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성이 3주 연속, 금요일마다 회사를 제끼고 저랑 놀고 있어요.
평일에 일 안하고 놀러 다니니까 너무 좋다면서
휴가를 그렇게 일주일에 하루씩 야금 야금 쓰고 있는데
세 번의 금요일에
한 번은 영화(암살) 보고 점심, BBQ
그 다음은 한국 마켓가서 장 거하고 보고 점심, 설렁탕
지난 주는 쇼핑 잔뜩 하고 점심, 분식집에서 돈까스, 함박 스텍이크, 생선까스와 매운 참치 김밥
한 번은
저희 집에서 가져다 줄 물건들도 있고
제가 거기서 가져 올 물건들도 있어서
금요일에 만나 놀고 다음 날인 토요일에도 제가 성님 집으로 갔는데
집에 맛있는 열무 김치가 있다면서 열무 국수를 점심으로 해먹자길래
제가 쌀국수 먹을 거라고 우겨서 쌀국수 먹고 왔어요
그 당시 저희 집에도 맛있는 열무 김치가 있었어서
저 아침으로 고추장에 밥 비며 먹고 갔거든요.
그리고 셋째 성이 '열무 국수를 해먹자'함은
'네가 하려무나'라는 소리인데
부엌 들어 가서 물 끓이고 국수 삶고 그럴 기분 아니었어요.
머리 속엔 오로지 쌀국수 생각 뿐.
외출 준비 귀찮아서 절대 안 나겠다는데
저는 쌀국수만 외치면서 꿈쩍도 안 했어요.
지하철 타고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동네 걸어 나가서 먹고 오는건데
무슨 대단한 외출 준비가 필요 하다고..
으이구 저 고집쟁이! 하면서 느릿 느릿 나갈 준비하고
외출 용 옷으로 갈아 입고 나왔는데 보니
제가 준 원피스를 입었더군요.
왕래를 안하고 오래 살다가 얼마 전부터 다시 어울려 보니
회사 다닐 때 옷, 집에 있을 때 옷, 쉬는 날 나갈 때 옷
뭐 하나 변변한게 없는 거예요.
예전에도 그런 식이긴 했지만 오랜 만에 보니 정말..
나는 그 동안에도 꾸준히 사들이고 얻어 오고 해서 생긴 옷들이 지천인데
여름에는 옷을 하루에도 몇 번씩을 갈아 입으면서 동네 마실을 다니는데
열심히 직장 생활하는 성님은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어째 입성이 저 모냥일까...
둘째 언니나 셋째 성이나
비쩍 마른 중년 여인네들이
얼굴은 화장기도 하나도 없어서 아파 보이고
립글로스 만이라도 발라서 얼굴에 생기라도 줘보라고 그렇게 말해도
하기 싫은 사람은 이것도 절대 하기 싫은가 봐요.
둘째 언니는 자기 옷 사는 걸 아예 놓은지 한참 됐고
셋째 성은 얘기 들어 보면 옷은 자주 사요.
그런데 그게 둘째 언니 옷들 아니면 조카들 옷이고
자기 옷은 맨날 한 개 두 개 샀다가 다시 옷가게 가져다 주는 이런 것의 반복.
둘째 언니는 멀리 이사간 후로 제가 두어 번 소포로 부쳐 줬었고요
셋째 성은 알아서 하고 있으려나...궁금 했는데
다시 보니까 절대 알아서 잘 하고 있지 않았더군요.
만날 때 마다 자기 회사 입고 다닐 바지 필요하다고.
제가 듣다 듣다
그 회사 입고 다닐 바지 필요 하다는 소리는 내가 지금 이십 년째 듣고 있는거 같다고.
언제쯤이면 그 소리 안 들을 수 있을까?
하고 그 날 당장 바지 한 벌 사게 했어요.
남들이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는 저는 전혀 상관 안 하지만
언니들이 추레하게 있는 모습 보면 속상해요.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큰 돈 필요한 거 아닌데..
입고 나가면 보는 사람마다 이쁘다고 하는 내 하늘색 맥시 드레스가 동네서 산 십 불 짜리인데...
조금만 신경들 더 써서 조금만 더 화사하게 하고 다니지..
속상해요.
둘째 언니는 제가 사주는 옷이나 셋째 성이 사주는 옷들, 다 잘 입어요.
그런데 셋째 성은 제가 사다 주고 요금 청구해도 되는데
그럴 수가 없는게 또 엄청나게 까다로와서요.
옷을 사서 매번 안 입고 쳐다보고 고민하다 옷가게 다시 갖다 주는게
돈 때문이 아니고 뭐가 항상 마음에 안 드는게 있어서인데
그 이유들을 저는 전혀 이해 할 수가 없고요.
제가 봤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뭐가 어디서 어때서 그게 안 좋다고.
