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올 여름 나는게 힘이 들었어요.
대단한 일 하는 것도 아닌데 일하러 다닌다고 몸이 쳐지고.
남편 미워 하느라 또 혼자 속으로 기운 다 쓰고.
이러는 와중에
며칠 전에 중학교 3학년 때 친구가 저를 인터넷으로 찾아서
오늘 아침
친하게 지내던 네 명이 카톡으로 마침내 다 연결이 되서
수다를 떨었어요.
저보고 옛날 그대로라고 다들 그래서 제가 성질을 버럭 냈고요.
아니,,,내가 30년 전에도 이리 늙어 보였냐고요...
작은 아들이 군대 갔다는 친구 (헉!)
아들 하나 지금 고 2 라는 친구,
딸래미 하나 지금 막 일곱 살 됐다는 친구.
그리고 애 없는 저.
일단 애들 얘기 쭉 하고 나니까
그 다음 남편들 얘기 할 줄 알았는데
약속이나 한 듯이 아무도 남편 얘기는 안 하고.
우리 나이 때 되면 이미 남편들은 관심 밖이 되는 건지
내일 병원 간다,
어디가 안 좋아 수술 했다,
영양제는 뭐가 좋냐,
나도 박보검이 좋다.
이렇게 끝났어요.
노여사가 씨니어 센터 가기 싫다고
한국 노인네들은 자식 자랑 아니면 병 자랑 밖에 화제가 없다고 그러셨는데
나이 마흔 중반에
삼십 년 만에 연결된 친구들이랑
저도 이런 얘기나 할 줄은ㅎㅎㅎ
자식 자랑이야
자식이 태어 난 순간 부터 하는 거라고 전 생각을 해서 그러려니 하는데
정말 벌써 부터 자기들 어디가 아팠는지
지금 어디가 아픈지
이런 얘기 하게 될 줄 몰랐어요.
다들 큰 병 없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살자, 이렇게 제가 제법 어른스러운 소리를 했고요.
저 보러 뉴욕 온다고 난리를 치는 친구들을 제가 진정 시켰어요.
그럴 돈 있으면 어디 다른데 더 좋은데 놀러 가라고요.
난 아주 뉴욕 지겨우니까 여기 오지 말라고
지금 부터 계획 세워서 2년이나 3년 후에 하와이 같은 데서 모여 놀자고 했어요.
제일 친했던 친구랑은 전화 통화도 두 번을 했는데
첫 날은 막 울더라고요.
믿기지가 않는다며.
시험 망치고 운동장에 앉아 있는데
제가 자기를 보고 막 뛰어 오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하고.
큰 일 겪고 아무한테도 못 했던 말들,
왜 그리 살았는지 후회 된다고도 하고.
중학교 3학년 때 매일 붙어 다니다 고등학교 가면서 흩어 졌는데
고등학교 가자 마자 그 친구가
큰 일을 당했었거든요.
큰 교통 사고가 나서 엄마 아빠가 돌아 가셨어요.
뒷 자리 있던 친구랑 친구 오빠랑은 괜찮았는데.
그 때 난 너가 너무 의연해서 뭐라고 말도 못 했다고 하니까
자기는 그 때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할 줄을 몰랐었다고 하고
이제는 하고 싶은 말 다 나누고 살고 싶다면서 막 울더라고요.
사고 이후
큰 언니가 어땠고
둘째 언니가 어땠고
잘 챙겨 주던 오빠가 결혼 후에 돈 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변했고
이런 얘기를 남편 한테도 못 했는데
지금 너한테 하고 있네
이러면서 막 우는데
나 대학도 못 갔어.
난 너가 엄청나게 굉장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 같아서
겁이 났어.
한국말도 다 잊어 버렸을 거 같고.
심각하게 듣다가...
너 지금 나 욕 하냐?
나 찌질하게 산다. 됐냐?
내가 바보야 한국말을 잊어 버리게? 영어를 못한다 내가.
그 이후로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다 괜찮다고.
남편도 좋은 사람이고 아들도 자기 닮아 아주 착하고.
하는 가게도 잘 되고
너를 꼭 찾고 싶었는데 마침내 찾아서 너무 기쁘다고.
통화를 하는데
한 문장 끝내는데 제 이름을 한 다섯 번쯤 불러요.
은정아, 그 때 내가, 은정아 내가 너무 내성적이었잖아 은정아,
은정아 근데 너는 은정아, 은정아 너는 항상 잘 웃고, 은정아 너가.
제가 듣다가 웃음이 나는데 뭐라고는 안 했어요.
은정아 은정아 은정아 은정아 은정아 은정아.
아 나도 내 이름 안다고.
은정이다...내 이름.
이라고 하려다 그냥 말았어요.
실컷 불러라. 그렇게 불러 보고 싶었으면!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렇게 오랜 만에 연락 된 친구들이 다 잘 살고 있더라고요.
좋았어요.
잘 못 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잖아요.
아 나도 좀 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몇 년 전에 올려 놓았던 페북 사진들을 보고는
너 남편이야?
