 밍키는 한 귀퉁이에 찌그러져 있어야 한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어쩐다더니 방울이가 하도 사나움을 부리니 기를 못 편다. 지가 가장 좋아하는 장남감을 방울이가 와서 확 채가도 멀거니 보고만 있다. 대항을 못한다.

W 씨가 가족여행을 떠나면서 보름동안 방울이를 맡게 되었다.

나는 별렀다.

'요놈의 기집애, 그동안 우리 밍키한테 잘도 패악을 부렸겠다. 내 앞에서 또 그러기만 해 봐라. 궁둥이를 팡팡 패 줄 테니...'

그런데 이게 웬일? 항상 기세등등하던 방울이가 우리집에 온 첫 날부터 예전 모습이 아니다. 자기 주인이 옆에 있을 때랑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걸 벌써 아는 것 같았다.  밍키를 질투하고 견제하는 건 여전했지만 눈에 뜨이게 풀이 죽고 고분고분해진 것이다. 또한 내가 지 보호자라는 사실을 벌써 인지했는지 나한테 ‘충성’한다. 내 꽁무니만 졸졸 따라 다닌다. 한밤중에 깨서 다시 잠 못 들 것같으면 살금살금 침실을 나와서 컴퓨터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무심코 보면 언제 따라왔는지 방울이가 내 발옆에 엎드려 있다.

나는 적지않게 놀랐다. 동물들에게도 감정과 느낌이 있다는 사실은 진즉 알았지만 ‘눈치’도 있다는 것을 방울이를 통해 알았던 것이다.  

최근, 미씨에서는 한국의 유기견들을 미국으로 입양하는 일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여러 동물보호소에는 어릴 때 예쁘고 귀엽다고 사거나 분양받아 키우다가 귀찮다고, 이사간다고, 임신했다고, 배변을 못가린다고, 등등 온갖 이유를 들어 내팽개쳐진 강아지들이 넘쳐난단다. 한국의 살인적인 추위와 더위 속에서 1미터도 안 되는 목줄에 묶여있거나 철창에 갇혀 안락사 당하기만 기다리고 있는 그 불쌍한 강아지들. 그 강아지들을 미국의 한인가정에 입양시키는 일을 ‘보담’이라는 단체와 기타 여러 단체 자원봉사자들이 전담하고 있다고 한다.

첨엔 그 사진들을  올라오기가 무섭게 클릭클릭해서 보았다. 안타까와하면서, 그 동물들을 그렇게 유기한 인간들에 대해 분노하면서. 그러나  요즘은 그러지 못한다. 사진이 올라오는 횟수에 비례해 입양되는 숫자가 적은 것 같아서. 그래서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나서.

모두들 나처럼 안타까와만하지 선뜻 입양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사정때문에.

작년 봄, 내 막내동생이 국회의원에 출마한다 했을 때 지나가는 소가 웃겠다고 비야냥거렸었지만 속으로는 당선되기를 바랐던 게 사실이었다.

주위 할배들 말대로 ‘국회의원 누나’ 소리를 듣고 싶어서? 절대 아니었다. 하루라도 빨리 ‘동물보호법’을 제정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개,고양이의 주인 등록제를 실시하고 중성화 수술을 의무화해서 기하학적인 번식을 막게하고 유기하거나 학대하는 인간들은 무거운 형벌로 다스리는 법을 만들어 주기를 바라서.

동생은 보기좋게 선거에서 떨어졌고 한국의 동물들은 여전히 지옥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방치돼 있다.

동물과 어린이의 위상을 보면 그 나라의 국민수준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어린이에 대한 복지는 점점 개선되는 것 같다. 그런데 어찌 동물들에 대한 대우는 생전 나아지지 않는지. 말 못하는 짐승이라서? 말은 못해도 감정은 있던데. 슬프고 기쁘고 미안하고 고맙다는 거 다 알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