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MRI 결과는 깨끗, 깨끗~~ 하대요!

 

 

진단의 한 과정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냥 모두에게 말했는데

이게 많이들 걱정이 됬었나 봐요.

검사 하자 마자

결과 문의 전화 쇄도 ㅎㅎㅎ

 

 

 

어쨌든 무척 좋은 소식이고요,

진단은 아직 안 나왔어요.

ENG (전기 안진 검사) 이거 하고 다시 오래요.

이 검사는 또 이 달 말일로 예약 잡혀 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이 말한 메니에르 병에 대해서는

이비인후과 선생님은 동의 안한다는 말을 하대요.

청력이 어느 정도는 왔다 갔다 하다가 시간 지나면서 완전 손실이 되는게 그 병인데

저는 초장부터 지금까지

초지일관 먹통이라고.

그래서 그럼 제 경우는 뭐냐고 물었더니

그냥 바이러스로 인한 것 같다고. 끝.

 

 

제가 좀 황당한 얼굴로 선생님을 쳐다 보니까,

그래도 이명이 호전을 보인 걸로 봐서

청력 회복도 아직 희망을 가져 볼 만 하다고.

 

 

 

지난 주 금요일에는

컨디션 쾌조로

멀리 사는 친구들하고 전화 수다도 떨었고요.

 

 

그 다음 날 MRI 필름 들고 이비인후과 갔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 기다리느라고 배가 너무 고팠어서

기운이 쪽 빠져 버렸어요.

집에 오자마자 매운거 먹고 싶어서

냉동해 두었던 제육볶음 해동해서

상추랑 해서 야무지게 쌈 싸먹고

쭈욱 누워 있었어요.

 

 

일요일도, 월요일도, 화요일도.

 

 

그러다 또 어제 컨디션 확 좋아 져서요

밀린 전신 피부 각질 제거 했고요

(아시죠, 이것도 많은 기운이 필요한 작업이라는 것.

대중 목욕탕처럼 움직임이 원활한 환경도 아니고

내 집 욕조에서 하자면 여러 각도로 아크로바틱한 자세 잡아가며 해야 하는거라 더욱)

 

 

 

산뜻한 기분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국 음식(BLT 샌드위치요ㅋ) 해먹으려고 준비 중인데

친구 전화.

 

 

여보세용~~~

 

 

하고 받았더니

목소리 밝다고 친구가 아주 좋아 하더군요.

그래서 오늘 컨디션이 아주 좋다, 하고

즐겁게 안부 나누고 전화 끊고

맛있게 샌드위치 먹었어요.

 

 

며칠 전에는 집주인 아들이 자기 아들 생일 파티 음식을 이번에 자기 어머니가 하실건데

저희 집 가져다 주겠다고 미리부터 말했었거든요.

그리스식 라쟈냐에 폭찹에 쏘세지 앤드 페퍼.

컨테이너 세 개에 그득 담아다 줘서 며칠 그것도 잘 먹고.

 

 

저 밥순이, 먹순이인 거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 가지고

몸 안좋다는 소식 듣자 마자 한결같이 하는 소리가

 

 

먹는건 잘 먹고 있냐,

먹는건 어떻게 하고 있냐,

집에 먹을건 있냐.

 

 

다 이래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심지어 영양 실조로 이 사태가 온 것이 아니냐는 의견까지.

 

 

제가 어떻게 영양 실조일리가 있겠어요.

 

 

인생 좌우명이

"한 번 놓친 끼니는 평생 찾아 먹을 수 없다." 인데

 

 

거기다 맨날 맨날 머리 속에서 새로운 메뉴 생각해서 다양하게 다 찾아 먹고 사는 인생인데.

영양 과다라면 모를까.

 

 

어쨌든..

이 먹순이 친구가 많이 걱정 됐던 멀리 사는 친구가 소포로 먹을 것들 잔뜩 보내 줬고요.

