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고양이의 몸무게가 16 파운드이다.  그러나 스페인으로 떠나는 나의 배낭 무게는 9 파운드였다.  무게를 줄이느라 떠나기 전날 손톱 발톱을 짧게 짜르고 머리까지 짧게 커트했다.  갈아입을 2벌의 옷은 가볍고 실용적인 것들로 골랐고 화장품으로 로션 하나만 배낭에 넣었다.  꼭 필요한 상비약에 치솔과 치약,  샌들 하나 그리고 비오는 날을 위해서 준비한 판쵸 우비가 내 짐의 전부였다.  숙소는 호텔에 묵자고 친구와 사전에 결정해서 침낭은 없었다.  처음하는 배낭 여행이라 가슴 두근거리며 집을 나선 날,  새들이 맑게 지저귀었다.  좋은 오멘이었다.

한국에서 출발한 고교시절 단짝 친구와 마드리드 공항에서 만났다.  출입구에서 날렵한 배낭을 매고 만난 우리 둘의 모습은 천진하기 짝이 없어서 서로 마주보고 한참을 웃었다.  모처럼만에 만난 반가움에 낯선 체험에 대한 기대감이 보태어져서 공항버스를 타고 마드리드 다운타운으로 향하며 우리는 아이들처럼 재잘거렸다.  그동안 스페인어를 열심히 공부해온 친구 덕분에 언어의 불편없이 자유롭게 도시를 누볐다.  그리고 다음날 기차로 스페인 북서쪽의 도시 레온으로 이동했다.

사자의 동상이 도시 입구에 세워진 레온시는 고풍스러웠다.  강을 끼고 조성된 아름다운 산책로들이 싱싱한 기운과 여유를 주었다.  프랑스에서 출발한 까미노 길에 있는 레온시는 순례자들이 쉬어가는 도시였다.  중심가에 있는 웅장한 대성당은 하느님과 빛을 연결시키려고 태양을 중심으로 고안한 고딕형 건축물이었다.  해를 맞이하는 동쪽의 창에는 예수님의 가족이,  그리고 해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만들어진 창들에는 12사도의 상이 묘사된 찬란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천정이 높은 성당 사방을 장식했다.  우아하고 정교한 디자인의 컬러풀한 그림들은 진실로 우주와 인간을 위한 천상의 축하였다. 

대성당을 나와 구름 한점없는 짙푸른 하늘을 보았다.  흐트러짐이나 복잡함이 없는 투명한 하늘이 우리를 품어서 기분이 좋았다.  레온의 관광안내소를 찾아가 여권을 보여주고 크리덴샬 (순례자 여권)을 받았다.  다니는 지역마다 증명 도장을 받아야 하는 크리덴샬에 있는 빈 공간을 보니 마음이 급해서 애초에 사리아에서 시작하려던 계획을 바꾸어서 좀 더 걷기로 했다.  아름다운 교회가 있는 산동네 오세브리오 전에서 시작하기로 하고 기차로 폰페레다로 향하며 우리가 건너뛰는 창밖의 산 정경을 즐겼다.

모험을 좋아하는 60대초 여자 둘이 겁없이 출발지로 선택한 지역은 산중턱이었다.  스페인에 도착해서 등산 지팡이를 구입할 계획이었지만 팔이 자유롭길 원해서 우리는 지팡이를 구하지 않았다.  아침 일찍 까미노의 노란 화살표를 따라 산을 오르며 허덕이니 근래에 손자 손녀를 업어 본적이 있는 친구가 배낭을 아기 업듯이 하라고 조언했다.  특히 비탈길을 오를 적에는 아기를 업듯이, 내릴 적에는 배낭아래로 두 손을 잡고 걸으면 도움이 되었다.  친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힘겹게 산을 오르면서 나는 전날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이유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자신이 딱했다.

산중턱에서 찾은 숙소에서 막 눈을 감으려는데 옆 침대의 친구가 불쑥 말했다.  “우리 많이 즐기자.  이렇게 다니며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기한도 이제 많아야 10년,  20년이야.”  그리고 그녀는 곧 잠이 들었지만 나의 의식은 완전히 깨어버렸다.  10년,  20년.  우리의 시한부 삶은 냉정한 사실이었다.  바람같이 빠르게 지나는 세월을 어떻게 잡나.  낯선 침대에서 뒤척이며 10 년 20년이란 짧은 시간의 압박을 받다가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다.

산 정상 오세브리오에 있는 성당은 아담한 돌건물이었다.  떠오른 해가 지붕위 십자가에 멈춘 신비한 정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돌벽에 진득하게 걸쳐있는 수 백년 세월의 흔적을 보며 “10년 20년” 을 읊다가 후다닥 정신이 들었다.  10년 20년이 대수인가 지금이 중요하지.  성당 아래 펼쳐진 아스라한 정경에 가슴을 펴고 맹렬히 순간을 살리라 마음 먹었다.  그리고 산길을 걸으며 등에 업힌 아기를 바짝 내 몸에 붙였다.  “부엔 까미노” 하며 지나는 순례자들 사이에서 갑자기  “안녕하세요”  인사가 들렸다.  순례길에 만난 첫 한국인 남녀였다.

바람이 강하게 불던 다음 산위의 카페는 헉헉이던 우리에게 오아시스였다.  그러나 스페인 북서쪽 산이 아니라 마치 한국의 어떤 산에 오른 착각이들 정도로 카페에 멈추어 쉬는 순례자들 대부분이 놀랍게도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