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부서가 옆 건물로 이사한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잠을 못잤다. 몇년동안 정든 내 자리, 몸에 맞는 옷처럼 편안하고 아늑한 내 자리를 떠나는 게 싫어서.

또한 새로 배정 받는 자리가 어디가 될 지 걱정도 되었고 앞, 옆 뒤의 새로운 동료들과 다시 사귀어야 하는 것도 성가시고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었다.

나는 익숙한 게 좋다. 변화가 싫다. 그렇지만 회사의 방침이니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다.

새 건물로 가서 내 자리를 확인하는 순간 나는 으아악 비명을 질렀다. 이런 불운이 있다니! 수퍼바이저 바로 옆이었다. 넓은 사무실 안의 많고 많은 자리 중 하필이면 수퍼바이저 옆!

고백하자면 나는 업무 중 틈틈이 개인적인 일을 많이 한다. 웹 서핑이야 기본이고 신문 보고 책 보고 손 발톱 손질하고 눈썹 다듬고 머리도 자르고. 수퍼바이저 옆 자리면 그런 일을 못할 게 아닌가. '꼼짝마라' 아닌가. 감옥살이 아닌가.

나는 수퍼바이저에게 읍소했다. 당신 옆에서는 불안해서 죽어도 일을 못할 것 같으니 제발 옮기게 해달라고. 내 읍소가 통했다. 그는 창가쪽에 자리가 하나 비니까 정 그러면 그리 가라고 순순히(워낙 내가 우수 직원이어야지!) 허락을 했다. 출입문이 가까워 오가는 사람이 신경쓰이긴 할 거라면서.

어디든 좋았다. 수퍼바이저 옆만 아니라면! 나는 얼씨구나 얼른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며칠 안 가 금방 안정을 되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자리를 옮기고부터 매일 마음이 착 가라앉는 것이다.

숲 때문이었다. 창밖 왼쪽으로 끝간 데 없이 넓은 들판이 펼쳐졌는데 습지라 이 지독한 가뭄에도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다. 그 숲만 바라보면 마냥 허허로웠고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저 숲은 사시사철 푸르고 푸른데 우리 인생은 잠깐 푸르렀다가 덧없이 스러지는구나 생각하니 그 허망함에 가슴이 저렸다.

지난 며칠간 비가 올 듯 날씨가 잔뜩 흐렸는데  회색빛 하늘과 숲을 쳐다보다가 눈물까지 흘렸다.

이상하게 나는 다른 사람과 느끼는 게 다르다.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

푸른 숲에서 생동감을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나는 우리의 연기같고 허상같은 인생을 본다.

결혼식장의 신랑 신부를 보고 사람들은 '행복'을 떠올리는데 나는 '결혼생활의 고난'을 먼저 생각한다.

아기의 천진난만한 얼굴에서도 앞으로 겪을 이 풍진 세상의 수많은 시련과 위기가 걱정된다.

좋은 풍경, 이를 테면 바다나 산이나 일몰이 아름답다든가 멋지기보다 쓸쓸하고 고독하다. 이렇게 써놓으니 내가 비관주의자나 시니컬한 사람같은데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다.

유쾌하고 명랑한 사람일수록 외로움을 잘 탄다고 한다. 햇빛이 강렬할수록 그늘이 짙은 것처럼. 내가 그렇다. 외부로 드러나는 것과 정반대의 이율배반적인 사람이 나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변덕은 죽끓으면서 변화는 왜 싫은지. 혼자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하면서 사람들 끌어모으는 일에는  왜 늘 앞장서는지. 남의 사정 잘 헤아리고 인정도 많으면서 가끔은 표독스런 말로 상처주는 건 뭔지. 물건에 대한 집착은 없으면서 사람한테 미련은 왜 못 끊는지.

최근 책을 좀 샀다. 그중 몇 권이 심리분석에 대한 책이다. 나를 알고 싶어서다. 나도 모르는 나를 알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