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부터 전해왔다는 작가 미상의
멋진 기도문이 있다. 종교에 상관없이 노년기에 접어드는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기도에 세월따라 변하는 내가
반했다. 마치 이해인 수녀님의 시로 착각이 들도록 구절구절이 아름답게 가슴에 와 닿는 ‘어느 노 수녀님의 기도’를 나의 기도로 삼고 매일 “늙어갈수록
더 착하게 해주소서” 신의 자비를 구한다. 한 아름다운 노 수녀님을
만나는 특별한 날에 이 기도가 메아리되어 울린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버릴 것을/ 저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때나 무엇에나 한 마디 해야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 잡고자 하는/ 어리석은 열망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내 팔, 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제 입을 막아 주소서/ 내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나고/ 그 고통에 대해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가고 있습니다만/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줄 은혜를 주소서/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세상의 모든 아픔을/ 주님 지신 십자가를 보라보고/ 참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는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은 잃지않게 하시고/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아멘.’
노 수녀님 주위로 원근에서 이런 저런 인연으로 수녀님과
친분을 맺은 사람들이 모였다. 늙고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로
80평생 헌신하신 수녀님의 퇴임장에는 잔잔한 아픔이 출렁였다. 수녀님에게는
정년이라는 관념이 없다. 할수 있다면 죽을때까지 봉사하신다. 그러나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수녀님의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다. 수녀님은 뵐적마다
나에게 “하는 일 열심히 계속해” 하신 조언을 이번에도 어김없이 하셨다.
지난 15년, 수녀님은 나에게서 무엇을 보셨을까?
오래전 성전에 엎드려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포기한
순간, 수녀님은 날개를 얻었다. 어릴적의
꿈과 희망은 고귀한 목적으로 대치됐고 부모와 형제를 이별하고 선택한 삶은 더 많은 가족을 맺어줬다.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인내하며 나보다 남을 위하라는 신의 섭리에 복종하셨다. 그렇게 이웃의 아픔을 다독이며 소중한
사랑과 신앙을 가르치느라 백발이 되신 수녀님의 얼굴은 언제나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러나 인사를 하려고
다가간 낯익은 얼굴을 기억하려 애쓰시는 수녀님의 흐릿한 시선을 따르며 가슴이 뭉클했다. 기억력을 좋게 해주십사
그토록 기도한 수녀님이 아직 응답받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예전에 수녀님의 믿음은 부러웠지만 삶은 부러워하지
않았던 나의 편견이 바뀐다. 무엇엔가 열정을 쏟은 삶은
값지다. 더욱 대중에 기여한 삶은 흙에 뿌려진 한알의 씨앗이 아닌가. 이제 수녀님은 정들었던 몽고메리를 떠나 필라델피아에 있는 본원으로 가신다. 소리 소문도 없이
봉사하고 조촐한 송별회의 인사말을 “감사하다”는 한마디로 생략한 그녀의
휘청임이 안쓰럽다. 내일부터 인생의 마지막 챂터를 쓰실 메리 아그네스 수녀님의 마음에 평안이 가득차길 기도하는데
말씀이 들린다. “걱정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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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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