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바빠졌어요.

 

 

기타 쳐주고 돈 받아 오는 밴드 일을 하나 잡아 가지고

그저께 오디션 겸 해서 첫 탕을 뛰었는데

뭐가 어쩌고 저쩌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오늘 연주한 건 돈을 받아 오긴 했는데

그 쪽 장비에 문제가 있어서 뭐가 어쩌고 저쩌고 해서

 

 

그냥 됐다고 할지도 모른다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서 들어 왔더라고요.

 

 

안되면 안되는 거고

그럼 또 다른거 찾아 보면 되는 거고

오늘 연주한 건 돈을 받아 왔으니

우리 그 돈으로 감사하게 장 봐다가 맛있는거 해먹으면 되는 거고

당신은 기타를 잘 치는 사람이니까

당신 스타일이 그 밴드에 안맞을 수는 있겠지만 당신 기타 실력에 대해 의심하지는 말도록.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고

남편이 저래 틴에이져부터 열심히 해 온 기타를

마누라가 돼서 좀 더 그 세계를 많이 알면 좋으련만

사실 저는 아직도 남편이 어쩌고 저쩌고 얘기를 하면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요.

그런데 그냥 남편 기운 돋아 주느라고

좋은 소리는 다 갖다 부쳐 주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기타 공부를 저도 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깨 쳐진 남편을 위로해 주고 있는데

밴드 리더한테 전화가 와서는

앰프 버튼을 자기가 잘못 눌렀었다고 미안하다고 하면서  

연말 스케줄까지 쫘악~~~~~~

 

 

휴우...

남편한테 다행이 아니라 저한테 다행이예요.

이번 일 이렇게 그르쳤으면

저는 저 사람 쳐진 어깨를 정상 각도로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었어야 할 지 몰라요.

 

 

주말은 꽉 찼고요

주중에도 하루 하고

그 와중에 생계형 일 또 끼워 맞추고

연말까지 완전 바빠졌어요 저 사람.

 

 

이래서 떼돈을 버느냐,,,

물론 절대 아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얼마 간의 돈을 번다, 라는 것

엄청난 일이죠.

 

 

그 얼마 간의 돈이

배우자인 제 입장에선

1불, 2불도 푼돈이란 없고 하찮은 돈이란 없어요.

조거조거 알뜰히 야금야금

개미가 월동 준비하듯 차곡차곡 꾸준히 가져다 주면

 

 

 

이 베짱이는 감사한 마음으로

계란도 사고

우유도 사고

햄도 사고

돼지고기도 사고

스프링 믹스도 사고

콩나물도 사고

감자, 양파, 두부도 사서

 

 

 

감사한 마음으로 별거 별거 다 해먹을 수 있으니까!

 

 

남편이 음악을 업으로 삼고 싶어할 때 제가 적극 밀어준 이유는

이런 날을 보고자 함이었는데

지난 몇 년간 지지 부진하길래

그렇게 하고 싶다더니 그조차도 안할거면 그거 핑계대지 말고

다시 생활 전선으로 나가 최선을 다하라고

구박을 디립다 했었는데

역시...

내가 내조에 발벗고 나서니까 이런 결실이...

 

 

남편더러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동의를 한 것은

사실 내조라고는 할 수 없고

이건 부부 간에 지극히 기본적으로 합의가 되어야 할 중요 사안이지만

(이거 합의 안됐으면

서로 사네 마네 할 만한 사안이니까)

그것 말고는 제가 남편 하는 일에 딱히 뭘 도와 준 것도 없어요.

 

 

그러다 제가 올 해 마음 먹은 게

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할 일이 있다면 참여를 하고 그래야 겠다...였거든요.

 

 

그래서

초 여름엔 빌리지 술집으로 한 번 따라도 갔었고

(이건 완전 속은 케이스.

무대에 올려 주겠다는 낚시밥 던져 놓고 그 집 술 팔아 달라는 농간이었음)

집으로 오는 길에

이런 일도 있어야 좋은 일도 생기겠지.

하면서 남편 어깨 또 어루만져 주고.

 

 

당신 덕분에 이렇게 오랜만에 워싱톤 스퀘어 파크를 와 보네.

옛날엔 항상 혼자 왔었는데

당신이랑 같이 오니까 더 좋네.

 

 

하면서 쓸쓸한 기타리스트의 기분 돌려 주느라고 저 날 밤도 진짜 고생 많았음요.

 

 

내가 당신 로드매니져 해줄 테니까 어디든 가고 싶은데 있으면 지금부터는 같이 다니자.

돈을 안주는 무대라도

당신 기타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 줘야 해.

