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인 여름 다들 잘 보내고 계시는지요?

 

 

저는 시골가서 며칠 잘 놀다 왔어요.

들판의 메뚜기처럼 신나게 뛰어 놀다 왔더니

얼굴 색이 간장색이 되었고요,

 

 

 

보통 때는

튀어 나온 눈에

튀어 나온 광대뼈에

튀어 나온 주둥이가 조화를 잘 이뤄서

예쁜 '황소 개구리'같은 제 얼굴이

여름되서 햇빛 받고 이렇게 새까매지니

예쁜 '두꺼비'가 되어 버렸어요.

 

 

4박 5일 중에

이틀은 비가 오락 가락 밤에는 천둥 번개 치고

나머지 날도 흐렸다 개었다 이랬었는데

역시

산골 햇빛은 시내 햇빛과는 그 강도가 달라요.

 

 

가 있는 동안

'공교롭게도' 제 생일이 끼어 있어서

생일도 자알 대접 받고 재미나게 보냈고요.

 

 

시부모님,

저희 부부 그리고

막내 시누

 

 

이런 최상의 조합으로 4박 5일 일정 내내 잘 보냈습니다.

 

 

집에 돌아 와서는

물리적 거리는 한참 멀어 졌지만

심리적 거리는 외려 더 가까워 진 듯도 한 둘째 언니한테

전화 해서 상세 보고를 해 주었고요.

 

 

뉴욕에서 살 때는

얼굴을 봐도

전화를 해도

언니 사는게 1분 1초까지 쪼개서 발 동동 구르며 사는 생활이라

한가하게

이런 얘기들도 못하고 살았었어요.

 

 

물론 언니는 지금도 엄청나게 바쁜 생활이긴 하지만

여기서 쫒기듯 바쁘게 살던 것과는 많이 달라 졌어요.

 

 

손바닥 만한 작은 마당에서 텃밭도 꾸리기 시작했고

(뉴욕에서는 마당이 외려 더 넓었고만

내가 몇 년을 그리 화초들 키우는거 재미 있다고 주장을 해도 들은 척 만 척 하더니)

 

 

싹이 튼 것이 너무 신기하다고 난리

잘 자란다고 난리

토마토에 열매가 맺혔다고 난리

매일 사진 찍어 보내고 난리

 

 

전화하면 토마토 얘기만 십 분.

 

 

제가 참다가 어느 날은 말해 버렸어요.

 

 

으이구...누가 들으면 토마토가 늦둥이 애칭인 줄 알겠다.

토마토가 아니면 대화가 안되는구만.

 

 

안 그래도 애들이 그런대요.

엄마는 우리 보다 토마토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고.

 

 

 

다음 날 부터는

오이 얘기로 넘어 가더군요.

 

 

 

내가 몇 년을 여기서

깻잎 하나 키우면서 신기해 하고

고추 하나 열리는 거 보면서 감동하고

아침에 화분 쳐다 보면서 혼잣말 하고

위로 받고

치유의 효과가 있다고 해도

그 말이 귀에 안 들렸던 사람이

마음이 움직이려면 모든 일이든 다 때가 있는 거 같다고 했더니

 

 

 

제 말이 맞대요.

둘째 언니의 일과도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 타서

텃밭으로 나가 쪼그리고 앉아 밤 새 자란 채소들 쳐다 보며 혼잣말 하는 걸로 시작.

 

 

그 시간이 참 좋지?

마음이 편안해 지지?

 

 

하니

그렇대요.

 

 

언니가  항상 그 타이밍에 저한테 전화를 하니까

대화의 시작이 토마토, 오이, 깻잎, 고추일 수 밖에 없어요.

 

 

 

사는 얘기도 마찬 가지로

여기서 살 때는

서로 뭘하고 사는지 뭘 먹고 사는지 근황은 다 알고 있지만

어떤 기분으로 사는지

어떤 마음으로 어제 하루를 보냈는지

그런 얘기까지는 전화로 한가하게 하면서 살지 못했어요.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은

언니가 그런 얘기를 해요.