지난 달에 제 옷장에서 거의 새 것인 원피스 하나 가져다 줬더니
마음에 드는지 바로 챙겨 넣기는 했는데
진짜 입기는 하려나...했더니 입겠다고 입고 나왔네요ㅎㅎ
제가 입기엔 너무나 얌전한 스타일이라
모양 마음에 들어서 사기는 해 놓고 두 번 밖에 안 입었나..? 그런 옷이거든요.
팔이 민소매도 아니고 어깨 다 가리는 반 소매.
단추도 위까지 꼭꼭 잠글 수 있고ㅎㅎ
길이는 무릎 위.
입고 나와서는 다리 보이는거 흉하지 않냐,
뭐 또 어쩌고 저쩌고 하길래
이 더위에 시원하게 원피스 입으면 좋잖아.
입어 그냥.
우린 더 이상 젊어지지 않아.
한살이라도 젊을 때 입고 싶은 건 다 입어야 돼.
그리고,,,
성이 생각하는 것 만큼
남들은 성이 입은 옷에 대해 관심 없어.
남들이 나 볼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기 생각을 하고 입으라고.
그랬더니 마음이 좀 편해졌는지 더 이상 다리가 어떻고 뭐가 어떻고
말 안 하더라고요ㅎㅎㅎ
아니 안 그런가요?
바닷가 가서 해수욕하는 사람들 무작위로 남녀 백 명 뽑아서 본다고 쳐요.
거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모델들 같은 몸매가 몇 이나 되는지.
한 두명 나올까 말까 아닌가요?
일반인은 일반인답게
배가 나와도 궁댕이가 쳐져도 몸이 길쭉하지 않아도
바닷가에서 놀려니까 수영복 입는 거지, 뭐 그 이상 의미가 있나요?
내가 내 똥배 신경 곤두세우고 불편하게 있어 봐야
나만 불편한거지 거기 놀러 온 사람들이 내 배 보고 평점 매기고 이런 거 아니잖아요.
너도 나도 각 자 자기 시간 즐기면 그 뿐.
정작 남들은 나한테 관심도 없는데
그런 남들 신경 쓰느라 나하고 싶은 걸 못하는게 말이 되나요?
길에 오고 가는 사람들이 내 차림새 흘끗 보고 사실 속으로 욕 할 수도 있어요.
아니 뭐 저런 걸 입었대, 보기 안 좋군.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 길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하는 나에 대한 스쳐가는 생각은
내 인생에 전혀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그 사람들 눈과 취향에 내 옷차림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내가 나 입고 싶은 걸 입으면 안되나?
그건 아니잖아요.
어차피 그 속 내가 알 수도 없고요.
나와 전혀 관계 없는 사람들 혹은 나한테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의견은 저는 개의치 않아요.
내가 누구 만나러 갈 때나
여러 사람 모이는 어떤 모임에 갈 때
그럴 때 적합한 차림새에 대해 좀 신경을 쓰면 쓰는 거지
오페라 하우스 가면서 요가복 줏어 입고 가는 것도 아니고
회사 출근하면서 숏팬츠에 야구 모자 쓰고 가는 것도 아니고
꼴랑 동네 베트남 식당에 쌀국수 먹으러 가는데
누가 내 옷차림을 보고 흉을 본다고
남 시선을 신경 쓰고 불편해 해야 하나요.
그냥 시원하게 입고 나갔다 오면 될 것을.
몇 분 지나니까 홀가분한 표정으로
바람이 솔솔~~ 통하는 것이 시원하고 좋구나~~~
이러대요.
그러고 나서 원피스 하나를 또 줬어요.
면으로 된 연보라 색인데 이게 색감도 은은하니 괜찮고 또 굉장히 시원해요 이것도.
이건 제가 나름 아끼는 것이긴 한데 이것도 거의 새 것.
이것도 아주 얌전한 디자인.
아끼는 것이지만 그래도 줬습니다.
나한테 낙낙하게 맞는 거라 성한테 클지도 모르겠다면서 주니까
저한테도 낙낙한 걸 자기를 주냐고 팩 쏘아 부치더만...
흠...자기도 나잇살이라는게 있는데
그럼 그렇지ㅋㅋㅋ
지난 토요일에 제가 김밥싸서 공원 간다니까
김밥 얻으러 오겠다고 득달같이 왔는데
입고 왔더만요.
아주 잘 맞더군요. 내 눈썰미가 어떤 눈썰미인데.
내가 입던 옷이라도 두 개 줘서 저렇게 입혀 놓으니 제가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처음 준 건 타겟에서 산 16불 짜리였고
두번 째 건 마샬에서 산 18불 짜리.
십 몇불 짜리만 걸쳐도 사람 분위기가 저리 확 달라지는데
왜 그리 하고 다니는지.
셋째 성은 저 땜에 올 여름에 플립 플랍도 두 켤레 샀고요
양산도 샀고요
설거지하고 물 빼는 바구니도 샀고요
속옷도 샀고요
아 그리고 제가 동네 플리마켓에서 산 진짜 촉갑 보드랍고 왕 세련되 보이는 숄도 하나 줬어요.