어디든 가 보자고.

 

 

두 시간을 기다렸다 어둑어둑해진 시간에 집으로 발 길을 되돌리면서

지하철 역 가는 길에 지나갔던 워싱톤 스퀘어 파크에서

반딧불이들을 봤어요.

 

 

이야...아직도 뉴욕 시내에서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니...

정말 예쁘다...

 

 

이 시점에서 남편은 한 손에 기타 케이스를 들고

다른 한 팔로 제 어깨를 감싸고 있었어요.

 

 

쪽!

 

 

그래 뽀뽀나 하자고. 돈도 안 드는데.

 

 

이로부터

두어 달 후에

고향 마을 술집에서 있었던 연주는 대성공이었어요.

 

 

 

다른 밴드의 오프닝으로 계약이 되어 있었는데

실질적으로는 남편 밴드가 완전 대성황이었고

술집 주인 아저씨가 기분이 좋아서 계약한 돈 추가로 웃돈 얹어 주었고

그 얹어 받은 웃돈은 고대로 다른 밴드 멤버 둘이 만장일치로 남편한테 몰아 주었고

 

 

 

이 날 남편이 동원한 관객은

저 날

큰 시누 내외

막내 시누

저

남편 친구 부부 (일부러 이거 보려고 고향 집 찾아 옴)

 

 

이렇게 였고

 

 

저는

백인 일색인 저 심심한 시골 동네 술집에서 정말로 보기 힘든

옷차림과 태도로 등장하여

저 술집 확 다 뒤집어 놨어요.

남편 밴드 첫 곡 부터

완전 관객 분위기 바람잡이 노릇을 톡톡히 함으로써

내조의 여왕 신고식을 성공적으로!

 

 

시누들과 남편 친구 부인의 격려를 한 몸에 받으며 열심히 내조하고 왔습니다.

남편 말이

저 술집 손님들이

앞으로 적어도 석 달은 제 얘기를 할 거라 하더군요.

 

 

 

둘째 언니가

 

 

참 잘 만났어 너네는.

술 먹고 놀기 좋아하는 여자가

술집으로 연주 다니는 남자랑 살고 있으니.

 

 

 

해서 제가 버럭 했어요.

 

 

내가 놀라고 논게 아니라니깐!!

 

 

 

젊어서 음주가무 너무하고 놀았어서

진짜로 지겨워요 이젠.

저는 이태원 나이트에서 새벽에 스테이지에서 코피 쏟은 적도 있어요.

너무 놀았어서 진짜로 노는 것에는 여한이 없는 사람이예요 제가.

해지면 집에 와 있어야 마음 편하고

저는 집에서 밥 하고 먹고 밥 하고 먹고 그냥 그러고 있는게 좋지

나가고 싶지도 않고 놀고 싶지도 않아요 이젠.

힘도 없고요.

이젠 한 번 나갔다 오면 내리 사흘쯤 앓아 누워야 하는데 말이죠.

순전히 내조하느라 저러고 온건데...

 

 

 

옛날엔

남편이 기타 잡고 있는 꼴도 보기 싫었던 적도 많았고

듣기 싫었던 적도 많았고

그걸 하면서 살고 싶다고 할 때

속으로 비웃기도 많이 비웃었었어요.

세상에 기타 잘 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냥 집에서 심심할 때 치면 될 것을. 흥.

 

 

 

그 마음을 다 접고

다 정리하고

기타를 치려면 쳐라, 하고 동의를 해주고

치려고 마음 먹었으면 좀 더 적극적으로 하지 이게 뭐냐, 하던 타박을 넘어

그래 그렇게 좋고 하고 싶다니

당신 좋아하는 그 일에 내가 도울게 있다면 이 한 힘 보태주마, 하고 마음을 먹었더니만

 

 

 

역시......

처복이 터진 남편인지라...

마누라가 적극적으로 나서 주니 이제서야 일이 좀 풀리는 군요.

 

 

 

결혼 전에

한국에 있던 큰언니한테 궁합 좀 보고 오라고 시켰더니

어쩌고 저쩌고

어쩌고 저쩌고

천생연분은 아니나 이혼 수 없이 해로할 연분이고

남자는 착하고 참을성 많고 어쩌고 저쩌고

여자는 자기 멋대로에 이기적이고 변덕스럽고 어쩌고 저쩌고

남자가 여자 기분을 다 맞춰 주면서 사는 형국인데

바깥 일 쪽으로는 여자가 내조를 잘해서 남자 일을 잘되게 해준다고.

남자가 일을 잘 쭉쭉 뻗어가게 내조를 잘 한다고.