 

 

 

내가 얘기할 차례가 되어 별 일도 아닌 늘상 그래왔던 남편의 어이 없는 행동들을

미주알 고주알 얘기해 주면

워낙에 웃음이 많은 언니는

까르르 까르르 넘어 가요.

 

 

이번에 시골 가서

시아버지와 남편이 또 어떤 일로 서로 삐졌는지

막내 시누가 그 시골에서도 얼마나 입이 떡 벌어지도록 부지런하게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는지

미주알 고주알 얘기해 주니

언니는 수화기 저 편에서 또 까르르 까르르.

 

 

 

더 빠질 살도 없었는데

제가 봤을 때 보다도 더 말랐다고 하니

진짜 뼈에 가죽만 붙이고 다니나 봐요.

그래도

몸은 힘들어도

새로운 곳에 가서 시작한 일들이

생각보다 빨리 좋게 풀려서 다음 달 정도면 돈이 훨씬 더 들어올 거라고 좋아 하더군요ㅎㅎ

참 잘됐어요.

 

 

 

힘들게 일하면 그만큼 댓가가 나오는 일인가

아니면 힘만 죽어라 들고 돈도 안되는 일인가

이 둘 중 하나지

어떤 돈도 쉽게 버는 돈이란 없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언니는 몸은 힘들지만 힘든 만큼 벌이가 되는가 봅니다.

마음이 좀 편해진 듯 했어요.

 

 

계속해서

이번에 시골가서 그 집 식구들이 나 잘해 준 이야기, 항상 하는 자랑질,

그리고 생일 보내면서 눈물 바다가 된 이야기.

저 집 식구들은 내 생일에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시어머니는 남편한테 저 아이를 찾아내서 고맙다며 울먹이시고

(생일 전 날 오후에 무슨 이야기 인가를 하시다 남편 팔에 한 손을 얹으시더니

Paul, thank you for finding her...하시며 눈에 눈물이 맺히고)

남편은 식전 감사 기도 하면서 하나님...저 사람...고맙습니다...이러면서 울고.

(디어 갓...땡큐 포 이쁜이...그리고 침묵이길래 한 쪽 눈 뜨고 봤더니 양쪽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막내 시누랑 시아버지는 항상 작별 인사할 때 눈이 젖어 들고...

울보 가족이라고 이 집 사람들은.

 

 

 

이 얘기 해 줬더니

까르르 까르르 웃던 언니가 목소리가 가라 앉으면서

다들 너무 감사하다고

우리 막내한테 그런 시집 식구들 보내 주신거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막 이러고.

 

 

 

나 참...

 

 

 

언니한테 저만의 굉장한 스카치 테이프 농법 을 얘기해 줬어요.

 

 

 

 

간 밤에 엄청난 폭우에 비바람 몰아쳤던 다음 날

득달같이 나가 봤더니 역시나 고추 나무 네 개 중 두 개가 부러져 있더라고요.

 

 

 

이걸 어쩌면 좋아...

깻잎 모종도 데려다 놓은지 사흘도 안되 다 죽어 내 보냈는데

고추까지 이젠 두 개나 이렇게 부러져 버렸네...

어쩌면 좋아...아이 속상해...

 

 

 

이러고 있다

밑져야 본전이지 하면서

집으로 들어와 스카치 테잎 들고 나가서

부러진 곳 손으로 잡고 둘둘 말아 줬거든요?

 

 

그랬더니...

얘네들이 사네요???

살았어요.

그리고 나서는 심지어 고추도 한 개씩 열렸어요.

아 이런건 정말 눈물이 날 만큼 대견하면서

채소 키우면서 정말 정말 감동스럽고

이 생명력에 제가 치유를 받는 순간이예요.

 

 

두어 달 전에

노여사 때문에 한참 힘들어 하면서

엉엉 울면서 둘째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었고

얼마 전에는 결국 노여사가 저하고도 사단이 나서

저도 속이 괴로울 대로 괴로운 중이거든요.

 

 

 

언니,

엄마가 우리를 주기적으로 이렇게 힘들게 할 때 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죽을 것 처럼 속이 상해도

폭풍우에 부러져 죽을 것 같던 고추도

스카치 테이프로 땜빵해 주니까 사는 것 처럼

우리한테도

스카치 테이프 땜빵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언니한테는 아이들이 있고

나한테는 저 사람 식구들이 있고.

