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묘미는 예상치 못한 것을 예상하는데 있다. Expect the Unexpected. 사전 계획없이 발 가는 대로
가다가 멈춘 곳에서 보는 아름다움은 예기치 않은 즐거움이고 낯선 지역에서 새로운 명소 찾는 재미, 얼마나
멋진가.
위스콘신주의 주청사를 보러 94번 고속도로로 매디슨으로 향했다. 하늘과 땅이 시원하게 열린 평평한 지역은 중부의 어떤 농경지를 연상시켰다. 넓은 평지에서 간혹
바짝 말라가는 옥수수밭을 보았고 느긋하게 어슬렁이던 소들도 만났다. 도로변의 나무들은 단풍이 깊었다.
계절의 한적함으로 나른하던 천연의 정경을 보다가 구름의 변화에 놀랐다. 듬성듬성
흩어져 있던 하얀 송이구름이 짙은 회색의 먹구름으로 변하며 하늘을 덮어서 여행자의 마음을 어수선하게 했다.
커피를 찾아 샛길로 빠져서 작은 타운으로 갔다. 그림엽서의 가을 정경을 가진 마을에 주민이 8백명이라는 사인이 있었다. 거리를 덮은 마른 낙엽위로 사람이나 지나는 차 하나 없는 장면이
을씨년스러웠다. 가까이 강을 끼고 형성된 도시 오클레어 (Eau Claire)로 갔다. 그곳도 역시 낙엽들이 바람에 밀려 흩날리고 있었다. 수북히 쌓인 낙엽을 밟으며 초겨울의 싸늘함에 옷깃을 세우고 관광에 나섰다. 타운 입구 건물
벽에서 대형 ‘모나리자’ 그림이 반겼다. 붉게 단풍진 나무와 잘 어울리는 신비로움이었다. 1840년에 개척자가 정착하며 이룬 타운은
전세기의 유적지에서 천천히 깨어나고 있었다. 개조된 건물들과 깔끔하게 단장한 거리는 곳곳에 전시된 아름다운
조각상들로 여유로웠다. 걷다가 한 낮으막한 건물에 붙은 ‘오페라 하우스’
간판을 보고 놀랐다. 인구 6만이 조금 넘는
작은 도시에서 오페라를 공연한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육중한 3층 건물의 ‘안틱 엠포리엄’은 갤러리를 포함한 안틱숍이었다. 각 층마다 빈틈없이 전세기 동서양 교류로 유입된 물건들과
선조들이 사용했던 일상의 모든 소소한 물건들이 발디딜 틈 없이 넓은 공간을 꽉 채웠다. 마른 낙엽 색깔인
암갈색이 바닥의 마루와 선반, 벽에 물들어 있었다. 벽에 전시된 퇴색한
단체 사진들에 멈춘 누군가의 조상들은 모두가 닮아 있었다. 곳곳에서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당당한 과거의 흔적들을
보니 묘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기력을 잃는데 물건은 햇수가 보태질수록 가치가 올라갔다.
바람에 밀리며 걷다가 법원앞의 음악 카페에 들어갔다. 대학생들의 젊은 에너지가 가득했다. 옛 것과 새 것, 과거와 현재의 좋은 조화였다. 뜨거운
숩을 주문하니 옆에서 남편은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우습게도 우리 부부의 다름이 이 도시에 어울렸다.
순전히 먹구름 탓에 작은 문화도시를 발견한 것이 기뻤다.
미네소타주의 쌍둥이 도시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 폴의
거리는 단풍이 절정이었다. 아스펜과 매플이 유난히 노랗고 붉게 활활 타오르고 있어서 가슴이
뛰었고 눈이 부셨다. 특히 역사적인 거리를 다니며 고옥에 어울리는 단풍을 보는 것은 환상이었다.
세인트 폴에서 동북부 방향으로 12마일 거리에 작은 도시 ‘Lake
Elmo’ 라는 곳이 있다. 엘모 후숫가에 1881년에 개업한 ‘Lake Elmo Inn’의 식당이 트윈시티에서 손꼽히는 일류 레스토랑이라고
우리가 머물던 호텔에서 만난 토박이 미네소탄이 강력히 추천했다. 여행지에서 맛난 음식을 찾아 즐기는 남편이
앞장을 섰다. 호수를 낀 시골길은 사방이 붉고 노랳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호수에 반사되어 출렁이던 단풍따라 설레던 마음이 식당에 들어서며 다시 뛰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고급
레스토랑의 분위기와 벽에 전시된 아름다운 소금과 후추병 세트들 탓이었다.
나이 16세에 이 식당의 접시닦기로 일했던 남자는 훗날 요리사가 되어 대도시에
살았다. 1983년 매물로 나온 식당을 구입해서 주인이 되어 돌아오자 할머니가 소금과 후추병 세트를 선물로
주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소금과 후추병 세트 수집광이
되어 이베이나 야드세일 등 온갖 통로를 통해서 수집한다. 그가 모은 세트는 7천이 넘고 그중 1천 6백 세트가 식당 입구와 안쪽의
벽에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모습과 재료가 다른 앙징스러운 소금과 후추병은 지구 곳곳의 문화와 전통을
보여주었다. 훈훈한 사람살이 이야기가 놀랍게도 작은 소금과 후추병에 담겨있었다. 이곳에서 미니애폴리스 다운타운에 있는 ‘미니애폴리스 클럽’에서 먹은 일류 요리와 전혀 손색이 없는 음식을 먹으며 우리는 행복했다. 이번 여행길에 미네소타주에서
최고라 인정받은 이 식당의 ‘선데이 브런치’를 먹을 기회가 없음이 아쉬웠지만
지역 문화의 중심으로 우뚝선 명소를 찾았음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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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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