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참전 용사회에서 감사패를 주겠단다. 오랫동안 꾸준하게 기부금을 내 준데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고.

거절했더니 으레 한번 사양해보는 말인 줄 안다. 나는 강력하게  한국전쟁참전용사회 측에 말했다. 싫다는데 불구하고 극구 준다면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을 테니 그런 줄 알라고. 나 말고도 받을 만한 사람 많을 테니 부디 그 사람들한테 수여하라고.

관계자가 물었다.

"누구는 못 받아서 난리인 상을 주겠다는데 왜 그렇게 마다합니까?”

내가 대답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저는 그걸 받아서 집에 가져가자오자 없애버립니다.없애버릴 걸 왜 받습니까, 돈 아깝게. 적어도 그것 하나 만드는데 백불은 들 건데 그 아까운 돈을 허비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

유난떤다고 욕해도 할 수 없다. 내 신념은 확고하다. 내 칼럼에도 자주 썼다시피 새로운 물건들을 더 이상 집에 들여놓지 않겠다는. 지금 있는 물건들도 가능하면 줄이며 살겠다는. 실제로 나는 그동안 글써서 받은 상패, 한인사회에서 받은 감사패등을 다 버렸다. 한때는 거실의 장식장 한 쪽을 자랑스레 차지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것들의 먼지를 닦다가  이런 것이 살아가는데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길로 몽땅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다. 휑한  장식장을 보니 얼마나 가뿐하고 좋아야지. 그렇게 잘 버려대니까 우리집은 항상 '호텔 로비'처럼 깨끗하다.

우리집에 오는 사람들이 말했다.

‘이계숙씨처럼 남들한테 자랑할 만큼까지는 언감생심이고 적어도 누가 불시에 들이닥치더라도 당황하지 않을 정도로만 해놓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은 아무리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리를 해놓아도 그 상태가 오래 못간다는 것이다. 죽겠다고 치우고 돌아서면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마니까 이제는 동기부여와 의욕도 생기지 않는단다. 해봤자 금방 또 너저분해질 건데 뭐, 하고 체념하고 대충대충 살다가 손님이 온다면 보이는 데만 벼락치기로 고양이 세수하듯 말갛게 해놓는단다.

정리정돈을 잘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금 있는 살림살이들을 반으로 팍 줄여버리면 된다. 사실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품들은 몇가지 안 된다. 나머지는 다 군더더기일 뿐이다. 뭐가 하도 많아서 정리정돈이 안 되는 것이다.

어느집에 플라스틱 소쿠리가 수십개 쌓여있는 걸 보았다. 한국마켓에서 일정액 이상 사면 사은품으로 주는 소쿠리란다. 닳지도 않아 평생을 써도 다 못 쓸 그 소쿠리들. 나 같으면 아무리 공짜라도 받아오지 않는다.

식당이나 행사장에서 음식이 남으면 남들이 선점할새라 유난히 눈을 반짝거리며 싹쓸이를 해가는 여자가 있다. 나는 궁금하다. 가져간 음식들을 다 먹어치우기는 할까. 냉장고안에서 굴리다가 버리게 될 음식을 저렇게 욕심부려 챙겨가는 것은 아닐까.

이사를 가려고 짐정리를 하다보니 현재 다섯살인 친구 아들의 돌떡이 아직도 냉동고에 돌덩이처럼 얼어 있더라는 한 여성의 글을 인터넷에서 읽었다. 그일을 계기로 그녀는 다짐했단다. 안 먹을 것 같으면, 안 쓸 것 같으면 아예 처음부터 집에 가져오지를 않겠다고.

최근, 뒷뜰에 있던 바베큐 그릴을 갖다버렸다. 그 아까운 걸 왜 버렸냐고 옆에서 한소리들하는데 일년에 한두번 쓸까말까하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들은 무조건 없애버려야 한다. 앞으로 바베큐 그릴을 다시 안 살 것이다.  예전에는 없애버린 자리에 새로운 걸  채워넣으려 왔다갔다 쇼핑을 다녔지만 이제는 빈 공간으로 그냥 두려 한다.

누구에게나 없애기 아까운 물건들,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물건들이 있다.

내 첫사랑이 준 카드, 내 아들이 첫 입학식때 입은 옷, 결혼식때 달았던 장신구 등등.

한 지인의 남편은 미국 처음 들어 올 때 입었던 옷을, 자그마치 38년이나 지난 옷을 아직도 가지고 있단다.   미국 처음 들어 올 때 입었던 옷이니 얼마나 의미가 있는 옷일까.

그러나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이 물건들을 내가 죽을 때 같이 가져갈 수 있을지, 그리고 나 죽고나서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있고 가치있을 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정리정돈의 기본은 내가 가진 물건들로부터 집착과 미련을 놓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