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K씨의 차를 탄 적이 있었다. 최근 이사한 젊은 J씨의 집들이에 같이 가기 위해서였다. 차에 오르자마자 귀에 익숙한 노래가 조용하게 흘러나왔다.

웬일이셔, 아자씨? 뽕짝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이런 차분하고 서정적인 노래를 다 들으시고, 했더니 내가 그 노래를 제일 좋아한다기에 때맞춰 틀었단다. 아이고, 황송하기도 해라. 신문지를 덮어야 한다는 둥, 얼굴이 무기라는 둥 늘상 나 놀려먹는 데만 일등인 줄 알았더니 이런 섬세한 배려도 할 줄 아네.

K씨가 그날 날 위해 틀었던 노래는 유익종씨의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였다.

가만가만 읊조리는 듯한, 속삭이는 듯한 가수의 음색도 좋지만 진정 좋아하는 사람이면 ‘아무 짓’ 하지 않고 보고만 있어도 충만할 수 있다는 가사 내용이 무척 마음에 든다. 특히 ‘창문 흔들리는 소리에 돌아보는 마음’이라는 구절은 들을 때마다 서늘히 와 닿는다. 누구를 좋아하면서 나도 그랬던 적이 있기에.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에도 가슴이 떨리던, 그런.

지지난 달 천주교회에서 있었던 파티에서 이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었다. 사회자가 제일 먼저 내 이름을 불러서 얼떨결에 무대에 올라가긴 했지만 사실은 앞이 캄캄했었다. 자신있게 부를 줄 아는 노래가 전혀 없어서.

무슨 노래를 할 거냐는 사회자의 물음에 대답을 제대로 못하고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객석에서 누군가가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를 외쳤다. 아참, 그 노래가 있었지! 사회자가 반주를 넣으며 말했다. 작년에도 이곡을 부르지 않았어요? 기억력도 좋지. 그랬다. 작년에도 나는 그 노래를 불렀었다.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이다. 발표된 지 적어도 30년 이상은 된 것 같은데 최근에 나왔다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세련된 노래다. 이 노래 역시 가사가 마음에 든다. 이별에 관한 노래가 많고 많지만 이 노래 가사는 정말 애절하고 비장하다.

너를 보내는 들판에/ 마른 바람이 슬프고/ 내가 돌아선 하늘엔/ 살빛 낮 달이 슬퍼라/ 오래도록 잊었던 눈물이 솟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가거라 사람아 세월을 따라/ 모두가 걸어가는 쓸쓸한 그 길로/ 이젠 그 누가 있어 이 외로움 견디며 살까/ 이젠 그 누가 있어 이 가슴 지키며 살까/ 아~ 저 하늘의 구름이나 될까/ 너 있는 그 먼 땅을 찾아 나설까/ 사람아 사람아 내 하나의 사람아/ 이 늦은 참회를 너는 아는지.

이 노래는 온갖 인생의 희노애락을 겪은 것 같은 모습의 임희숙씨가 재즈 가수처럼 깊고 진중한 음색으로 불렀다. 약간 쉰 듯한 그녀의 목소리는 이 무겁고 음울한 노래의 특징을 잘 살린 것 같다. 몇 명의 다른 가수들이 부른 노래를 들어보았는데 임희숙씨처럼 처연하고 절절한 느낌이 묻어나지 않았다.

유튜브에 들어가면 한시라도 다시 들을 수 있고 콤팩트 디스크도 가지고 있지만 나는 가능하면 위의 두 노래를 듣지 않으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다. 늙는 증상인지 노래가 시작되기 전의 반주만 들어도 그냥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이 난다. 그리고 노래방에서도 잘 부르지 않는다. 분위기 깨는 노래, 청승맞다고 구박받기 딱 좋은 노래라서 그렇다.

흐르는 세월에 따라 성격도 변하고 취향도 변하고 좋아하는 노래도 변하지만 내 가슴에 항상 남아 있는 노래, 내 인생의 노래를 꼽으라면 주저않고 위의 두 노래라고 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