 

 

 

여태 저거 개뻥이고 속았다고 욕 속으로 많이 했었는데

맞는가 봐요.

제 내조는 남편이 예전에 했던 일 쪽이 아니고

지금 하는 일, 남편이 진짜로 하고 싶어 했던 일의 내조를 말한 거 같아요.

그렇다면 오케이!

 

 

남편 스케줄 관리 도맡아 준다고 열심히 해줬고요.

엑셀에 시간하고 장소 입력해서 파일로 만들려다

컴맹 수준인 저 사람한테 그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어

달력에 빨간 매직으로 날짜마다 동그라미 쳐 놨어요.

(아...이런 맞춤형 내조라니...너무 훌륭함)

 

 

 

어제 기타 연습할 때

옆에서 노래 불러 줬어요.

가사가 없는 연주곡 연습할 때는 춤 춰 줬어요.

 

 

어제가 엿새 만에

처음으로 하루 종일 집에 있던 데이 오프 였는데

뭐가 먹고 싶은지 뭐든 해 주겠다고 하니

비프 스튜 먹고 싶다길래

기똥차게 해서 대령했어요.

비록 제가 두 배를 먹었지만 그래도 남편도 잘 먹었어요.

 

 

그러다 저녁에 남편이 이메일을 확인하는데

옛날에

지금 그 고향 마을에서 같이 하는 그 밴드 하던 시절에 노래 부르던 보컬씨한테서

다음 주 주말 동네 술집에서

둘이 공연하자고.

 

 

 

여기서 동네는 지금 저희 동네를 말하고요,

옛날 밴드 같이 하다 드러머씨랑 사이가 안 좋아서 저 보컬씨가 밴드를 나가고

그 뒤로 소식이 끊겼었는데

십 몇 년 만에 페이스북의 도움으로 연결이 됐는데

저희 동네 산다네요?

그 동안 저 보컬씨는 시내 내려와서 열심히 이곳저곳 음악 활동을 해서

언더에서 그래도 제법 실력있는 사람들하고 밴드 생활 꾸준히 했고

동네 술집 주인들한테도 영향력을 쌓아 놓으며 살고 있었대요.

 

 

 

남편한테 그 동안 저 보컬씨 얘기 엄청 많이 들었었거든요.

외모 지상주의 사회가 되다 보니

외모로 놀림을 많이 받고 인정을 못 받고 그랬는데

노래는 진짜 엄청 잘 한다고.

 

 

 

남편은 제 생각에

기타는 좀 치는거 같긴 한데 노래는...

(이 얘긴 남편한테 할 수 없는 부분)

그런데 노래 잘 한다는 사람하고 둘이 어쿠스틱 팀으로 공연 한다고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고.

거기다 다음 주 토요일이면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하루에 두 탕.

밤에 하는 건 낮 공연 두 배. 그럼 돈이....

 

 

돈 얘기는 저 혼자 좋아하는 부분.

그런데 혼자만 생각하기가 아까워서 둘째 언니한테 살짝 전화해서 나누고.

 

 

 

남편 얼굴이 확 폈어요.

어깨가 올라가 있어요.

 

 

얼굴에서 샤방샤방 빛이 나는 것도 같고

행복해 보여요.

 

 

어제 기타 연습하는데

 

 

남들은 돈 줘야 이런 연주를 듣는데

나는 집에서 매일 들으니 참 행운이야.

 

 

했더니

 

 

고맙다면서

또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남편 못 울게 하려고

또 돈 안드는 뽀뽀나 쪽.

 

 

마음을 담아서 기타를 치는 당신을 나는 믿어.

당신의 기타 소리가 나를 행복하게 해.

나는 음악을 잘 모르지만

당신의 기타는 최고야.

적어도 나한테는 최고라고.

잊지 마.

내가 당신 많이 사랑해. 쪽.

쪽.

쪽, 쪽 쪽 쪽 쪽, 쪽!

 

 

 

 

 

지금 쫙 잡혀있는 일정은 다 낮 공연이고요,

저 사는데서 다 멀어요.

밤 공연은 다음 주 주말. 동네에서.

하아...

요건 또 가 봐 줘야 하겠죠?

 

 

뭘 입고 가나...

참 어렵네요.

남편이 너무 예쁘게는 하고 오지 않는게 좋겠다고 해서.......

나더러 너무 이쁘지는 말라니...

이런 무리한 요구에 저는 어떻게 하나요.

그냥 가지 말까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편의 무리한 요구에도 그저 마냥 상냥하게

어떻게든 내가 최선을 다해 보겠다, 이러고 응대하고 있습니다.

 

 

상냥 부인의 내조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