이건 사실 제가 두르려고 산건데...보더니 너무 예쁘다며 마음에 들어 하길래
사실은 성님 주려고 산건데 내가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오늘 두른 거라고 거짓말하고 주고 왔어요.
이번에 쇼핑하러 같이 다니면서는 물건 사기 특별 훈련도 시켰어요.
필요해 안 필요해?
지금 필요해서 이거 보고 있는 거지?
뭣 때문에 고민하는지 모르겠지만 물건 쳐다보면서 망설이느라고 보낼 시간이 없어.
이러다 체력이 바닥나는 거거든?
지금 우리가 살 물건이 많고 (저도 사야 할 품목이 두 개 있었어요)
여러 가게를 돌아야 하는데
물건 하나 가지고 이렇게 고민하느라고 시간과 체력을 소비하면
사려는거 다 못 사.
사겠으면 사고 무슨 이유에서든 안 사기로 했으면 다른 데로 옮기자.
그랬더니 샀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결정을 못하기로는
같이 한국 식당을 가면 메뉴를 제가 골라 줘야 할 정도예요.
그러지 않고 본인 재량에 온전히 맡기면
10분이 지나도록 메뉴판 쳐다 보면서 혼자 괴로워 해요. 뭘 시켜야 할 지 몰라서.
둘이 노여사한테 생일 선물로 양산을 하나씩 사 달라고 하고
각 자 보고 있는데
이거 또 저 분한테 알아서 골라서 주문하라 하면 이 여름 끝나기 전까지 못 골라요.
제가 제 꺼 고르고
셋째 성 것 까지 골라서 이메일로 링크 보내 줬더니
제가 고른거 너무 공주병스럽네 어쩌네 하더니
(공주병 스러운게 아니고 이게 있어야 나의 나홀로 공주놀이가 완성이 되는 거라고!)
자기 걸로 골라 준 건 그걸로 주문 했대요ㅋㅋㅋㅋ
쇼핑몰 안 여러 가게를 두루 찍고 각 각 쇼핑백 한 보따리 메고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 앉아서
타겟에서 산 초콜렛 까먹고 있으니까
나 옷 사야 돼 진짜. 회사갈 때 입을 옷이 없어...
으으윽...또 나왔다 저 눔의 회사 옷 소리...
그렇겠지.
그래도 접 때 바지 한 벌은 샀다고 바지에서 그냥 '옷'이라고 하네.
자기나 둘째 언니는
저처럼 마샬이나 티제이 같은 데서는 절대 물건을 고를 수가 없다면서 또 탄식.
그게 왜 어렵지???
나는 30분 시간 주면 아이템 열 개는 너끈히 집어낼 수 있는데...
열 개가 뭐야. 스무 개도 가능하지.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마샬과 티제이란 멀리 멀리 해야 할 공포의 스토어인데...
지난 주 금요일에 물어 봤더니
휴가 열 흘 남았다고 하던데
이번 금요일은 어쩌려나 모르겠어요.
만약에 옷 쇼핑가자 하면 하루를 온전히 셋째 성 회사 옷 골라주기 해줄 수도 있어요.
아니다, 해줄 수도 있는게 아니라
꼭!! 해주는게 좋겠어요.
어차피 점심은 사 줄 것이고.
그럼 이번엔 샤브샤브 먹자고 해야지.
셋째 성은 맨날 회사만 가다 평일에 땡땡이 쳐서 좋고
만년 백수인 이 동생은
허구헌 날 주구장창 집에서 밥만 해대다(어차피 다 내가 먹는 거지만)
나가서 사 먹으니 좋고.
김밥 가지러 온 셋째 성한테 같이 공원 가자고 해서
공원 가서는
(그 날 동네 공원에서 하루 종일 라이브 음악을 했었거든요.
저희는 남편 아는 사람 밴드 나오는 시간 맞춰서 가기로 계획하고)
무대 코 앞에서 희한한 목각 인형 마냥 춤 추는 남편은
(발은 안 떼고 고개만 까딱까닥, 가끔씩 손 놀리고.
셋째 성이 어디다 유포할 작정 인지는 모르겠지만 웃겨 죽겠다고 동영상도 찍고ㅋㅋ)
나와 일행이 아닌 척 하고
새로 산 예쁜 돗자리 깔고 그 위에서 성이랑 저랑은 김밥 먹었어요.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그러나 비싸서 특별할 때만 사 마시는 탄산 음료인 오렌지나와 함께~!!
김밥은 저렇게 밖에서 먹어야 제 맛이죠.
여름 저녁에 강 바람 쐬면서 라이브 음악 들으면서 오렌지나와 함께 먹는 김밥!!!
김밥 맛있게 싸 줬으니까
다음에 또 샤브샤브 얻어 먹어도 됨.
회사 옷 쇼핑 열심히 도와주고 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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