자기 집 냉장고 다 털어 보낸거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이것 저것 대추, 고춧가루 같은 식재료부터

깻잎 조림, 뱅어포 무침, 풋마늘 장아찌 등등의 밑반찬에

친정 어머니가 담가 주고 가신 갓김치,

손수 들기름에 재서 소금뿌려 구운 김에

슬로우 쿠커에 만들었다는 청국장까지.

 

 

 

저 소포 받은 날이 토요일 오전이었는데

남편이 은행 볼일하고 수퍼 마켓에서 잡다하게 뭐 사오고 하느라

집에 들어 왔다 나갔다, 왔다 갔다 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신이 나서 막 소리까지 질러 가면서 소포안의 포장들 하나 하나씩 뜯어 보다가

청국장에서,

 

 

 

아 이거다, 나 지금 이거 끓여 먹어야지~~ 두부도 있는데~~~

 

 

네 맛있게 끓여 드세요. 금방 들어 올께요.

하고 나갔던 남편이

끓여서 막 먹고 있는데 들어 왔어요.

 

 

맛있어요?

 

 

응 (휴지로 코 풀면서)

 

 

헉??? 그런데 왜 그걸 울면서 먹어요?

 

 

몰라..그냥 눈물이 나네..

 

 

한 숟갈 떠 먹으면서 눈물이 핑 돌고

한 숟갈 더 떠 먹으면서 코 풀고.

저러면서 청국장 한 그릇을 다 먹었어요.

 

 

다음 날 또 끓여 먹었어요.

이번엔 사진 찍으려고 위에 고명도 좀 얹고ㅋ

 

 

 

 

 

 

 

 

 

 

 

 

 

 

 

 

 

 

 

 

 

 

 

요것이 짜지도 않고 꼬린내도 없는 홈메이드 눈물의 청국장입니다.

 

 

그 다음 다음 날인가...에는

아이허브에서 또 상자 하나가 배달이 왔는데

비타민에 차에 곡식에ㅋㅋㅋㅋㅋㅋㅋ 별개 별개 다 들어 있는 거예요.

 

 

 

도대체 누가 또 이걸 보냈지?

우리 집 주소를 알고 있는 사람이 가족 외에는

이 지구 상에 정말 몇 명이 안되는데 말이죠.

둘째 언니한테

정체모를 사람이 보낸 소포가 왔는데 내용물 대략 돈으로 환산하면

200불 어치 쯤 들어 있는데 대체 누군지 모르겠다고.

 

 

 

셋째 성이 보낸 거더라고요.

 

 

그 돌아오는 토요일 아침에 둘째 언니가 전화를 해서

뭐 먹고 싶은건 없어?

이러고 물어 보는데

저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제가 득달같이 다다다다

 

 

없긴 왜 없어.

설렁탕,

순대국,

짜장면,

쌀국수,

갈비,

너무 많지.

(수화기 저 편의 둘째 언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지금 내가 머리가 아프고 귀가 안 들리는 거지 입맛이 없는게 아니라니깐.

저걸 다만 밖에 나가서 사먹어야 하는 것들이라 문제지.

MRI검사하는 날 쌀국수는 사 먹을거야. 그 식당 있는 동네니깐.

 

 

 

이로 부터 세 시간 후,

벨소리에 나간 남편이 막 누군가와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가 들리고

저더러 나와 보라고 우리 방문객이 있다고.

해서 거실로 나갔더만

 

 

셋째 성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거의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양손에 짐을 정말 짐꾼처럼 들고 서서.

 

 

저 너무 놀라 가지고 기절할 뻔 했잖아요.

생각지도 못해서.

올바른 정신 태도와 생활 태도를 가지고 살라고 일침을 가하고

저를 상대도 안해주던 셋째 성이

몇 년 만에 저희집으로 예고도 없이 저리 들이 닥친 거예요.

 

 

소포 보내줬을 때만 해도

걱정이 많이 됐나보군, 하고 말았는데.

