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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딕시의 남부생활

아름다운 5월에 한 일 Young Gray (madamdixie) 2021-6-12  09:43:52


 

 

식당에서 지루하게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스마트폰에 저장된 주소록을 봤다.  근 500명이 되는 이름과 연락처가 있었다.  A부터 Z까지 죽 훑어보니 낯선 이름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름은 낯익지만 얼굴이 기억나지 않은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것이 요즈음 뭘 하려고 계획한 것을 곧잘 잊어버리는 나이든 증상인지 아니면 내 관심이 변한 것인지 마음이 어수선해서 그날 저녁은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새싹으로 쏫아올라 이제 싱싱한 초록의 숲을 이룬 주변의 정경을 보며 내 삶에 막대한 영향을 준 인간관계를 생각했다.  사람과 연관이 되어 있는 내 삶도 계절의 변화와 맞물린 변화가 필요함을 느꼈다.  마치 갱년기 같은 과도기를 거치는 기분이었다.  막상 인연의 줄을 끊는다는 것에 연연해서 미뤘던 일을 어쩌면 2020년 공백기를 거친 후 용감하게 실천했다

 

우선 주소록의 첫 이름부터 한사람씩 만나기로 했다.  한사람 한사람 지인들과 대면하는 동안 그 사람이 나의 삶에 끼친 영향을 생각했다.  아름다운 사랑을 나눈 지인들은 내 삶에 긍정적인 에너지원이었다.  생각만해도 기쁨을 주는 지인들이 많아 행복했다

 

성장기를 함께 산 친구들은 여전히 싱싱한 젊음이다.  그들과의 애틋한 추억은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덩치가 커졌다.  그러나 공군에 복무하며 만난 인연은 세월의 이끼가 끼어서 반쯤 가려졌다.  그들도 세상 어딘가에서 옷장에 간직한 군복처럼 나를 잊은 지 모르겠다.  성당이나 클럽 활동하며 만난 지인들과 상공회의소에 일하면서 만나 죽이 맞았던 사람들은 여전히 인연의 고리를 꽉 잡고 있다.  앨라배마가 좁은 동네다

 

더불어 내가 쓴 글을 계기로 만난 인연은 특별하다.  과거가 없고 거리감이 없다.  그들과의 교류는 갈등이 없고 현재에 머문다.  잔잔한 파도 같다.  주소록에 아주 잠시 옷깃을 스친 인연도 있었다.  언젠가 포르투칼에 있는 성지 파티마를 찾았을 적에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양치기 소녀 루치아가 살았던 집을 방문했다.  그때 천정이 나즈막한 그 집에서 한국에서 오신 김비아 수녀님과 박세실리아 수녀님을 만났다.  내 마음에 평안을 준 루치아 수녀님을 닮은 그들이 생각난다.  앞으로 다시 해후할 기회가 없더라도 감사한 인연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낯선 사람이 된 이름과 연락처는 단호하게 지워냈다.  더불어 얼굴은 기억나지만 나와 인연의 끈이 약해진 사람들도 함께 떠나 보냈고 나에게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지인들도 과거로 보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주는 것이 싫었다.  불쑥 떠오르는 추억의 단편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지만 우선 나 자신의 감정부터 다듬었다

 

주소록을 찾은 이유는 어쩌면 좋은 지인들과 이제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상황이 되어서 였던 것 같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번복하며 정을 나눴던 원근에 사는 지인들이 보고싶다.  앞으로 대인관계는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와 아파치 부족의  남의 모카신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던 속담을 기억하며 조심하려고 한다.   

 

아무튼 집안 곳곳에 흩어진 물건들은 쉽게 버릴 생각은 못하면서 며칠 걸려서 주소록은 청소했다.  올 아름다운 오월에 집안팎이 아니라 내 인생의 흔적을 정리했고 그것은 또한 내 삶의 발자취를 더듬어본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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