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내 상사가 요즘 무척 바쁘다. 자리를 비우기 일쑤에다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늘  유쾌하게 하던 사람이 매일 심각한 얼굴이다. 참다못한 내가 물었다.

“뭔 일 있냐?  애인과 결별이라도 했냐?”

내 말에 그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최근 회사가 개발한 새 프로그램에 종사할 사원을 뽑는 일을 책임맡아서 스트레스가 많다고. 하루 열 서너명의 지원자를 인터뷰하고 있는데  20분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을 잘 파악해 적임자를 선별하는 게 참 어렵다는 것이다.

그럴 것이다. 경력이나 학력이야 서류를 들여다보면 되지만 인성이 갖추어진 사람인지 대인관계에 별 문제가 없을 사람인지 겉만 보고는 제대로 알 수 없으니 고충이 크겠다. 더구나 직장 인터뷰를 하러오는 사람은 자신의 최상을 보여주기 위해 의상, 말투, 행동 등에 최대한의 노력을 한다. 본 모습을 감춘다. 그런 중에 쓸 만한 사람을 골라내는 일이니 오죽할까.

예전에 한국 어떤 그룹 회장은 관상가를 기용하여 신입사원 면접을 보게 했다고 한다. 믿고 아꼈던 사람들한테  얼마나 실망을 많이 했으면, 얼마나 배신을 많이 당했으면 그랬을까.

  사람을 선별한다는 일, 참으로 어렵다. 배신하고 속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들이 ‘나 이렇게 나쁜 사람이오’하고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지는 않으니까. 아니, 대체적으로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남들한테 참 잘 한다. 간이라도 빼 줄 듯 싹싹하게해서 환심을 사고 믿게 만든다.  그러다가 이해관계가 얽히기 시작하거나 자기가 궁지에 몰리면 그동안의 친분관계고 나발이고 다 무시하고  감추고 있던 날카로운 발톱을 꺼내어 확 할퀴거나 뒷통수를 퍽 치는 것이다.

최근에 희한한 거짓말로 나를 음해해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A , 그 사람을 많이 믿었다. A랑  가깝게 지내다가 이미 봉변을 당했던 사람들이 나한테 수십번 귀띰을 했다. 거짓말 박사다. 절대로 믿을 사람이 못 되니 멀리해라.  모진 놈 옆에 있다 같이 벼락맞는다.

나는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한가지 흉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주위사람 말을 들을 걸. 최근에 나도 당했다. 시작은  A가  B와  합세해 먼저 벌였다. 그러다가 난처하고 곤란한 지경이 되자 나한테 다 뒤집어 씌운 것이다. 나는 혼자였고 그 쪽은 둘이었다.  B라는 사람 또한 말 잘 바꾸고  거짓말 잘 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조금만 자기가 불리하다 싶으면 ‘기억이 잘 안난다’는 말로 일관하는 사람이었다.  한국 국회 청문회도 아닌데  분명히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두 눈을 뜨고 있었고 귀를 열어놓고 있었으면서 기억 안 난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데는 당할 수가 없었다. 나 혼자 바보가 될 수밖에.  

  나는 울었다. 억울하고 분해서. 식음전폐하고 가슴을 치면서 울고 또 울었다. 유서쓰고 죽을 생각까지 했다. 내가 죽으면 이 원통함이 풀릴까. 하늘에 맹세코 나는 위기를 모면하고저 남을 이용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곤란을 당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얘기했다. 그게 ‘양심’이라 생각하므로.

 속을 끓이면서 나는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일을 당할까. 사람사는 일은 다 똑같고 나쁜 사람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면 어떻게 해결을 할까. 그냥 시간이 해결하기를? 고소?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것? 혼자 구석방에서 울면서? 같이 물어뜯고 싸워? 그 어떤 방법도 가슴 켜켜이 쌓인 억울함을 시원하게 해소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책 제목이 있었으니 돌아가신 박완서 작가의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하는 것이었다. 

그래, 하늘이 알아주겠지, 내가 결백하다는 것. 그리고 저희들도 알겠지. 양심을 속이고 있다는 것. 그러면 됐다.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아니까. 숨이 막힐 정도로 분하지만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아니까 이제 그만 잊을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