아 진짜 이렇게 갑자기 들이 닥치면...

내가 좀 더 드라마틱하게 아픈척을 더 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말이죠.

침대에 누워 힘없이,

 

 

미안...머리가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어...

 

 

하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는 척 하는 뭐 이런 식의 모습을

내 연기력으로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멀쩡한 모습을 보이고야 말았네.

이런 식의 무방비 상태 방문, 좋지 않아요.

 

 

왜 하필 또 컨디션 좋은 날 와가지고는..

셋째 성이 속으로

'이게 또 별거 아닌데 개뻥을 쳤나 보군.' 하면서 속았다고 배신감 느낄까봐

어찌나 걱정이 되던지요.

제가

감기 한 번을 앓아도

병은 소문 내랬다고 온 세상이 다 알도록 유난을 떠는 스타일이다 보니...

 

 

 

여튼

바람 불면 날아갈 듯한 체구로

엄청난 무게의 먹거리들을 들고.

제가 둘째 언니한테 말한 리스트 고대로 테이크 아웃해서 왔더군요.

추가로 자기가 끓인 미역국에

또 뭐에 뭐에 뭐에.

 

 

 

나중에 둘째 언니한테 전화해서

 

 

설렁탕, 순대국, 짜장면 다 사왔더라고 하면서

쌀국수는 내가 곧 사먹을 거라고 했지만

리스트에 말한 것 중에

갈비가 빠졌네? 갈비는 왜 안 사왔냐고 하려다 참았어.

 

 

둘째 언니 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새우볶음밥도 있었네요.

셋째 성 들어올 때

남편은 밴드 연습이 있어서 막 기타 메고 집 나서던 참이었는데

남편한테 성이

새우볶음밥은 제부거니까 나중에 와서 먹으라고.

 

 

저 사람이 또 중국집가면 지조있게 시키는 메뉴가 저거거든요ㅋㅋㅋ

 

 

뭐 이쁘다고 저 사람 것 까지 사왔냐고 하니까

 

 

성이

 

 

그냥..

 

 

그러더라고요.

 

 

너무 오랜만의 상봉이라 미치도록 어색해서

제가 바래다 준다고 나가자고 했어요.

저 시점에

제가 집 밖으로 못 나간지 닷새쯤 되었을 때였거든요.

나도 바깥 공기 좀 마셔야 겠다고.

 

 

그래서 둘이 나가서는

다른 얘기는 정말 아무 것도 안하고

치아 씨드, 킨와, 귀리, 호박씨, 아몬드 버터,

뭐 이딴 얘기만 하다

저희 동네 유기농 가게 들러서

스틸 컷 오트 밥에 섞어 먹으면 맛있다고 제가 추천해서 조금 샀고

(벌크로 파는 것 조금 담아서 1불 얼마 나왔길래

호기있게 이건 내가 사준다고 했는데도 돈 못내게 하대요.

아 저걸 끝까지 내가 계산대 앞에서 엎어지면서라도 고집을 부려서

내고 나도 뭔가 생색을 냈어야 하는데..이것도 아쉽..)

그 옆에 불가리안 사람이 하는 가게에 가서는 호박씨 한 봉지 사서 나누고 헤어졌어요.

 

 

 

저 날 저녁에

밴드 연습 마치고 온 남편이

그 새우볶음밥 진짜 자기 것 맞냐고, 자기가 진짜 먹어도 되는 거냐고.

 

 

아 그럼 진짜지.

사 온 당사자가 당신 거라고 했잖아!!

 

 

데워서 줬더니만 어찌나 잘 먹던지.

아우 맛있다 아우 맛있다 이러면서.

 

 

저는 짜장면 먹으려고 셋째 성이 준 팁 대로

끓는 물에 데치면 (냉동 우동 데치듯이) 붙은 면이 살아 난다고

(이거 다들 아셨나요? 여기 저기 물어 보니 저만 몰랐더군요)

그렇게 했더니 진짜 막 삶은 면처럼 되서

짜장 소스는 데워서 부어 가지고 비벼서 단무지 통 옆에 놓고 먹기 시작하는데...

