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미사가 끝나자 신부님은 모두를 다시 자리에 앉도록 부탁했다. 이어서 소개를 받은 나이 지긋한 한 여성이 포디움에 섰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난 그녀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워싱턴DC에서 행한 연설문을 읽기 시작했다. 마침 킹 목사의 기념일 전날이다.

흑인인 그녀가 약하게 강하게 읽어가는 연설문의 언어는 가볍고 무거운 의미를 날개에 싣고 나비처럼 혹은 독수리처럼 성당 안을 훨훨 날아다녔다. 작은 체구의 그녀는 파워풀한 스피커다. 모두 숨을 죽이고 한 마디도 흘리지 않으려고 시선을 그녀에게 집중했다. 그녀의 가슴 깊숙이서 우러난 감성의 목소리가 킹 목사의 우람찬 음성처럼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자 울컥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선 교인들도 있었다. 마치 인권운동에 열렬하게 활동했던 그녀의 젊은 시절을 보는듯 했다. 암흑의 시절이 지나고 광명의 날이 찾아와 피부색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화합의 사회를 만들기가 아직도 멀었음을 자리에 앉은 많은 사람들이 따갑게 느껴서 일까. 분위기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이곳 DC 성당에 올 적마다 “어떤 사람들이 성당에 다니는지 보고 싶다”며 뒷자리에 앉으려는 남편의 말을 못들은 척 나는 딸의 손을 잡고 늘 앞쪽의 자리를 선호한다. 7개월 손자가 성전에 보여주는 관심을 위해서다. 일어서고 앉고 얌전하게 미사 순서를 따르는 아이가 착하고 함께 성전에 앉은 시간이 축복이다. 워싱턴DC 사회상을 반영하는 다양한 민족의 교인들이 모인 성전에서 흑인 여인이 읽은 킹 목사의 연설문은 특히 피부색과 인종을 떠나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졌다고 강론하신 신부님의 가르침에 이은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하느님의 성전에서 가슴에 담은 무거운 주제는 20도 싸늘한 기온에 더욱 차게 굳어서 목에 걸렸다. 둘러 앉아 점심을 먹으며 가족들의 대화는 자연히 킹 목사가 소망했던 꿈이 얼마나 실현되었나 였다. 제도적인 개혁과 사회환경의 변화는 분명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암암리에 행해지는 유색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아직도 손톱 밑의 가시로 걸려있다. 더구나 인종차별주의자의 말을 거침없이 공언하는 현 미국의 지도자와 킹 목사의 꿈 사이에는 아득한 거리가 있는 불편한 현실이다. 그리고 킹 목사의 꿈은 흑인들만의 꿈이 아니다. 모든 이민자들의 꿈이다. 불행하게도 자유와 평등을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각 세대가 조금씩 다른 상황의 문제에 갈등을 갖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같다. 사회가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외부의 침입에 의해 절대 멸망하지 않는다. 미국이 불안정해져서 자유를 잃으면, 자신을 파괴시킴으로 멸망할 것이다.”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한 말이 찬바람에 섞여서 스산하게 울린다. 북부와 남부가 나뉘어져 갈등을 겪고 결국 내전을 치뤄야해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요즈음처럼 여러가지 명분으로 이해가 대립되어 갈래갈래 분리된 사회풍토에도 적용되는 일침이다. 여러 대형 자연재해들에 못지않게 자아도취자인 지도자로 인해서 풍파가 많았던 2017년을 보내고 새해에는 안정과 화평의 해를 빌었는데 시작부터 “역시나” 라 기운이 빠진다.

하지만 나에게도 꿈이 있다. 전통적으로 지켜온 미국의 품위를 되찾고 오랜 세월 신대륙에 도착한 이민자들이 굳건히 다져온 진취적인 자세로 분열된 사회의 화합을 구하는 것이다. 더불어 피부색보다 인간 됨됨이에 관심을 가지고 후대교육에 과감히 투자하는 것이다. 미국이 인간미를 가져서 지구 어느곳에서 어떤 이유로 왔던 미국에 사는 모든 이민자들과 약한 자를 배려할 줄 알고 모든 사람들에게 형으로써 어질고 큰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나 혼자 잘 살겠다가 아니라 우리 모두 잘 살자 자세로 세상의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