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잘 벌지요, 잘 생겼지요, 비바람 몰아치는 늦은 밤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가서 차에 기름 넣어다 주지요, 금방 구입한 새 차를 몇 번씩이나 들이받고 와도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지요. 그런 좋은 남편을 둔 이계숙씨야말로 성공한 인생이지요..."

얼마전,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은 혼자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공은 못하고 요 모양 요 꼴로 산다고 한탄했던 내 글에 오클랜드의 ‘친필 편지 독자’가 보내온 편지 중 일부분이다.

 그녀는 말했다. 

“한 가지도 잘 하는 게 없는 남편과도 군소리 없이 몇 십년을 살고 있는데 그렇게 좋은 남편을 둔 이계숙씨는 대박터졌죠”

대박 터졌다는 말, 주위사람들로부터도 종종 듣는 얘기다. 이 작달막한 키와 오종종 못난 인물 어디에 큰 복이 들어서 부처님같이 어질고 선한 남편만나 마음대로  활개짓하고 사냐고.  글쎄다, 과연 그럴까.

늦은 나이에 재혼한 부부가 있다.

남편이 천하의 호인에다 자상한 사람이다. 새로 얻은 부인을 극진히 위하는 게 눈에 보인다. 왜 진즉 안 만났을까, 싶을 만큼 남편이 부인에게 잘 한다. 완전 공주대접이다. 내가 부인에게 말했다.

"남편이 그렇게 잘 해주니 얼마나 좋아요?"

 부인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직접 살아봐라, 살아 봐."

한 할배의 부인은  정말로 나무랄 데 없는 만점 여자다. 얌전하고 조신하고 겸손하고 예의 바르고. 그 할배는 부인때문에 속 썩을 일이 거의 없었을 것 같다. 그런데 할배는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많은가보다.

"겉모양만 보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 그러나  같이 살아봐라, 살아 봐. 과연 그런가. 안 살아보면 절대 모르지...."

할배의 말인즉 부인이 얌전한 것은 좋은데 앞 뒤로 꽉 막혀서 숨통터진단다. 그러니까 융통성이라고는 손톱만치도 없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말을 해주면서 가르쳐야 한단다. 지금껏 뭐 하나  척척 알아서 하는 게 없단다. 

우리는 남의 배우자를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객관적인 잣대로 평가한다. 저 집 부인은 화통한 성격이니 생전 남편에게 작은 일로 잔소리같은 것은 안 하겠지? 저 집 남편은 가정적인 남자이니 부인말이라면 다 듣겠지?

사실 내 남편도 객관적으로 보면  80점은 될 수 있는 남자다. 그러나 같이 살고 있는 나한테 점수를 주라면?

이 남자는 게으르다. 아니, 게으라기보다는 집안일에는 아예 무관심이다. 누차 얘기했지만 집에서는 손가락도 까닥 안 한다. 커피 한 잔도 제 손으로 내릴 줄 모른다.

휴일 아침의 커피는 전적으로 내 담당이지만 가끔 글 쓰는 작업에 몰두하느라 미룰 때가 있다. 차마 커피내리란 소리는 못하고 내 주위만 뱅뱅 도는 남편. 

한 번은 글 쓰는 게 중요하기도 했지만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하고 끝까지 커피를 내려주지 않고 모른 척 한 적 있었다.  그랬더니 이 화상, 하는 꼴 좀 보소. 어떻게 해서든지 한 번 해 볼 생각은 안 하고 차를 몰고 나가더니 커피를 사가지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뿐이면 내가 말을 안 한다. 잔디가 키 만큼 자라 호랑이가 새끼를 치게 생겼어도 나 몰라라고(그래서 사람을 쓰고 있지만)일주일에 한번 쓰레기통 내가고 들여오는 것도 잔소리 안 하면 평생 먼저 안 한다 (내가 달려들어 해 치울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남자가 해야만 할 것 같아 죽어도 시키는데 성질 급한 나는 속 터져 죽는다).

절약에 관한 관념은 아예 없다. 한겨울에 반팔 옷 입고 히터를 최고로 올려 놓질 않나, 가주 전역이 가물어서 난리일 때도 수도물을 마냥 틀어놓은 채 면도를 한다. 불 한 번 켜면 생전 끌 줄 모르는데다  돈은 또 얼마나 허투루 쓰는지 필요도 없어보이는데 마구 사들인 물건들이 방으로 하나다. 그 물건들을 볼 때마다 무소유를 주장하는 나는 숨이 막힌다.

정리정돈에 대한 개념은 엿 바꾸어 먹은지 오래라 칼같이 정리해놓은 옷장이 그의 손을 한번 탔다하면  전쟁터가  된다.

반듯하고 깔끔하게 생긴 외모와는 상반되는 생활습관을 가진 사람이 내 남편이란 사람이다. 아이고, 써놓고보니 정말 숨통 터지네.  정말이지 이런 거지같은 생활습관을 가진 사람인 줄 살아보기 전에는 몰랐다. 진짜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