 

 

이게 너무 맛있는데다

저는 면하고 저 건더기를 듬뿍 섞어서 한 입에 먹는걸 좋아 하는데

마음이 급해서 건더기들이 잘 같이 안 건져 지고.

그래 가지고 제가 무슨 짓을 했냐하면

건더기들을 면 위로 쫘악 올려 놓고 젓가락 옆에 내려 놓고

 

 

그릇에 얼굴을 박고 입을 대고 먹기 시작했어요.

 

 

(아...지금 생각하니까 또 너무 창피해요. 이 무슨 야만스러운 식사법인지..

정말 이런 짓 까지는 평생에 해 본 적이 없는데..

그 순간 정말 짜장면에 정신이 어떻게 됬었던가 봐요...아 창피해...)

 

 

아 이제부터 더러운 얘기 나옵니다.

비위 약하신 분들 두 문단 패쓰 요망.

 

 

그러다 사래가 걸려 가지고

재채기를 미칫듯이 하고

면이 코구멍으로 나왔음요.

 

 

남편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저를 보다가 하는 말이

 

 

그렇게 먹는 방법이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고...

 

 

다시 젓가락 들고 먹었어요.

마음을 좀 진정 시키면서.

이 날 먹었던 짜장면이 세상 살면서 제일 맛있었던 짜장면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다 먹을 때까지 남편이 옆에서 코치해 줬어요.

 

 

부인, 씹으세요.

잊지 마세요. 음식은 씹고 넘기는 거예요.

씹으세요, 좀 더 씹으세요.

 

 

 

처음 왔었던 현훈 발작 후에

 

 

두어 주 전에 한 번 더 있었는데

이번엔 하루 누워 있다 털고 일어 났어요.

친구 소포에 매실액도 있었는데

그거 먹고 살았어요.

밤 새 토하고 난 후 겨우 잠 들었다 일어나서

찬물에 그거 조금 섞어 홀짝 홀짝 마셨더니 메쓰꺼움이 잡히더라고요.

 

 

6월 초 되면 이 곳 마켓에도 매실이 나온다 하니

이번에 제가 꼭 담가 보려고요.

 

 

이 달 말 ENG 검사 하고도 별 진단이 안 나오면 전 병원은 이제 그만 다니려고 해요.

이 검사도 사실 그냥 하지 말까..하고 하루 정도 고민하다

예약을 하긴 했는데 이거 하고 나서도

더 해 볼 검사가 또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원인이 이렇든 저렇든

어차피 귀 안 들리는건 자연치유 말고는 해 볼 방법이 없고

현훈 발작도

뭐 어떻게 미리 손 쓸 수도 막을 수도 없다는데

 

 

 

요가와 명상과 비타민과 갈비로

그냥 알아서 건강 챙기는 걸로.

 

 

먹고 싶은 것들 먹을만치 다 먹었고

남은 건 갈비 밖에 없음.

 

 

 

어제 전화 온 친구가

남편한테 아이들 맡기고 자기가 하루 맨하탄 나오는 걸로 조율 중이라고

저 나올 수 있겠냐고 물어 보느라고 전화한 거였는데

해보자고 했습니다.

 

 

 

만나서

 

 

 

우리 뭐 먹을까...?

 

 

하면

 

 

굉장히 아련한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간단하게 갈비 어떨까..?

 

 

해보려고요.

 

 

남이 차려주는건 다 간단 하잖아요. 먹기만 하면 되니까.

갈비 식당에서 사 먹은지 진짜 몇 년 전인지 기억도 안나요.

 

 

 

사람이 한 세상 태어나 살면서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월드컵, 평생 스무번 챙겨 보기가 힘들다는데

갈비가 아무리 비싸 봐야 내가 월드컵 주기 만큼은 사 먹어도 되는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