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나이들면 이런저런 변화를 맞듯이 동물도 같다. 서로 의지하고 사는 반려동물이 빠르게 늙는 것도 슬픈데 사람처럼 골고루 병도 가져서 딱하다. 우리가 자주 집을 비우니 혼자 집을 지키던 고양이, 로키가 우울병에 걸렸다. 매일 잠깐 집에 들리던 펫시터로는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이 컷나보다. 믿기 어렵지만 로키가 보인 증상들을 참작한 수의사의 추측이다.

불안정한 마음의 병이 신체로 옮겨갔다. 내가 집을 떠났다 돌아오면 무엇인가 사고로 항의했다. 집안 여기저기에 토하거나 오줌을 샀다. 하나 둘 방문을 닫아 로키의 출입을 막고 나는 다시 가방을 들고 나섰다. 로키는 여행가방을 보면 긴장했지만 아침저녁으로 일정한 양의 음식을 자동으로 내보내는 도구가 있고 물그릇을 새 물로 바꾸고 리터박스 청소는 펫시터가 해줬다. 고양이를 위한 보딩 시설의 좁은 공간에 갇혀 감옥살이 하는 것보다 맘껏 다니도록 집에 두는 것이 좋다고 믿었다. 하지만 혼자 지내는 날들이 많자 로키는 조금씩 안정을 잃었다. 그러잖아도 여름에 무른 변에 피를 보여서 병원에서 과민성 치질 병명을 받았다.

10월 말쯤 여행에서 돌아와보니 로키가 눈에 띄게 야위었다. 평범한 미국산 흑백 얼룩 고양이로 원래 덩치가 큰 로키는 체중이 16 파운드였다. 뚱보라고 나한테 놀림을 받았던 로키의 몸무게가 12파운드밖에 되지 않고 비실거려서 바로 병원에 데려갔다. 정기검진을 받을적에 의사가 만지지도 못하게 발톱을 세우던 로키가 이번에는 전신을 맡겼다. 우선 심한 탈수라 마취제를 맞은 후 링겔을 맞았다. 그리고 혈액검사를 하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당뇨는 아니지만 신장이 위태하고 대장에 문제가 있었다.

문제는 로키가 벌리는 단식투쟁 자세였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기피했다. 11년생 로키는 사람나이로 60대다. 로키에게 억지로 음식이나 물을 먹이는 일은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임무가 됐다. 입을 꽉 다물고 싫다고 버티던 로키는 그 후로 병원에 두 번 더 입원했고 링겔을 두 번 더 맞았다. 두 수의사가 검진하고 지켜본 결과는 신경장애로 인한 대장의 기능문제라는 진단이었다. 죽을때까지 매일 먹어야 한다는 약을 타오고 병원에 있는 동안 먹었다는 캔푸드를 사왔다. 그리고 펫스토어 3곳을 다니며 다양한 브랜드와 재료의 캔사료를 구입했다. 입맛없는 로키는 작은 덩어리로 씹히는 음식은 싫어하고 죽같이 입자가 부드러운 음식은 조금 먹어서 이빨이 약해졌음도 이번에 알았다.

하지만 무엇이든 맛을 보는 식이고 먹는 양이 적어 기운이 없으니 움직이지 않고 집안의 가장 어둑한 곳에 숨었다. 하루종일 꼼짝하지 않고 무기력한 로키는 나에게 끈임없는 도전을 줬다. 음식그릇을 들고 로키를 찾아가 코앞에 놓으면 조금 먹었다. 나를 피하는 로키를 따라다니며 “제발 좀 먹어라”고 어르고 달래다가 내가 지쳐서 그만 두곤 물은 주사기로 주면서 탈수가 되지 않도록 애썼다. 로키가 혼자서 먹고 마시는 기본 본능을 잊어버려서 혹시 치매에 걸렸나? 하고 의문을 가지니 남편은 절대 아니라며 거부했다.

그후 로키는 우리 부부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다. 오랫동안 함께 살면서 독립심이 강했던 로키가 무너져 나에게 완전히 의지하게 되면서 나는 덫에 걸렸다.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다. 그런 와중에 로키의 원주인이었던 둘째딸이 찾아와 옷장 깊숙이 숨은 로키와 한참을 보내고 나와서 눈물을 글썽였다. 우리는 추수감사절 날 미시시피 동생들 보러 가는 것도 새벽 4시에 일어나 로키에게 약을 먹이고 음식을 먹인 후 집을 나섰다가 저녁에 바로 돌아왔다.

그렇게 열심히 돌봤더니 조금씩 회복해서 이제는 로키가 전처럼 집안을 다닌다. 아직 자발적으로 먹고 마시지는 않지만 가족들의 마음에서 어둔 구름은 걷혔다. 아파도 투정이나 불평하지 않고 고분고분 따르는 로키가 고맙다. 로키를 간호하는 일에 나의 정성과 인내가 테스트를 받는다. “뭘 보니?” 의뭉스러운 눈빛으로 가만히 나를 주시하는 로키를 가볍게 들어서 안고 약을 먹이려다 덩실 춤을 춘다. 나도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하는 약이 있고 너도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하는 약이 있으니 함께 약 먹으며 오래오래 살자.  

(December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