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이 달랐던 여자들이 넷 모였다. 플로리다주의 남단 키 웨스트와 프랑스, 일본과 한국등 제각기 다른 나라의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 여자들은 앨라배마에 정착하고 오래 살면서 앨라배미안들이 되었다. 87세, 82세, 80세 왕언니들 그리고 한참 막내인 나.

최근에 가진 80 생일을 받아들이기 힘든다는 언니에게 제일 나이 많은 언니는 “삶에서 숫자는 중요하지 않아” 라 단언했다. 여자들끼리의 저녁 모임에 아름다운 옷을 입고 귀걸이 목걸이까지 구색을 갖추고 온 멋쟁이 언니들은 내가 가졌던 나이80 넘은 노인에 대한 기존 관념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사실 그들 앞에서 나의 신체 변화는 감히 언급조차 하지 못한다.

우리들은 남부사회에 적응해서 이곳 문화만 아니라 음식까지 내것으로 만들어 살고 있다. 간혹 모이면 스스럼없이 개인사들을 나누고 적절한 운동과 건강식에 이어서 지역의 전문의까지 다양한 정보교환을 한다. 남편들과 사별하고 혼자서 큰 집을 관리하며 사는 세 언니들은 소소한 일까지 서로 돕고 의지한다.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는 진리는 왕언니들과 모이면 확실히 느낀다.

1920년말 대공항 시기에 태어나 성장하며 겪었던 생활이 중심이 되어서 근검절약 버릇에 독립정신까지 강한 큰 언니가 며칠 전에 황당한 사건을 당했다. 20대 초의 외손녀가 전화를 했다. 감기에 걸려서 목소리가 좀 변했다며 현재 칠레에 여행중인데 렌트한 차로 교통사고를 내었다 했다. 부모 몰래 여행떠났기에 부모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고 할머니에게 연락한다며 변호사를 바꾸어 주었다. 칠레인 변호사는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서 당장 4,500 달러를 웨스턴 유니온을 통해서 보내라고 했다. 왕언니는 웨스턴 유니온은 현금만 받기에 서둘러 은행에 들렀다가 웨스턴 유니온 사무실로 찾아가 지시받은 칠레의 주소로 돈을 보냈다.

그리고 교통사고 후유증을 묻는 문자를 손녀에게 보냈다. 생뚱맞은 내용을 받은 손녀는 할머니가 이상한 문자를 보내왔다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직감으로 불안했던 왕언니의 딸은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사연을 물었다. 왕언니는 칠레서 여행중인 손녀가 교통사고를 내어서 4,500달러를 송금했다고 실토했다. 손녀는 멀쩡하게 출근해서 일하고 있으니 얼른 웨스턴 유니온에 가서 돈을 되찾으라는 딸의 당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단다. 다행히 웨스턴 유니온에서 아직 송금하지 않은 돈을 찾아 오면서 자신이 당한 일에 많이 놀랐다. 잠시 후에 칠레에서 변호사가 송금을 확인하려고 한 전화에 고약한 사기 치지 말라고 훈계를 해주었단다. 그러나 60대인 그녀의 딸이 이제는 보호자 역활로 나섰다며 어이없다고 웃었다.

페이스북에 올린 가족들의 사진과 이름등이 정보를 제공했으리라 추측해서 페이스북의 내용을 많이 삭제했다고 했다. 평소에 자신은 정신이 맑아서 어리석은 일 당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그녀가 받은 충격이 컸다. 은행과 웨스턴 유니온을 운전해 다니며 불안하게 뛰었던 심장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고 인간의 감성을 이용해서 국제적으로 사기치는 험악한 사람들의 존재에 놀라워했다.

프랑스 언니는 프랑스 남부의 한 작은 마을에서 자라며 2차대전을 겪은 성장기를 상기했다. 독일군 점령하에 상황이 불안했지만 이웃들이 서로 도왔던 기억과 전후 미국의 구호물자를 먹었던 시절에는 세상사람들이 선한 사람들이라고 믿었다. 역시 2차대전시 사춘기를 보낸 일본 언니는 패전 후의 비참한 환경에서 성장하며 겪었던 어려움들을 이야기했다.

왕언니들이 평생 그들의 생활신조가 된 성실과 근면함을 1940-50년대 전후의 환경에서 배우고 익힌 사실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녀들의 추억창고에 쌓여있는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많은 사연들은 모두가 역사와 연결되어 있는 기막힌 사회사였다. 일년에 한번씩 모국을 방문하는 이민자 언니들은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며 발전하는 고향의 모습에서 자긍심을 지킨다며 좋아했다.

밤 늦도록 왕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사람은 어디서 태어나 자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긍정적인 자세로 자신의 환경에서 성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했다. 사회 정의에 관심갖고 바쁘게 활동하며 사는 그녀들의 일상에는 나이로 주춤임이 없다. 올바른 마음가짐이 인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켜주는 지혜임을 사랑을 나누어주던 왕언니들이 가르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