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이상한 체험을 했다.  솔직히 웃고 잊어버리기 거북한 사건은 남편과 가까운 친구인 폴과 연관되어 있다.  두 사람은 엔지니어 출신들이라 감성보다 논리적으로 세상을 본다.  한가지 더 공통점은 두 남자는 수다꾼들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늙고 외로운 남자들이 별별 이야기를 다 나누며 서로 의지하고 사는 방식을 받아들였다.

폴은 원래 펜실베니아 사람인데 이곳 따스한 남부에 정착해서 오랫동안 살면서 고향을 잊은 사람이라 일본계이며 고국을 잊은 남편과 죽이 잘 맞는다.  두 남자는 남부의 정서에 완벽하게 물들어서 이곳 토박이가 됐다.  예전에는 나도 함께 만났지만 두 사람의 정치적 성향이 나와 전혀 반대로 돌아선 지난 4년,  나는 폴과 만나는 자리를 피했다.  집에서 남편과 갈등을 빚으며 사는 것이 불편한데 두 남자가 맞장구 치는 것까지 보자니 힘들었다.  남편은 옆에서 눈치를 주던 내가 없으니 편안하게 폴과 만난다.  그리고 요즘도 두 남자는 가끔 만나 밥을 같이 먹는 각별한 사이다.

며칠 전 폴이 남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지금 자기는 여행중인데 조카의 생일이 다가오니 가게에 가서 아이튠즈 기프트 카드를 사서 보내달라는 부탁이었다.  돌아오면 갚겠다고 했다.  남편이 얼마 짜리를 사서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묻는 답을 보냈다.  몇 시간 후에 다시 그에게서 답이 왔다.  100불짜리 카드 다섯을 사서 사진을 찍고 뒷면을 긁어 나온 핀 번호와 함께 알려주는 이메일 주소로 보내라고 했다.

100불짜리면 선뜻 가게로 가려던 남편이 500불이 든다며 나에게 “어떻게 할까?”  물었다.  폴은 한번도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없었다.  여행 중이지만 이메일을 주고 받을 수 있다면 온라인으로 사던지 아니면 본인이 직접 가게에 가서 사면 되고 그리고 선물로 준다면 카드 하나지 무슨 카드를 다섯 장으로 주느냐 싶어서 “그 사람 이상해졌네” 했다.  세상이 휘청거리니 사람들도 미쳐가나 싶었다.  잠시 생각하던 남편은 폴에게 미안하지만 부탁을 못 들어주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폴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 찜찜하던 남편이 다른 친구에게 전화해서 그런 요청을 받아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즉각 돌아온 답은 그 이메일은 “사기다” 였다.  무시하라는 조언을 받고 당황한 남편은 왜 진즉 전화로 확인을 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며 폴에게 전화했다.  집에 앉아서 전화를 받은 폴과 남편은 폴의 이메일이 해킹 당했다며 한참 부산을 피웠다.  

남들이 당한다는 사기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사기꾼이 욕심을 내지않고 그저 100불짜리 선물 카드 하나를 부탁했더라면 그는 성공했을 것이다.  아무튼 예전 같으면 그런 부탁을 받으면 바로 질문이 나왔을 터인데 지금은 머리 회전이 늦다.  더구나 우리 부부는 그것이 사기라고는 전혀 상상을 못했다.  성실히 일해서 돈을 벌지 않고 사람을 속이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슬펐다.  하지만 더 슬픈 사실은 우리가 총기가 떨어진 노인이 되어 쉽게 속아 넘어가는 현실이다. 

전에 한 지인이 말해준 사건이 생각났다.  여행 중인 손녀가 해외에서 교통사고를 내서 수습할 돈이 필요한데 자신이 여행 떠난 것을 모르는 부모에게 알리지 말고 돈을 보내 달라고 전화했다.  80 대 후반인 그녀는 엉겁결에 전화를 받고 교통사고라는 말에 혼비백산이 되어서 손녀의 목소리를 분별 안하고 바로 은행에 가서 현금을 인출해서 웨스턴 유니온으로 가서 손녀가 준 주소로 돈을 보냈다.  그리고 곰곰 혼자 생각하다가 손녀에 대한 걱정으로 딸에게 사실을 실토했다.  놀란 딸은 바로 웨스턴 유니온 사무소에 가서 아직 송금이 안 된 거금을 되찾았다.  멀쩡하게 집에 있는 손녀의 손을 잡고 그날 지인은 자신이 당한 어이없는 사기에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고 했다. 

심신이 허약한 노인들을 상대로 사기가 기승을 부린다더니 결국 우리도 당하고 보니 씁쓸했다.  돈은 잃지 않았지만 순진함을 잃은 것같다.  세월따라 변하는 세상에 휩쓸려 나도 변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었다.  더러는 잊고,  더러는 버리고,  더러는 나눠주고 만사에 감사하며 살자고 각오했었다.  어리숙하게 살면서 가끔 속아주는 것도 괜찮다 싶었지만 이번에는 이런 사기에는 말려들지 않는 지혜를 주십사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