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미인 직장동료가 요 며칠 신이 나 있다. 새 여자친구를 사귀었냐, 왜 그리 기분이 좋냐고 물었더니 이번에 세금보고를 했는데 리턴을  5천불이나 받게 생겨서 그렇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 5천불로 하와이에 일 주일동안 놀러 갈 계획을 짜고 있다고 했다.  

한숨이 푹 나왔다. 빈민 아파트에서 차도 없이 버스타고 다니며 겨우 사는 놈이 돈도 들어오기 전에 쓸 연구부터 하는 게 한심해서. 나는 부드럽게 타일렀다.

“야, 하와이는 신혼여행지로 가게 남겨두고  일단은 그돈을 저축하는 게 좋지않겠냐””

 내 말에 그가 펄쩍 뛰며 되물었다.

“저축을 왜 하는데?  내일 내가 죽으면 그 돈을 어쩌라고? ”

 내 아는 여성은 집이 세채다. 그동안 죽을둥 살둥 일해서 두채의 페이먼트를 끝냈고 이제 한채가 남았단다. 몇년만 더 고생해 세번째 집의 페이먼트를 모두 끝낸 후 은퇴할 거라고 했다. 세 집에서 나오는 렌트비가 꽤 되니 여행도 가고 유명한 식당도 찾아다니며 유유자적한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문제는 그녀의 나이다. 내일 모레 일흔인데 만날 때마다 급속도로 노쇠해가는 게 눈에 보인다. 이제 곧 다리힘도 풀릴 텐데 여행을 다녀봤자 얼마나 다닐 수 있을까. 나이들면 입맛도 떨어진다는데 맛있는 걸 먹어봤자 얼마나 먹을 수 있을까. 적당히 하고  더 늦기 전에 지금 인생을 즐기면 좋을 텐데 안타깝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면서 아둥바둥해야 하는지 불확실한 미래를 기약하기보다는 오늘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지가. 어느 게 옳고 그러다고 할 수가 없는 게 개인마다 인생의 우선 순위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나는  있으면 일단 쓰고 보자는 주의다. 남편 역시 그렇다.  꽤 버는데도 우리집 살림이 늘 요 모양 요꼴인 것은 둘다 경제관념이 없기에.  너무 헤픈 것 아니냐고 우리에게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개미처럼 죽을 둥 살 둥 열심히 일해 크게 재산불려놓고는 한번 맘 놓고 써보지도 못하고 세상 떠나는 사람들을 여럿보면서 아, 돈이란 있을 때 써야겠구나 하는 진리를 일찍이 깨달았다.

또한  나만, 내 가족만  애면글면 챙기다가  가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무의미할까 하는 기특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주위사람들에게 많이 베풀고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데는  조금이라도 보태준다. 도네이션 잘 한다 소문나니까 여기저기 한인 단체에서 손 벌려서  탈이긴 하지만.

참 다행으로 생각하는 게 내게 큰돈은 없어도 주머니에  푼돈은  마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입이 커서 평생 궁하지는 않을 거라는 어릴 때의 점쟁이 말이 맞는 건지.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반추해 볼 때 돈 쓸 때 못 쓰거나 안 써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필요하다 생각될 때는 아낌없이 썼다. 그런 덕분인지 사람들로부터 인색하다고 욕 먹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이만하면 잘 살고 있는 거지 뭐.

한가지 바람은 나 죽고난 뒤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는 것이다. 적어도 아이고, 그 인간 속시원하게 잘 죽었다는 소리보다는  주위와 사회에 보탬되던 아까운 사람죽었네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할 텐데.

죽고 난 뒤 남들이 뭐라하든  알게 뭐냐면 할 말 없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