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입구에서 덴버에 사는 친구가 잊었던 노래 하나를 보내주었다. ‘솔베이지의 노래’. 어릴적부터 가슴을 절절하게 아리게 하던 노래이다. 떨어진 마른 낙엽이 스산해서 자주 이 노래를 들으니 연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애절하게 부르는 솔베이지의 기도가 낙엽되어 가슴에 안긴다.

아이패드를 가지고 집안을 다니며 유튜브로 많은 소프라노들이 부른 ‘솔베이지의 노래’를 듣는다. 솔베이지가 목을 길게 뽑고 연인이 돌아올 길목을 지켜보며 애잔하게 부르는 노래가 물결되어 철렁이며 여러번 일손을 멈추게 했다. 세파에 밀려도 굳건히 버티는 한 여자의 강인한 의지가 담긴 여리지만 강한 멜로디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마력이 있다. 같은 노래를 계속 들으니 남편이 물었다. 여지껏 이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남편이 마치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노래를 소개하고 내친김에 친구가 보내준 노래에 얽힌 사연을 들려 주었다.

‘노르웨이 어느 산간 마을에 가난한 농부 페르퀸트와 아름다운 소녀 솔베이지가 살고 있었다. 둘은 서로 사랑했고, 결혼을 약속했다. 가난한 농부였던 페르퀸트는 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간다. 갖은 고생 끝에 돈을 모아 10여 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다가 국경에서 산적을 만난다. 돈을 다 빼앗긴 그는 그리도 그리웠던 솔베이지를 차마 볼 수 없어서 다시 이국땅으로 떠나 걸인으로 평생을 살다가 늙고 지치고 병든 몸으로 겨우 고향에 돌아와 어머니가 살던 오두막의 문을 여니 어머니 대신 사랑하는 연인 솔베이지가 백발이 되어 다 늙어버린 노인 페르퀸트를 반겨 맞는다. 병들어 허약해진 페르퀸트는 그날 밤 솔베이지의 무릎을 베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꿈에도 그리던 연인 페르퀸트를 품에 안고 ‘솔베이지의 노래’를 부른 솔베이지! 그녀도 페르퀸트를 따라간다.’

남편이 피식 웃더니 “바보 같은 여자네” 했다. 이어서 “기다리기는 왜 기다려.” 라며 삐딱하게 평했다. 노르웨이의 작가 입센의 희곡 ‘페르퀸트’를 작곡가 그리그가 1875년에 제작한 ‘페르퀸트 모음곡’ 중의 하나인 서정적이고 슬픈 선율을 가진 노래는 남편에게 낯설었다. 사랑이 무엇이길래 집 떠난 연인을 기다리며 홀로 살았던 솔베이지. 백발 노인이 될때까지 봄을 보내고 여름을 보낸 후 가을과 겨울 맞기를 되풀이하며 오로지 해바라기의 삶을 산 한 여인의 마음. 순정 드라마에 감수성 없는 남편은 한줌의 동정도 주지 않았다.

예전에는 슬픔을 준 솔베이지의 노래가 이제는 아픔을 준다. 허공에 흩어지는 부드러운 음율에는 다양한 아픔이 엉겨있다. 인연의 아픔이다. 해가 뜨고 지고 달이 뜨고 지는 무수히 많은 하루의 흐름을 따르며 입술을 깨물었을 한 여자의 순정이 아프다. 아름답고 젊은 솔베이지가 백발의 노인으로 변모해 간 기다림의 세월과 외로움이 아프다. 사랑의 약속을 지키는 여인의 고집이 아프다. 아픔에 보태서 안타까움과 억울함도 있다. 넓은 세상으로 나간 페르퀸트는 나름 세상구경을 하지만 고향집을 지키고 무조건 기다렸던 솔베이지의 인생이 안스럽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다.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린다. 미국의 육해공군 삼군중에서 해군의 이혼율이 가장 높다. 6개월씩 전함을 타고 나가서 대양을 지키는 남편들을 기다리다 아내들은 지친다. 그래서 남편이 돌아오면 별거생활을 반복하기 힘들어 떠나는 여자들이 있다. 더구나 소식없는 연인을 기다리며 평생을 살만큼 인내심이 많지 않다.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도 상황에 따라 마음이 변하지 않는가.

하지만 솔베이지는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았다. 믿음과 사랑 그리고 소망의 날을 살았다. 알콩달콩 사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는 사랑의 완성에 전력했다. 그녀의 삶은 진정한 사랑, 순수한 사랑의 피나클이었다. 그리고 페르퀸트가 타지로 일확천금을 꿈꾸며 떠나지 않았거나 도둑을 만나지 않고 돌아와 솔베이지와 결혼을 했다면 그들은 스토리를 만들지 않았다. 분명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한 생명력을 가졌다.

지금도 세상 어느 곳에서는 솔베이지 같은 여자가 있을것이다. 모든 희생과 고초를 감내하며 사랑을 지키는 용기. 슬프지만 이런 순정이 지구에서 멸종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솔베이지의 노래’ 멜로디를 따르는 가슴에 손을 얹고 심장의 박동을 느낀다. 어메이징한 노래에서 강력한 사랑의 맥박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