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결승전이 있던 날 아침 신문에 재미난 기사가 있었다. 바티칸시에서 미국 기자 Eric Lyman 이 쓴 글의 첫 문구가 ‘Holy soccer!’였다.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했던 눈이 확 뜨일 정도로 나의 호기심이 자극받았다. 독일 출신인 베네딕토 전 교황과 아르헨티나 출신인 프란치스코 현 교황. 축구팬인 그들의 든든한 후광을 입고 있는 두 나라의 대표팀이 결승전에서 만난다. 더 기적적인 사실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역사에 두 교황이 동시에 생존했던 적은 1296년이었다. 그 당시 이탈리아 출신이었던 교황들은 지구인들의 혼을 잡는 월드컵을 몰랐다. 1930년 월드컵 게임이 시작하기 634년 전에 그들은 살았다. 2014년, 생존하는 두 교황의 모국팀이 월드컵 결승전에서 겨루는 이런 기막힌 확률이 언제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두 교황은 공식적으로 어느 팀을 위해서도 기도하지 않을것이라 했다. 믿거나 말거나 자세가 아닌 바티칸 대변인의 진지한 성명은 두 분은 두 나라 팀 중에 ‘나은 팀이 이기기를 바란다’ 였다. 역사상 처음 일어난 상황에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 중에 ‘HolyWar’ 라는 단어도 나왔다. 흥미로운 현실에 나도 나름대로 교황님들의 본심을 상상하니 두 분이 체스보드를 앞에 두고 마주 앉은 착각이 들었다. 주거니 받거니, 잡고 잡히고. 온 국민의 자존심이 걸린 치명적인 게임이라 한치의 실수도 허용할 수 없으니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결승전을 보면서 남편에게 신문에 난 기사를 알려주니 게임에 영적인 흥미가 첨가되어 박진감이 넘쳤다. 누구의 기도가 하늘에 더 강하게 닿은 것인지 우리는 게임을 보며 토론했다. 연장전에서 독일팀이 한 골을 넣자 베네딕토 교황이 분명 “체크!” 라 외쳤을 것이고 당황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맞수로 대응하려는데 타임아웃 신호가 나와버렸다. 희비가 엇갈린 승자와 패자의 극적인 표정들이 TV 화면에서 물살같이 쏟아져나왔다. “Don’t cry for me Argentina” 노래가락을 흥얼였더니 남편이 웃었다. 땀을 흘리게 하던 체스 게임이 끝나니 긴장이 풀렸다.

나는 어릴적부터 무엇이든 독일것이면 사랑했다. 독일문학에 심취하였고 심지어 첫딸의 이름도 독일소설의 주인공 이름으로 지었다. 독일에서 3년 사는 동안 철저하게 독일을 보고 느끼며 행복했다. 독일에 대한 나의 깊은 사랑을 아는 남편은 내가 당연히 독일팀을 응원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베네딕토 교황편을 들었다고 봤다. 그 부분은 남편의 생각을 정정시켜 줬다. 사람살이의 순리. 어른을 공경하고 받드는 자세를 하느님이 좋아하신다. 베네딕토 교황이 연장자이니 어떤 천사가 슬쩍 독일팀의 손을 잡아 주었나보다. 아무튼 두 팀 모두 막강했다.  

올해는 월드컵 열풍이 우리집에도 솔솔하게 불었다. 6월초에 일본과 잠비아 국가 대표팀의 친선 게임을 응원하려고 몽고메리에 사는 일본 주재원들이 플로리다주의 템파로 갔다. 브라질은 멀고 플로리다는 가까웠다. 남편이 가고 싶어해서 우리도 길여행 나섰다. 9시간 자동차 운전해 가서 템파에서 일본인들과 만났다.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의 번호가 적힌 저지 셔츠들을 준비해 왔고 아이들은 얼굴에 칠할 페인트를 가져왔다. 남편이 그들과 축구장으로 떠난 후 나는 혼자서 낯선 템파 거리를 운전하며 구경했다. 바다가 가까운 도시는 휴양지의 분위기가 물씬해서 마음과 기분이 가벼웠다.

게임을 보면서 주재원들로 부터 축구의 규정과 묘미에 대한 설명을 들은 남편은 축구의 마력에 빠졌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브라질에서 월드컵이 정식으로 개최되자 열심히 게임을 따랐다. 남편은 우리 가족과 연관이 있는 일본과 한국, 영국과 미국팀을 응원하다가 차례대로 모두 탈락되자 실망했다. 하지만 그 후부터는 국적에 상관없이 게임하는 팀 모두를 응원하는 재미있는 정경을 벌렸다. 패기찬 해외 선수들의 이름과 얼굴에 익숙해질 쯤에 월드컵이 끝났다. 독일과 아르헨티나만 아니라 월드컵에 국가 대표팀을 보내고 함께 뛰며 울고 웃었던 지구 가족들과 4년 후 다음 대회를 기다린다.

2014년 월드컵은 남편에게 축구의 맛을 보여줬다. 그리고 결승전에 오른 독일과 아르헨티나 팀, 그 나라 출신들인 막강한 영적 지도자인 교황들은 신성한 그랜드 피날레를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