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품이 늠름한 대통령과 똑같이 품위 있는 영부인에 반했다. 이 부부를 생각하면 어쩐지 나도 당당해져서 기분이 좋다.

지난 3월 워싱턴 DC에 들렀을 적이다. 지역 TV방송국의 아침 프로그램 중 남녀 진행자들의 들떤 대화가 재미있었다. “대통령과 영부인이 많은 뉴스거리를 만드는데 이번에 다시 큰 뉴스를 만들었다.” 새로 백악관에 들어선 가족이 늘 시끌벅적 뉴스거리를 만드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깜짝 놀랐다. 1782년 의회의 승인을 받고 미국의 국조로 지정된 흰머리 독수리 부부가 바로 대화의 주인공들이었다. 더구나 이들이 워싱턴 DC에 거주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대통령’과 ‘영부인’으로 불리는 흰머리 독수리 부부가 사는 곳은 아나코스티아 강을 끼고 있는 446 에이커가 넘는 지역에 1927년에 설립된 미국 국립 수목원이다. 대도시 안에서 도시의 소음을 잊고 흙과 자연을 벗할 수 있는 곳이라 딸이 즐겨 찾는 곳이다.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 원산지를 가진 다양한 식물들과 나무들이 어울려 이룬 화음에 나도 첫방문에 반했었다. 그곳에서 싱싱한 푸름의 수목과 아름다운 꽃이 화사한 숲길을 걸으면 몸과 마음이 정화됐다.

수목원의 훤하게 터인 넓은 잔디밭 낮은 언덕에는 1828년부터 1958년까지 국회의사당 오른쪽 현관을 지켰던 기둥들이 꼿꼿하게 늘어섰다. 의사당 확장 공사를 하느라 제거된 기둥들이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가 이곳에서 활개를 핀다. 그 가까이 들판에 미국 50주의 주목들도 듬성듬성 자리잡았다. 그리고 동양의 정원은 구비구비 오묘한 수목이 빼곡한 명상의 길이다. 그곳에 있는 ‘한국의 언덕’에서 나는 목을 길게 뽑고 무엇인가 모국의 기운을 찾으려 했었다. 더불어 중국과 일본의 수석과 분재들이 나란히 전시된 곳을 돌면서 동양의 정적 취향을 보고 역시 미국에 끼치는 두 나라의 막강한 영향을 느꼈다. 특히 봄 방문에서 산책길을 꽉 채운 다양한 진달래꽃들의 화사한 색깔과 아름다움에 흠뻑 취했었다.

놀랍게도 그 진달래꽃 동산에 있는 튤립 포플러 나무 높은 가지에 대통령과 영부인이 둥지를 틀었다. 1947년 이래 70년만에 워싱턴 DC에서 독수리를 보는 사람들은 흥분했다. 둥지 높이 설치된 2개의 DC Eagle Cam 을 통해서 본 그들이 지은 보금자리는 탄복할 정도로 멋지다. 독수리 부부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일이지만 초고성능 웹카메라 덕분에 이들 부부의 활동과 생활상을 실시간으로 본다. 알을 낳고 부화하는 정경이나 정성스럽게 새끼를 돌보는 부모의 모습은 사람과 같다. 작년에 출산한 두 새끼는 ‘Liberty’와 ‘Freedom’ 이란 이름을 명명 받았는데 올해도 낳은 두 알 중에 하나가 부화한다는 뉴스였다. 올해 태어나는 새끼들이 어떤 이름으로 불릴지 상상하는 앵커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미소가 나왔다. 그날부터 나는 완전히 DC 독수리 가족의 광팬이 됐다.

그날 첫번째 알이 부화했고 이틀 후 다른 알도 부화했다. 이곳에서 태어난 순서가 4번, 5번째인 이들 독수리새끼들의 이름을 공모 중인데 4월24일 이후에 발표할 예정이란 뉴스를 읽고 호기심으로 기다렸다. 그러던중 지난달 말에 꼬무작 거리던 어린 새끼 하나의 오른쪽 다리가 나뭇가지 사이에 위태롭게 걸려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도우려고 여러모로 애쓴 부모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갔다. 카메라로 안타깝게 이를 지켜보던 미국독수리협회 보호자들이 아직 여린 뼈가 다칠까 걱정해서 나무 전문 등반가를 올려 보냈다. 그가 구제해서 데려온 새끼는 메릴랜드 동물원에 가서 다리와 건강을 체크한 후 다시 둥지로 돌려보냈다. 이때 혈액검사로 암컷임도 알게 됐다. 잠시지만 독수리 부부가 얼마나 걱정했을 지 안스러웠다.   

드디어 이름이 발표됐다. ‘Honor’와 ‘Glory’다. 이번에도 미국의 정기가 담긴 이름을 명명 받은 독수리새끼들은 단연 대통령과 영부인을 닮았다. 상징적인 존재지만 위용을 과시한다. 요즈음처럼 나라안이 요란스럽게 분열되고 미국의 가치관이 뒤죽박죽 혼선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Freedom, Liberty, Honor 와 Glory가 옛 건국자들의 취지에 부응해서 애국심을 고무시킨다. 미국의 기개를 상징하고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흰머리 독수리 가족이 수도의 푸른 상공을 장엄하게 비상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나도 날개를 활짝 펴서 자유롭게 창공을 나는 착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