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케이스 하나를 점검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한 여성의 열 살, 여덟 살, 일곱 살, 네 살 아이의 아버지가 각각 다 다르다는 것이었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정부혜택 프로그램에서 일하다 보니 별별 희한한 사람들의 케이스를 다 보게 되지만 네 아이의 아버지가 모두 다른 경우는 처음이다.

한참이나 케이스를 들여다 보다가 옆의 동료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동료는 내 얘기를 듣더니 별 것 아니라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

"뭘 그걸 가지고 그러냐. 내 사촌 여동생은 아버지가 다른 아이를 다섯이나 가지고 있는데....."

문제는 그 다섯 아이의 아버지가 다 그렇고 그런 뻔한 사람들이어서 양육비를 한푼도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료의 사촌은 정부에서 지급하는 생활보조금에 의지해 근근히 살아가고 있단다.

이제 제발 더 이상 아이를 낳지말아야 할텐데, 하면서 동료는 다시 한숨을 푹 쉬었다. 지금 걱정이 태산이란다. 그 사촌동생이 또 한 남자와 한창 데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열 여섯살인 큰 아이와 몇 달 전에 막 돌을 넘긴 막내등 다섯 아이들을 잘 돌보지도 못하면서 조심성이라곤, 생각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사촌 동생이 다시 임신할 가능성이 불 보듯 뻔한 까닭이라서.

"지치지도 않는지 쉬임없이 연애를 하고 끊임없이 아이를 낳네 그려. 아이를 낳았으면 아이 아버지와 끝까지 좀 진득하게 살아야 할 것 아니야. 스타킹 갈아 신듯 걸핏하면 남자를 갈아 치우는 것까지는 좋다 이거야. 그런데 아이는 왜 그리 낳아대는지. 까딱하다간 아버지 다른 아이 열을 낳게 생겼다니까....."

동료의 사촌동생은 이제 겨우 서른 살이라고 했다. 서른 살에 열여섯 살이나 먹은 큰 아이가 있다니. 그렇다면 그 여자는 열네 살에 첫 아이를 낳았단 말 아닌가. 남미 쪽의 여성들이 성적(性的)으로 자유롭다는 것은 일찌기 알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열네 살에 아이라니!

작년 봄 무렵,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인공수정으로 세 아이를 임신한 직장동료 C가 있다. 멕시코인 여성이다.

C는 아이들을 낳기 몇달 전 직장을 그만두었다. 양육보다 일하는 게 더 좋아서 아이들 낳고 젖 떼고나면 다시 직장에 복귀한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그런데 최근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녀의 생활이 지금 말이 아니라고 했다. 왜냐면 C가 세 아이를 출산하는 것과 함께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열 여덟살 딸도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란다. 워낙 깡마르고 작은 아이라서 임신한 줄도 몰랐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연락이 와 쫒아가보니 임신 막달에 이르렀더란다.

C의 딸 역시도 아이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했고 C는 졸지에 네 아이의 양육을 떠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를 출산한 C의 딸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여전히 이 남학생 저 남학생과 데이트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단다. 그래서 C는 늘 노심초사하며 딸을 감시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딸이 또 임신할까 봐.

내가 알기로 C 역시 고등학교 때 지금의 그 딸을 낳았다. C도 딸의 아버지를 몰랐고 C의 어머니가 C의 딸을 거의 다 키우다시피 했다고 했다. 자신의 전철을 똑같이 밟고 있는 딸을 보면서 C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각 나라의 문화와 풍습이 다르다고 하지만 어린 나이의 처자들이 아버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마구 낳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여자 남자 만나  사랑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그리고 태어나는 아이에게도 참으로 거룩하고  특별한  일이어야 할진대 마치 편의점에서 음료수 한 병 사듯 쉽게 섹스하고 쉽게 아버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아대는 것, 문란하고 방종한 생활의 부산물이라고밖에 볼 수 없지 않은가.

비일비재한 일련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아직까지 우리 나라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아는 민족들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국에서도 주위를 놀래키는 여성들이 가끔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극히 일부분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기면 당사자는 부끄러워 할 줄 안다. 여기처럼 '소 왓?'하고 활개를 치고 다니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어쩌니저째니 해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다. 참으로 건강한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