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섬’의 마력은 은근히 다가오지 않고 한꺼번에 찾아왔다. 초록으로 싱싱한 섬나라 아일랜드는 12세기부터 700년간 영국의 지배하에서 고통을 받았고 이념보다는 가톨릭과 신교도의 종교 갈등도 겪었다. 내전과 독립전쟁을 거치고 마침내 1921 년, 총 32카운티 중 남쪽의 26 카운티는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독립했고 북쪽의 6 카운티는 ‘북 아일랜드’로 영국 속령으로 남았다. 완벽한 통일과 독립은 아니지만 평화를 찾았다.

1959년 영국을 가던 싱어송라이터 조니 캐쉬는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푸른 섬이 영국인줄 알았다가 아일랜드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는 영국공연을 끝내자 바로 아일랜드를 찾았다. 당시 27살 그의 젊은 마음을 사로잡은 아일랜드의 푸름에 감탄해서 ‘40 색조의 초록 (Forty Shades of Green)’ 노래를 지어 불렀다. 이 노래는 아일랜드 가수들도 즐겨 부른다. 그리고 조니 캐쉬가 반했듯이 아일랜드를 찾은 앨라배미안들도 눈앞에 펼쳐진 40 색조의 초록에 매혹당했다.

동부 더블린에서 시작한 관광이 남부로 그리고 서부로 출렁이는 초록의 물결을 따라갔다. 6세기에 수도원이 세워졌고 케빈 성인의 교회가 있어 교육의 중심지 였던 그랜덜로우를 찾아가는 시골길은 무척 아름다웠다. 1398년 영국군에 의해 파괴된 후 과거 영광은 폐허가 됐지만 라운드 타워나 케빈 성인의 십자가는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이제는 켈트 유적지로 또한 자연의 일부로 관광지가 됐다. 한적한 오솔길을 따라가서 크고 작은 두 호수를 봤다. 하늘과 구름과 산이 물속에 영원했다.

블라니 성과 딩글반도나 모허의 절벽은 남편과 나의 추억여행이었다. 예전에 딸들과 숨바꼭질했던 블라니 성의 바위정원을 우리는 천천히 걸었고, 딩글반도 해변가 견고한 기원전 요세의 돌벽 사이에 딸들이 했듯이 나도 작은 돌멩이를 끼워넣었다. 그리고 검푸른 대서양 바닷물이 철썩이던 해변에 우뚝 올라선 엄청난 규모의 모허 절벽은 장관으로 장엄한 기암절벽의 위용은 여전히 나를 제압했다. 천연의 위대함은 곳곳에 있었다. 버른 바닷가 넓은 석회암 지역에서 한참을 머물면서 수 천년 변함없는 자연환경에 견주어 흔적없이 흙으로 돌아가는 짧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는데 바위사이에 억척스레 피어난 작은 들꽃이 바닷바람에 흔들리며 혼란을 줬다.

코네마라 지역의 푸른 능선은 검은 빛이 섞인 비안개로 축축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 완만한 산이 안개속에 희미하게 모습을 가렸다. 바람을 따라온 비를 맞으며 강가에서 요정의 나무에 치렁치렁 매달린 아이들의 건강과 행운을 비는 울긋불긋한 사연들을 봤다. 기이했지만 묘한 감동을 줬다. 안개 자욱하게 덮은 푸른 산아래 호숫가에 성같이 우아한 카일모어 수도원이 있었다. 비 내리는 계곡의 푸름에 산과 물에 어울려서 신비롭고 독특한 멋을 한껏 뿜어냈다. 주인이 몇번 바뀌었다가 현재는 베네딕도 수녀님들이 사시는데 마침 미국 가톨릭 신학생들이 그곳에 연수와 있었다.

카운티 마요의 마을 콩은 1952년 존 웨인이 영화 ‘Quiet Man’을 찍은 장소다. 불과 몇 블럭이 되지 않는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마을은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겨준 영화로 관광지가 됐고 영화를 촬영한 애쉬포드 성은 호텔로 변했다. 마을 한쪽에 폐허로 우뚝 선 옛 성전에서 신부님의 그림자를 따르면서 마치 뜰에 날라다니는 나비처럼 나도 홀가분했다. 아름다운 순간을 그대로 받아들이니 마음이 가벼웠다. 켈틱음악의 본거지인 둘린의 어떤 술집 벽에서 재미있는 사인을 봤다. ‘이 업소를 방문한 모든 사람은 행복을 줍니다. 어떤 사람은 방문해서 행복을 주고 또 어떤 사람은 떠나므로 행복을 줍니다.’ 켈틱음악과 리버댄스 공연을 볼적마다 느낀 활력소가 이 사인에도 있었다.

켈트 신화에 따르면 오크는 두 세상을 연결하는 문의 나무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단단한 오크 나무처럼 질곡이 많은 역사와 심한 날씨 변동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버티는 저력을 가졌다. 그리고 하루에 사계절을 모두 체험하며 살면서 뛰어난 유머감각을 발휘한다. 마치 잘 관리된 정원의 꽃보다 자유롭게 자란 야생화를 닮았다. 비와 바람을 벗삼아 돌벽 사이에 피어난 강인한 꽃처럼 위대한 자연의 손길이 키웠다. 더불어 매일 비를 흡수하는 에메랄드 섬의 모든 식물은 유난히 강렬한 초록의 색조를 띄었다. 솔직히 40 가지가 아니라 만가지 색조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