그렇지?

 

 

 

시부모님이 시내에 내려 오셨을 때 점심 먹으면서

이 굉장한 스카치 테이프 농법을 말씀 드렸더니

시어머니가 너무 너무 즐거워 하시는 거예요.

 

 

 

그것 참 대단하구나. 호호호 호호호

너무나 놀라운 일이로구나. 호호호 호호호

너는 '닥터 페퍼'로 구나. 호호호 호호호

 

 

 

하시더니 아니지

페퍼를 고친 네가 닥터니까

페퍼 닥터로 하자꾸나 호호호 호호호

 

 

 

페퍼 닥터의 야심작, 사진 보여 드릴께요~

 

 

 

 

 

 

 

 

 

 

 

 

 

 

 

 

 

 

 

 

 

 

 

 

살아 내어 준 것도 고맙고

열매까지 맺어 준 것도 대견하고

어차피 내가 따 먹으려고 키우는 것들이라 따 먹어야 할 텐데

고추가 세 개도 아니요, 두 개도 아니요, 달랑 하나라..

이것 참 따기도 선뜻 손이 가질 않네요.ㅎㅎ

 

 

 

아 그리고요,

또 하나 기쁜 소식은 깻잎이요!

 

 

 

비워 두웠던 큰 화분 하나에서 저절로 깻잎이 두 그루가 나왔고요ㅎㅎ

(아마 작년에 저절로 씨가 그 안으로 들어간 거겠죠? 만세~~~)

그 옆에 작은 화분 하나에서도 또 두 그루가. 어머나!!!

그리고는 여덟 개 다 새들의 공격에 뜯겨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화분 하나에서 두 개가 살아 남았어요. 아아~~~~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모종 다 죽었다 생각한 이후로

그 충격으로 인해

다시 사다 심을 생각 딱 접고 올해는 그냥 깻잎 사다 먹자...이러고 있었는데

깻잎 여섯 그루가 자라고 있고요,

이미 한 번 수확해서 삼겹살 구워 먹었어요~!!!

 

 

 

 

 

 

 

 

 

 

 

 

 

 

 

 

 

 

 

 

 

 

 

저절로 나온 깻잎

 

 

 

 

 

 

 

 

 

 

 

 

 

 

 

 

 

 

 

 

 

 

 

 

 

이건 올해 화분 농사 전체샷인데요, 종류는 여전히 나름 다양하고요 ㅎㅎㅎ

깻잎,

꽈리 고추,

매운 풋고추,

해마다 저절로 자라 나오는 시골에서 퍼 왔던 레몬 밤,

이번에 시골에서 퍼온 민트,

역시나 같은 사연으로 해마다 조금씩이라도 나오는 타임,

꽃가게 출신 이탈리안 파슬리, 이탈리안 베이즐, 그리고 올 해 처음 시도한 그릭 베이즐,

한 번 밖에 못 먹고 벌써 끝물이 되어 버린 그저 그랬던 쑥갓,

씨부터 뿌려 키운 부추.

(제일 맨 앞 오른쪽에 보이는 주황색 사각 화분이 부추인데요,

씨 뿌리고 나서 2주 정도 지나서 싹이 올라 오는데

부추랑은 다른 모습의 어떤 싹이 보이는 거예요.

얘는 뭔지 보자 하면서 안 뽑고 놔두었더니 글쎄 저렇게 메가 싸이즈로 자라서 저를 깜짝 놀래키고 있어요.

저게 대체 뭘까요???)

 

 

 

올 해 여름은

지금까지는 그리 살인적으로 덥지는 않네요.

에어컨 안 틀고 그럭 저럭 선풍기로 여름 보내고 있어요.

저 화초들도

볕도 하루에 두 시간 받을까 말까인 구석탱이 쪽자리를 자기 터전으로 알고

저리 씩씩하게 자라 주는데

사람인 내가

그 반의 반만큼이라도 살아 내자는 근성을 보여 주면

저 역시도 씩씩, 튼튼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