응 안타깝게도.
잘 해 주지?
말만. 행동은 미친 놈이야.
어머 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전혀. 나니까 살아 주는 거야.
남편 음악 하나 봐? 멋지다.
멋 있으면 니가 데리고 살던가.
왜 좋아 보이는데.
다 가식이야.
이러다 보니 저도 좀 챙피해져 가지고...
자랑할 거리 찾다가 내뱉은 말이
나 김치 담가 먹는다.
칭찬 많이 받았어요.
너는 애를 안 낳아서 여전히 몸이 말랐나 보다고 하길래
밥은 아주 잘 먹는다고 했더니
회충약 먹어 보라고 해서
안 그래도 남편이 맨날 그 소리 한다고.
대변 검사는 했더니 회충은 없다고 하더라 얘기해 줬고요.
작년에 다들 독한 맘 먹고 다이어트 해서 살 많이 뺐다고 하길래
이 나이에 미스 코리아 나갈 것도 아니고
걸그룹 데뷔 할 것도 아닌데
쓸데 없이 밥은 왜 굶냐고
난 한 끼만 놓쳐도 어질어질 하고 팔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고 했다가
별 호응은 못 얻고.
평생 안 찌던 사람도 갱년기 오면 확 찐다고 하니
아마 아직 갱년기가 안 와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고요.
사실 전 30년 전, 제가 중학교 3학 년 때
내가 어땠는지 잘 생각은 안 나요.
그런데 그 동안
저를 생각하면서 연락 되기를 바랬다는 친구들하고
30년 만에 채팅을 하니
다들 그 동안 제가 보고 싶었다 하니
제가 막 못되게 그렇게 살지는 않았었나 봐요.
항상 기고 만장하게
내 맘대로 살았었어서
과거의 사람들 만나는게 자신이 없었는데
그 친구들한테는 다행히 제가 많이 잘못하지는 않았었나 봐요.
제일 친했던 친구가
엄마 아빠 사고 나고 나서
상은이(가명) 는 연락이 한 번 없더라...
하길래
걔 원래 싸가지 였던거 몰랐어?
했더니
몰랐어. 난 너무 서운했어. 넌 알았어?
하길래
당근 알았지. 걔 싸가지 였어 가지고 내가 걔한테 맨날 한 방씩 먹였잖아. 기억 안 나?
아 넌 알았구나.
난 몰랐어.
너무 곱게 사는 사람들은 이게 문제예요.
싸가지들을 몰라 보고 세상 사람들을 다 좋게 보는거.
아 그걸 여태 모르고 있었음 어떡해.
나이 사십이 넘도록 섭섭해만 하면서.
나는 이미 열 다섯 살 때 알았고만.
야 내가 걔한데 별로 더 나을 것도 없고만 잘난척 하지 말라고 한 거 기억이 안 나?
시험을 몇 점 넘으면 엄마가 이번에 뭘 사준다 했다고 맨날 자랑.
난 사실 걔랑 어울리고 싶지도 않았는데
너가 전 학년 부터 걔랑 친구라고 해서 억지로 어울린 건데
잘난척에 진짜 기도 안 차서.
그 점수가 뭐가 어려워서 그리 아둥 바둥 하냐고 내가 한 마디 해서
그 뒤로 나랑 원수 됐잖아.
아 그랬어? 몰랐어. ㅎㅎㅎ
너는 그 점수가 쉬워? 난 너무 어려워.
하길래
응 나는 쉬워. 난 공부 따로 안해도 그 점수 맞을 수 있어.
해 가지고 완전 원수 됐는데.
그러니까 자기 보다 성적 조금 더 안 나오는 친구들 앞에서
잘난 척 좀 그만 하라는 얘기 였는데
지도 공부 잘 하는 애는 아니었어요.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 중에서 그저 중간 좀 넘는 정도.
제가 참다 저렇게 한 마디 던졌더니
완전 원수가 돼 가지고,
같은 학교에 같은 친구들이니 계속 보는 사이라 완전 안 보지는 못하고
나중에 얘기 하는데
너는 어쩌면 그렇게 차갑게 얘기를 했냐고.
자기 너무 상처 받았다고.
너는 다른 얘기로 다른 친구들 마음 많이 상하게 했었어.
난 너한테 미안하지 않아. 조금도.
이랬던 얘기를 30년 만에 하니 제 베프가 너무나 좋아해요.
그랬던 얘기 왜 진작 안 해 줬었냐고.
싸가지들은 빨리 잊어 버려.
마음에 둘 가치가 없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항상 의리를 지켜.
30년이 지나도 이쁜 아짐은 너무나 멋있는 친구. 후훗~!
제가 지금이나 찌질하지
예전엔 진짜 씩씩하고 괜찮았었 던거 같아요.
다시 예전의
씩씩하고 괜찮은 사람으로 돌아 가야 겠다...하는 의지도 생겨요.
목소리만 들어도 너무 꿈만 같다고 좋아하며 우는 친구를 보니..
그래.
은정이다...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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