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술렁이면 떠오르는 스토리가 있다. 체로키족 인디언의 우화로 알려진 ‘두 늑대의 이야기’다. 인디언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삶을 가르쳐 주려고 들려준 늑대 이야기는 철학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선한 늑대와 악한 늑대 두 마리가 늘 싸움을 하는데 사람이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긴다.” 이 스토리에는 동전의 두 얼굴처럼 선하고 악한 품성을 함께 가진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고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줘야 하는지 도덕적인 가르침이 있다. 

오래전에 큰딸이 부탁한 일이 있다. 자신이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성장해서 한국말을 잘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훗날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면 날더러 꼭 한국어만 사용해 달라고 했다. 아이에게 한국어와 한인의 정서를 어려서부터 심어주고 싶다고 했을 적에 나는 “물론이지” 답해줬다.하지만 정작 아이가 태어나자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옹알거리는 아이와 영어로 사귄다. 아차 싶어서 얼른 한국어로 바꾸지만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영어가 저절로 나온다. 특히 가족들과 영어로 대화하다가 아이에게만 한국어를 사용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나를 보면 딸은 한국말을 사용해 달라고 강조하며 눈치를 줬다. 그때마다 나의 한국말이 어눌해진다. 영어로 동화책을 읽어주면 얌전히 앉아서 그림을 따르는 아이가 한국어로 읽어주면 책보다 내 얼굴에 시선을 집중한다. 둥근 눈을 더욱 크게 뜨고 내 입의 움직임을 살피는 아이를 보면 순간 나의 정체성에 혼돈이 온다. 그러나 이민 2세에 이어서 이제3세로 넘어가며 바뀌는 변화가 두렵지 않은 것은 아이에게 나의 정신이 전달됨을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훗날 손자에게 체로키 인디언의 ‘두 늑대의 이야기’를 들려줄 적에 어떤 언어로 설명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모국어를 갈고 닦으면서 글을 쓴 지가13년이 된다. 태어나서 배우고 교육받은 한글로 글을 쓰는 작업은 별로 어렵지 않다. 하지만 미국으로 이민 와서 산 세월이 한국에서 성장한 세월의 두배나 되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속담대로 강산이4번이나 바뀌었으니 나에게 변화가 많았다. 더구나 영어권에 살면서 익숙해진 미국식 감정을 한국인 정서로 바꾸는 일과 한글 어휘력이 짧아 단어 선택이 솔직히 힘든다.반세기 우정을 지켜온 옛친구는 가끔 조심스럽게 내 글의 오점을 지적해준다. 그녀의 조언은 나의 허술한 문장을 보강시키고 잘못 사용한 단어가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함을 일깨운다. 

나 자신에게 “왜 한글로 글을 쓰느냐?” 질문을 하면 내 속에 있는 두 늑대를 생각하게 한다. 정리된 글은 살며 보고 느끼는 나의 상념과 정보를 한인들과 나누어서 좋다. 또한 나에게 안정감을 줌과 동시에 나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하지만 정작 아쉬운 일은 이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가족들이 읽지 못하는 언어로 글을 쓰니 나의 관점을 함께 공유하지 못함이다.나 혼자만의 글세계를 가지면서 의식의 자유를 즐기다가도 가끔 남편과 딸들과 단절감을 느끼니 아이러니다. 더불어서 열심히 한글에 몰입하다가 영어로 글을 쓰려면 머리 회전이 느리고 표현이 술술 풀리지 않아 우습다. 

오만가지 색감을 표현할 수 있는 한글로 글을 쓰는 일은 도전이지만 이민생활에서 잊고 사는 나의 중심을 지킬 수 있어 좋다. 겉포장보다 내용물이 중요하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내 마음속에 공존하는 두 마리 늑대 중에 선한 놈에게 먹이를 많이 주어 힘을 키우면서 모국어로 내용이 좋은 글을 계속 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