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안사돈이 영국출신 시인들의 시를 모은 책을 두 권 보냈다. 영국의 정신적 문화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점잖은 그녀의 의도를 알고 페이지를 넘기다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19세기 초 영국의 문단을 휘어잡았던 낭만파 시인들인 조지 바이런, 존 키츠, 퍼시 셸리와 윌리엄 워즈워스는 감수성이 예민했던 나의 사춘기도 황홀하게 휘어잡았던 시인들이다. 인연이란 참으로 묘하다. 

특히 18세기 말 영국에서 낭만주의 문학 장르를 개척한 윌리엄 워즈워스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두 시인의 시집, ‘Lyrical Ballads’는 아이 오프너다. 두 시인은 이웃에 살다가 절친한 친구가 되자 의기투합해서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느낀 점을 서정적으로 기술한 실험적인 작품을 모아 1798년에 출간했다. 그 당시 영국 상류사회의 사람들이 가졌던 인간의 감성과 열정을 기존의 룰에 맞추어 고상한 단어로 품위있게 표현하는 관습을 파격적으로 깨뜨렸다. 그들은 평범한 언어로 대화하듯 기술해서 중산층과 하류사회 사람들도 쉽게 읽도록 시도했다. 주로 4행시로 이야기를 전하는 그들의 시집은 여러번 수정되었지만 수백 년을 뛰어넘고 현 시대에도 여전히 인쇄되니 놀랍지 않은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함께 영국 낭만파 시인들의 작품은 나에게 삶의 기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나의 청춘기를 흥분시켰던 번역판 시들을 원문으로 다시 읽으니 촉촉한 봄비를 맞듯이 감회가 새롭다. 이제는 격동의 시기가 지나갔고 감성이 메말랐다 싶은데 아직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솔솔 피어오르는 열기가 느껴진다. 시를 읽으면서 살아있음을, 사람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니 나를 생각해서 시집을 보내준 사돈에게 감사한다. 그러잖아도 미국 시인협회에서 좋은 시를 한편 선정해서 매일 보내주는 것을 읽는다. 첨부된 시인이 작품을 쓴 동기는 이해를 돕지만 더러 이해하기 힘들거나 거북한 난해한 시는 패스하고 쉽게 노래하듯 지은 작품에서는 공감을 받는다.

시는 인류의 시작부터 재미있는 스토리를 들려주며 삶에 깊이를 보탰다. 인류 최초의 시로 알려진 ‘길가메쉬 서사시’는 5천년 전 바빌로니아의 스토리다. 2/3는 신이고 1/3은 인간인 우룩의 왕 길가메쉬가 신과 대응하며 체험하는 여러 모험에 찬 여정을 통해서 얻은 깨우침을 흥미진진하게 전해준다. 영생을 구하던 길가메쉬가 죽음을 피할 수 없었듯이 인간은 죽음을 맞이한다는 진리를 알려준다. 다른 차원의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스토리는 같다.

동부에 사는 지인 조성자 시인은 ‘시로 읽는 삶’컬럼으로 시에 수필의 정수를 접목시켜 색다른 맛을 준다. 그녀는 컬럼 초에 인용한 한국 시의 골격에다가 살과 근육을 보태고 마지막 화장까지 매끈하게 마친다. 그녀의 컬럼을 읽다 보면 시인이 포착한 삶의 언저리가 때로는 아프지만 대체로 포근하고 인간애가 있어서 인생은 진실로 아름다우며 살아 볼만한 것임을 알게 된다. 영시가 주는 감성과 한국시가 주는 감성이 별로 다름이 없다. 희로애락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과 근본은 지구 어느 방향에 살거나 맥박의 흐름이 같다. 시를 쓰는 친구의 입은 무겁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언어의 미로를 따르다 보면 그녀가 누구인지 또한 어떻게 살아가는 지를 발견해서 그녀의 지혜를 얻는다. 비록 멀리 살아도 글을 통해서 그녀의 호흡은 가까이 느껴서 좋다.

몇 단어로 함축시켜 소통하는 시 구절은 추상화를 보는 것과 같은 도전이다. 메시지를 찾아내는 비결은 오픈 마인드다. 보는 사람의 위치와 배경에 따라 해석이 다르듯 읽는 사람의 환경에 따라 장편소설 만큼 많은 스토리를 상상하게 한다. 좋은 시의 구절에는 굴곡진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평안과 위로를 주고 선하게 살기, 지혜롭게 살기와 더불어 아름답게 살기의 모든 비결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제는 어려운 추상화같은 난해한 시 보다 워즈워스와 콜리지가 시도했던 쉬운 단어로 재미있게 스토리를 전해주는 시가 좋다. 신선한 자연미 그대로의 매력이 좋다.

전혀 생각지 않았던 좋은 선물로 행복한 주말이다. 시를 읽으면서 잔잔하지만 깊은 철학을 수반한 진리를 찾아 삶을 관조하니 교양 지식이 아닌 필수 지식을 얻는다. 한 편의 좋은 시가 나의 삶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