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있다. “I am coming home.”  이 말보다 더 감격을 주는 말이 있을까. 먼거리에 사는 딸들이 집을 찾아올 적에 하는 말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흥분한다. 자신의 삶을 사는 딸들이 강가에서 놀고있는 아이들처럼 여전히 걱정되는 터이다. 80대 어머니가 60대 자식에게 차조심 하라는 우스개 말을 내가 살고 있다. 혹시나 하는 불안이 속에서 꿈틀이니 집 떠난 자식들이 집에 오는 것은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다. 내 눈으로 직접 딸의 건재를 확인하고 또 체온을 느끼는 기쁨이 좋다. 하지만 지난 11일 ‘베테랑스 데이’서 이 말을 들은 후부터는 어두운 구름이 가슴에 덮혀있다.

238년 미국 역사에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해외로 나갔는가. 임무를 끝내고 귀국하는 군인들이 가족에게 하는 인사말은 같다. I am coming home. 네 단어에 함축되어 전하는 의미는 진정한 축복이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전하는 재회의 설레임이다. 그리고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이고 미래의 가능성이다. 이 말을 듣는 부모들의 기쁨은 하늘에 닿는다. 그들은 세상을 얻는다. 하지만 이 말을 듣지 못하고 절망한 부모들도 많았다. 그들은 고통을 가슴에 품고 자식들과 함께 죽음을 맞았다. 시신이 확인되어 묘지에 묻힌 군인들은 그래도 가족들에게 결별의 의식을 주었다. 치열했던 전쟁터에서 흔적없이 묻혀버리거나 행방불명이 된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들의 마음을 세상의 어떤 언어로 표현할수 있을까.  

오래전 부산에 있는 유엔묘지를 찾았던 적이 있다. 번잡한 도시 한쪽에 소리없이 존재하던 외국 군인들. 모국을 지켜준 그들의 희생에 고개를 숙였다. 일렬로 쭉 늘어선 비석의 이름을 읽으며 동양의 작은나라에 영원히 안주한 젊은이들을 낯설어 했다. 그들의 패기찼던 생전의 모습을 상상하니 세상 어딘가에 외롭게 묻힌 자식을 그리는 부모의 아픔이 느껴졌다. 묘비 주위로 우뚝 선 게양기에 달린 외국기들은 자국의 젊은이들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평안을 구하던 깃발의 펄럭임에도 미세한 아픔이 있었다.

2차대전 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펼쳤던 프랑스 북부의 해변을 찾았을 적이다. 전쟁의 잔해들이 긴 세월 바닷물에 젖은채 점점이 남아있었다. 함께 찾아갔던 딸과 숙연해져서 한적한 모래사장에 길게 발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우리는 격전지였던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부산의 유엔묘지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의 미군 묘지가 있었다. 동서남북으로 끝없이 이어진 하얀 대리석 십자가 묘비들에 가슴이 아팠다. 하얀 아픔의 물결이 언덕아래의 파도처럼 끊임없이 철썩였다. 묘역을 돌아보던 마음이 무거웠고 딸의 얼굴도 눈물에 젖어서 우리는 자주 멈추어 서서 하늘을 보았다. 바닷바람을 막아주던 청송 잎들의 꼿꼿함에서 자유세상을 위해 생명을 바친 전사자들의 의지를 보는듯 했다.

군인들은 여전히 세계 곳곳의 분쟁 다발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한다. 특히 전사한 군인의 시신이 도버기지에 도착하는 장면에는 소리없는 “나 집에 돌아왔어.” 가 있다. 알링톤 국립묘지의 언덕위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를 해가 뜰적부터 질적까지 지키는 해병 의장대를 볼적에도 이름없이 사라진 용사들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무명용사의 묘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모국의 가곡 ‘비목’을 떠올리곤 했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깊은 계곡 양지녘에/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이름 모를 비목이여/먼 고향 초동 친구/두고 온 하늘 가/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달빛 타고 흐르는 밤/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울어 지친 비목이여/그 옛날 천진스런/추억은 애달파/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인간의 기본 감정에는 동서양 국경이 없다.

곧 추수감사절이 다가온다. 원근에 사는 가족들이 모이는 관습에 따라 수 많은 사람들이 “I am coming home!” 을 외칠것이다. 따스한 사랑의 나눔이 가정과 사회를 훈훈하게 감쌀것이다. 특히 올 추수감사절에는 낯선 지역을 헤매는 슬픈 영혼들이 고향을 찾아 왔으면 좋겠다. 그들을 그리워하는 사랑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읽고 잠시라도 행복을 찾길 바래본다. 희미한 외침이 멀리서 들려온다. I am coming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