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미씨유에스'를 알기 전인 10여년 전, 나는 한국에 거주하는 주부들만을 대상으로 한 웹사이트의 단골손님이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거기서만 시간을 보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당시만 해도 회원 가입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되고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누구나 마음대로 의견을 펼칠 수 있는 사이트였다. 아이디만 하나 만들면 그 아이디만 가지고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었던 곳이었던 것이다. 

그 사이트에 '욕방'이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말 그대로 주부들이 결혼생활과 시집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욕을 하며 풀 수 있는 곳이어서 최고의 인기였었다.

어느 날 그 욕방에 혜성처럼 짠, 하고 나타난 스타가 있었으니 아이디가 '컵라묜'이었다. 컵라묜은 매일 술만 먹고 다녀 속을 썩힌다는 그녀의 남편을 자주 글에 등장시켰다. 남편을 지칭하는 말은 '사발묜'이었다.

컵라묜은 일기를 쓰듯 매일 욕방에 글을 올렸다. 그녀가 올리는 글만으로  매일 생활을 모두 짐작할 수 있을 만큼이었다. 지나치리만치 솔직하고 정제를 하지않아 약간은 거친 듯한 그녀의 글은 늘 인기였다. 글만 올렸다하면 댓글 수백개가 삽시간에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리곤 했다.

그러나 그 댓글의 반 이상은 컵라묜을 욕하고 공격하는 악성 댓글,이른바 악플이었다. 공격을 받을  만한  글이 아닌데도 단순히 컵라묜이 썼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악플도 꽤 많았는데 어떤 건 내가 봐도 무섭고 섬찟할 정도였다. 정상인이라면 입에 담지도 못할 욕과 흉악한 말들. 운영자는 분명 그런 글들을 읽을 건데 여과할 생각을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그렇게 심한 말들을 마구 쏟아놓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어떤 삶을 사는 사람들인지 나는 참 궁금했다. 앞에 나서서 하라면 절대로 하지 못 할 일을 상대방이 나를 알 지 못하니,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니  맘 놓고  손가락을 놀리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손가락으로 죄를 짓고 있는 거였다. 비겁하게도, 비열하게도 컴퓨터뒤에 숨어서.  사악한 웃음을 날리면서.

우리의 컵라묜은 꿋꿋하기도 했다. 구정물을 뒤집어 쓰듯 무시무시하고 더러운 악플을 매일 뒤집어 쓰면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녀가 딱했다. 시집과 남편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풀 양으로 글을 쓰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아이디를 바꾸어 가며 써도 될 텐데 누구에게나 각인되어 있는 컵라묜이란 아이디를 고정해 쓰면서 왜 욕을 먹는지.

그러나 나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컵라묜을 옹호하지는 않았다. 안타까와만 할 뿐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 방관자로만 일관한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부터 나는 남의 글에 일절 댓글을 달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달 월급을 통째로 술집에 갖다준 사발묜때문에 곧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다는 컵라묜의 글이 올라왔다.  물론 수백개의 리플이 달렸는데 역시 이번에도 반 이상이 악플이었다. 그런데 컵라묜의 그 글 마지막 부분에 이런 표현이 있었다.

'어느 추운 겨울 날 서울 역 앞 지나가다 컵라묜, 사발묜 두 개가 붙어서 오들오들 떨고 있거든 부디 그냥 가지 말고 뜨거운 물이나 한 컵 부어 주고 가소'

아, 그 절묘한 표현력이라니! 나는 그녀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당장 그녀의 팬이 되기로 결심했다.  컵라묜을 그 더러운 악풀구덩이에서 지켜내기로  작정하고 내 아이디를 '컵라묜 열혈팬'이라고 정했다. 그때부터 나의 이 뛰어난(?) 글 솜씨가 빛을 발했다. 컵라묜의 글에 달리는 악플들을 모조리 초토화시켜버린 것이다.

그 일로 인해 컵라묜과는 가끔 전자우편을 주고 받으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몇년 전에 엘에이 지역으로 이민을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얼마나 반가왔어야지.

컵라묜이라는 우스꽝스런 아이디와는 달리 그녀는 청순하고 아름다운 여성에게나 어울릴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나는 내 소설의 주인공 이름으로 쓰기도 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제일 크다는 포털 사이트에 글을 두 편 올린 적 있다. 중앙일보에 쓴 칼럼 두 편이었는데 당시 막 오픈한 내 웹 사이트를 홍보할 목적이었다.

글을 올리자마자 조회 수가 무서울 정도로 올라갔다. 마치 뜨거운 물 속에 꽂은 온도계같이. 단 이틀만에 조회수 수십만을 넘었고 '최고 조회를 기록한 글' 1,2등에 나란히 순위가 매겨졌다.

그러나 그 이후 두 번 다시 포털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때 내 글에 달린 악플의 끔찍한 기억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참으로 강하고 무딘 사람인 줄 알았었다. 이계숙 씨는 얼굴이 무기네, 입이 메기같이 생겼네, 어쩌고 외모를 비하하는 말을 듣고도 하하하,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까. 고백하건대 그런 말은 내게 아무런 상처를 주지 않았다. 그러려니했다. 그러나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글로서 나를 비난하는 말은 비수가 되어 나를 찔렀다. 그리고 그 찔린 곳은 지독하게 아프고 쓰라렸다.

단지 본인들과 견해가 맞지 않는다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 하나로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난도질 당했던 나는 내 글에 달린 악플에 대항할 생각조차 못하고 너무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며칠동안 잠을 설쳤었다. 컵라묜에 달린 악플에는 씩씩하게 나서서 응징했던 나였지만 막상 내 글에 달린 악플에는 같이 싸워볼 염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오래전, 한 여배우의 죽음을 놓고 악플방지법을 시행하네,마네, 의견이 분분하더니 곧 잠잠해졌다. 그 여배우의 죽음이 악플때문이라는 주장에는 백프로 동감하지 않지만 악플이 그녀의 영혼을 많이 황폐화 시켰을 거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잠깐 동안의 악플에도 나는 죽을 듯 그렇게 괴로웠는데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거의 매일 연이어 달리는 악플에 그녀의 심경이 오죽했을까.

말로 받는 상처보다 글로 받는 상처가 더 치명적이라는 것을 오늘도 하릴없이 여기저기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반드시 인지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