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내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프로그램 가입자의 주소 확인이다.

월말이 되면 수만통의 서류가 발송되는데 이중 일부는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온다. 그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 현주소를 확인하고 그중 주소가 바뀐 사람은 업데이트 시킨다.

그런 일을 하던 중 최근에 두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었다.

하나는 집 전화 없이 휴대전화만 쓰는 사람이 엄청나다는 사실이다. 이 추세로 가다간 집 전화도 공중전화처럼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또 다른 하나는 다른 주(州)로 이주한 사람들 수가 꽤 많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를 떠났으면서도 기존의 휴대전화 번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로 부터 알아낸 사실이다.

통화 내용이 다 녹음되므로 일에 관계된 것 외엔 다른 말을 일체 할 수 없게 되어있지만 나중에 산수갑산을 가더라도 궁금한 걸 참지못하는 나는 물어본다. 왜 캘리포니아를 떠났냐고.

그러면 그들은 별 거부감없이 이유를 말해 주었다.

그들이 말하는 이유 중에는 이직(移職)이 많았다. 캘리포니아서 받는 급료로는 도저히 생활이 안 되어서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같은 연봉을 받더라도, 아니, 좀 덜 받더라도 세금과 물가가 높지 않은 주를 찾아서 떠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형평성 없는 정부 정책에 신물이 나서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많았다.

30년을 일하면서 꼬박꼬박 세금을 냈는데 정작 자기가 실직해 정부 혜택을 좀 받으려니 온갖 까다로운 조건을 다 내걸더라며 '갓뎀 캘리포니아'라고 욕을 퍼붓는 이도 있었다.

그는 '캘리포니아에 기여한 일이라곤 아이만 주렁주렁 낳은 게 다인 불체자들은 온갖 정부혜택을 다 받아가며 사는데 정작 미국 시민으로 납세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자기는 왜 안 되냐'고 마구 흥분했다.

나흘 사이에 교통법규 위반 티켓을 3장이나 뗐다는 어떤 이는 (그의 말로는 얼마든지 눈감아 줄 수 있는 사소한 것이라 했다)방만한 운영으로 바닥난 정부재정을 그런 편법으로 메꿀 작정에 있는 캘리포니아에 만정이 떨어져서 다른 주로 이주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내 직장 동료 하나도 곧 캘리포니아를 떠날 예정이다.

남편과 둘, 한달을 꼬박 일해서 받는 돈이 5천불 남짓, 이중 의료보험료랑 세금을 떼고 집에 가져가는 실제액은 4천불이 채 안 된단다.

두 아이 탁아비용과 집 렌트비, 그리고 차 페이먼트와 개솔린 값을 제하고 나면 식량 살 돈도 빠듯하다고.

차라리 하나가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 탁아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소득층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의료보험, 현금보조, 그리고 식료품 보조등 정부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자존심 상해서 그 짓은 못하겠고 차라리 세금과 물가가 낮은 다른 주로 이주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최근 아파트 렌트비가 또 오른 것을 계기로 그런 결심을 했단다. 월급의 반이 아파트 렌트비로 나간다는 그녀가 말했다.

"힘들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았지. 내일은 좀 나아지리라. 그러나 도저히 안되겠어. 아이들은 점점 커가는데 계속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을 것 같아. 이곳에서는 평생 가도 내 집을 장만한다는 것은 요원할 것 같고....."

나 역시 갈수록 살기가 팍팍하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

내 급료는 몇 년째 동결인데 유틸리티와 식료품 등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또한 몇 년째 지속되는 가뭄때문에 모두 고난을 겪고 있는데 거기 맞춰 곳곳에서 일어나는 산불이  자연은 물론 주민들의 마음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그뿐인가. 캘리포니아 주 다수 카운티가 최근에 판매세를 대폭 인상했단다. 거의 10%에 육박하는 카운티도 있다. 그러니까 10불짜리 물건을 사면 1불을 판매세로 내야한다는 것 아닌가.

얼마 전에는 캘리포니아주의 경제 스트레스가 전국 중 가장 높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전국의 2만 5천명 이상의 카운티를 대상으로 실업률, 주택 차압, 파산등을 측정한 결과 캘리포니아 주의 일곱 개 카운티가 상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천혜의 자원과 풍광, 사시사철 좋은 날씨로 '골든 스테이트'로 까지 불리우던 캘리포니아, 캘리포니아가 이 꼴이 된 건 누구의 책임인가. 정치인들의 잘못인가. 부나비처럼 무작정 이곳으로 몰려든 우리 이민자들의 잘못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