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신문사 편집부장이 영화 시사회에 초대했을 적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영화관을 별로 찾지 않는 버릇이고 더더욱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본 적은 한국을 떠난 후 없다. 한국을 떠난 지 40년이다. 끔찍이 많은 햇수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남편을 재촉해서 서둘러 극장으로 가며 흥분했다. 입구에서 만난 지인들에게 들떤 인사하던 내 기분은 호기심으로 허공에 떴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앞뒤를 둘러봤다. 빠르게 좌석을 채우는 많은 낯선 한인들에 감개무량했고 몽고메리 한인사회의 급변화에 감회가 남달랐다.   

모국은 신비로운 설경으로 찾아왔다. 눈 구경하기 힘든 남부, 더우기 산이 없는 지역에 사는데 구비구비 이어진 장엄한 지리산의 산등성이와 무릎까지 푹푹 빠지도록 쌓인 하얀 눈은 환상이다. 눈덮인 알프스 산보다 부드럽고 푸근함을 준 지리산의 아름다움이 가슴에 절절하게 담겼다. 언젠가 모국방문 중에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하늘아래 첫 동네’라던 지리산 중턱에 있던 마을을 찾아갔다. 그때의 추억을 되살리며 수려한 산세를 더듬었다. 그렇게 영화의 스토리보다 솔직히 시작부터 대형 화면을 채운 영상에 더 매혹당했다.

일제시대의 설화가 주제인 영화 ‘대호’는 사람같은 호랑이와 호랑이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들과 새끼, 포수와 호랑이의 끈질긴 인연의 끈이 사람과 야생동물의 구분을 없애고 자연속에서 한 얼굴을 가졌다. 공존하는 동물들의 질서에 인간도 따라야 함이다. 호랑이 가죽을 탐내는 일본 고관의 강요와 광기에 보태서 사냥에 목숨을 건 포수들의 집념에서 인간의 본성이 느껴졌다. 지나친 탐욕은 결국 재해를 부른다. 겸허하게 자연에 순종하는 명포수의 소박한 자세는 산이 배경이어서 였을까. 마지막에 솟아오른 산능선 깊숙이 대호들이 안기자 간담이 서늘했다. 지리산은 전설을 지켰다.

10년 전, 현대자동차 회사가 몽고메리에서 자동차를 생산하자 몽고메리 한인회가 앞장서서 집집마다 ‘한국차 한 대씩 사기’ 운동을 벌렸다. 이곳 동포들이 모국의 기업을 격려하고 응원했던 그당시는 훗날 향상될 생활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나도 남편 몰래 뭉쳐둔 돈으로 현대자동차를 사서 남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했다. 그러나 한국차의 품질에 회의를 품던 남편은 별로 반기지 않았고 Made in Korea 새 차는 구박받고 오랫동안 세워져 있었다. 우리집의 조크였던 한국차를 남편은 슬그머니 출근길에 몰고 나가더니 이제는 매일 타고 다닌다. 편안하고 안전함을 증명했다. 그때 열심히 한인들을 단합시킨 한인회장은 현재 동남부연합회장으로 활동지역을 넓혀서 여전히 모국사랑, 한인사랑을 한다.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온 한류가 내민 손을 동포들은 선뜻 잡았다. 모국의 영향이 몽고메리에 끼친 변화는 우리집 생활속에서도 볼 수 있다. 성능 좋은 한국산 물품들이 일상에 편리함을 보탠다. 더불어 사무라이 영화를 즐기던 남편은 이제 한국 드라마를 본다. 드라마로 언어와 문화를 배우면서 마음을 빼앗기는 남편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더불어 김치없이 살던 우리집에 김치가 있고 여러 한식당에서 입맛대로 일식 한식 중식까지 선택해 먹으며 편안하게 사니 얼마나 감사한가. 우선 부엌에서 수고하지 않으니 내 생활에 여유가 생겨서 좋다. 식당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담아온 컨테이너들이 냉장고에 차지하는 자리가 많으면서 우리집 식탁의 음식이 슬그머니 한식으로 변한다.

오늘도 집 가까이에 있는 식당에서 남편은 일식을, 나는 한식을 맛있게 먹은후 떡카페에 들러서 말랑말랑한 떡을 사갖고 와서 디저트로 먹었다. 모찌를 좋아하는 남편은 연말에 개점한 떡카페를 무척 좋아한다. 한인 제과점의 달콤한 빵에 행복하다가 떡까지 쉽게 구할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이제는 몽고메리에서 한국영화까지 볼 수 있는 환경이 되니 갈수록 미국과 한국의 거리감이 흐릿해진다.

앨라배마의 원주민인 크릭인디언들이 엄중하게 실시하는 혈연의 검열이나 한 방울이라도 흑인의 피가 섞였으면 흑인으로 취급하고 괄시하던 과거사는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 어느곳에 살든, 불과 1퍼센트의 한민족 피가 섞였어도 한인으로 보듬고 싶은차에 영화 ‘대호’는 함께 발전해야 하는 도약판에 선 한국과 해외에 사는 한인들을 단합시킨다. 삶에서 지키고 싶은 것이 같고 해야 할 일이 분명하다. 지리산에 흔적을 남긴 대호들이 가르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