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버밍햄에서 몽고메리의 거리 100 마일은 깊은 밤의 터널이었다. 운전하던 남편이 졸리지 않게 이번 여행의 첫날부터 회상했다.

“첫날은 어디로 가서 무엇을 봤으며…” 하는 나의 말을 남편이 중단시켰다. 친구 딸네에 들러서 먹은 점심과 “여태껏 그렇게 맛있는 김치를 먹어 본 적이 없어” 남편은 여전히 군침을 흘렸다. 우리 부부의 차이다. 낯선 지역의 볼거리에 호기심이 많은 나와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다니며 적당히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이번 여행도 예외가 아니어서 내가 관광책자에서 재미난 곳을 찾아내면 남편은 그 지역의 소문난 음식점을 찾아냈다.

매일 무엇을 보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서로의 기억을 부추기니 찾아간 지역에서 본 정경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대대적인 보수공사 중이던 오클라호마 주청사 내부의 화장기 없던 얼굴과 새로 건축된 돔 위에 장식된 ‘수호자’ 동상과 똑 같은 동상을 만지고 가진 듬직한 느낌, 다운타운 지하 하천 산책로, 그리고 1995년 폭탄테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공원 국립 기념지. 연못 양쪽에 세워진 쌍둥이 문에 영원히 멈춘 시간에 섬뜩하다가 가지런히 놓인 희생자들의 빈 의자에 철렁했던 가슴이 연못에 비친 푸른 하늘의 구름으로 덮혔다. 오죽하면 예수님도 얼굴을 가렸을까.

미대륙의 중앙 평원에 있는 캔사스주의 위치타는 놀랍게도 왕성한 문화 활동지다. 알칸사스강이 나누어지는 지점 바위 높이 우뚝 서서 동쪽을 향해 두 손을 높이 든 미국 원주민 동상 ‘평원의 파수꾼’의 기원에 귀 기울이다 도시에 흩어져 있는 33 미술관과 박물관 중의 몇을 100도가 넘는 더위에 헉헉거리며 둘러봤다. 특히 비영리단체에서 운영하는 ‘세계 보물 박물관’의 다양한 소장품은 대단히 흥미로웠다.

옥수수와 밀밭이 끝없이 이어지는 평원의 여유를 즐기고 원주민과 개척민들이 남긴 흔적을 봤다. 서쪽 하늘을 온통 붉게 태우던 와이오밍주에서 목격한 일몰에 나의 가슴이 오랫동안 함께 뜨겁게 타올랐고 서북부로 갈수록 로키산맥으로 변한 지형에 매혹당했다. 유타주의 소금 호수 ‘Great Salt Lake’를 보고 아이다호 감자를 산지에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여성권을 제일 먼저 인정한 와이오밍주에 점철된 멋진 ‘Grand Teton, Yellowstone, Devils Tower’ 국립공원들은 동화의 나라로 방문했다.

하늘이 유독 넓은 몬태나주에서 자연의 품에 안겨서 고속으로 신나게 서부에서 동부로 가는 길에 남편은 전화를 받았다. 친구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남편이 기겁하자 운전하던 나도 숙연해서 속도를 줄였다. 장거리 도로 여행을 하며 천연의 맛을 흠뻑 즐기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 미안했고 동시에 감사했다. 이어서 사우스다코타의 블랙힐스 지역의 많은 볼거리 중에서 ‘Mount Rushmore National Memorial’에 영원한 4 대통령들의 영원한 존재를 느끼다가 ‘Crazy Horse Memorial’에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바위들이 전해준 스토리는 나를 완전히 제압했다.

인구 900명이 되지 않는 사우스다코타의 작은 도시 Wall의 ‘Wall Drug’은 식당과 역사박물관을 겸비한 종합쇼핑센터로 여행자를 위한 성전까지 갖춘 완벽한 원스톱 관광지다. 맛있는 음식과 5센트 커피를 마시고 남편과 숨바꼭질하는 아이들로 한참을 놀았다. 금광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향하던 개척민들이 멈춰 정착한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시의 콘크리트 건물에 몸의 반이 갇혀있던 버팔로 동상의 눈빛을 어떻게 잊나.

전국 50주 중에 유일하게 다섯개의 돔을 가진 아이오아주 청사는 박물관이다. 눈이 부시던 중앙의 골드 돔처럼 눈 부신 문화유산이 많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5 도서관 중의 하나가 놀랍게도 청사안에 있다. 우아하고 마치 디즈니 영화의 장면 같은 법률 도서관에 내장된 16만권의 장서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프랭클린 시대부터 모았다.

시카고에서 바하이교의 사원을 걸었던 발을 미시건 호숫물에 담궜고 켄터키주에 있는 ‘Maker’s Mark’ 버번 위스키 증류주 공장에서 버번을 시음했다. 시골길을 구비구비 지나 링컨대통령의 출생지를 찾아서 과거가 변함없이 현재 사람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도 봤다. 더불어 트라피스트회 수사들이 미국에 최초로 설립한 겟세마니 수도원을 찾아가 신의 축복에 감사기도 드렸다.  

대자연의 위용과 개척민의 정신, 그리고 곳곳에서 본 공립도서관에 미국의 미래가 있다. 여행의 뒤풀이로 한꺼번에 많이 봐서 뒤죽박죽 섞인 지역의 독특한 매력들을 제자리로 보내니 지난 몇 년 이번 여행을 꿈 꾸던 시간조차 아름다운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