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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and the City

오늘. 참 행복하다. 이쁜아짐 (ejpkryan) 2013-3-30  18:26:02

무려 어언 반 년만 인가 봐요.

친구들 만났어요.

 

 

무려 예닐곱살이 많은 이 늙은 언니와 놀아 주는 고마운 영계 친구들과

이른 점심 먹고

알차게 쇼핑하고

공짜 옷도 세 벌이나 얻고.

커피를 곁들인 수다로 마무리하고.

 

 

아침에만 해도 컨디션이 좋질 않았어요. 매우.

요즘 또 갑자기 밤에 잠을 제대로 못자서

어제 밤도 새벽까지 뒤척이다가 해뜰 때 쯤 잠이 든 것 같아요.

10시에 맞춘 알람 소리에 겨우 일어 나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 잡고 축 늘어진 채로 나갔었거든요.

 

 

그랬는데

일단 친구들 만나서 배에 밥 채우기 시작하면서 좋은 에너지가 뭉글뭉글 솟기 시작하고

수다 곧 탄력 받고

의기 충천해서 옷 가게들 한 코스 쭉 돌았어요.

 

 

이제는 좀 앉아서 다리도 쉬고 마무리 수다를 하자 하고

파리 바게트가서 라떼랑 고로케도 먹으면서

한 친구가 가져 온 원피스 네 벌을 이쁜아짐이랑 다른 친구랑 두 개씩 나눠 가지려고

하나씩 펼쳐 보고.

 

 

친구가 직접 디자인 한 원피스들이예요.

옷 좋아하는 이쁜아짐은

왜 또 친구가 하필 패션 디자이너래요?

그 친구 부서는 또 왜 하필 이쁜아짐이 특히나 좋아하는 드레스 파트랍니까!

내 인생은 왜 이래요?

이 끝없는 협찬, 협찬, 협찬 인생...

그것도 내가 꼭 필요하고 좋아하는 것들로만.

 

 

지난 번에 만났을 때도

진짜 이쁜 거 원피스 두 개 받았는데

이번에도 친구가 샘플 네 개 챙겨 왔다고

둘이 알아서 두 개씩 갈라 입으라고.

집에 와서 입어 보니까

아 나는 또 왜 이렇게 미국 기성복이 착착 맞춤옷처럼 잘 맞는지.

 

 

참말로 기가 막히게 잘 맞네.

 

 

보너스로다

날렵하게 허리 바로 밑으로 끊어지는 패딩 자켓까지.

 

 

이렇게 훈훈했던 만남이

이렇게 훈훈함 만으로만 끝나면

인생이 걸어 다니는 시트콤인 이쁜아짐의 하루가 아니죠.

오늘도 대박 사건 하나 있었습니다.

 

 

빵집에서 원피스 하나씩 펼쳐 보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 계시던 제 어머니 벌 되어 보이던

여자 분 두 분이

갑자기 저희 대화에 끼어 드시면서 같이 좀 구경하자시는 거예요.

 

 

그래서 보여 드렸어요.

그랬더니 난데없이 한 분이 저한테 내던지신 질문,

제 앞에 앉아 있던 친구를 가리키며

저한테

 

 

제 딸이냬요...

 

 

 

 

 

 

저 어떡해요.

 

친구들이 옆에서 더 미안해 하면서

수습 들어갔는데

뭐 어쩌겠어요.  기분 나쁜 티 내 봐야 나만 초라해 지지..

 

 

친구 사이이긴 한데

제가 이 친구들 보다 나이가 좀 많기는 하다고.

 

 

그랬더니

정작 그 분은 미안해도 않고

 

 

그래...나이가 많아 보였어.

 

 

흐미...

 

 

안 좋은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외출하는 자세의 기본기가 탄탄한 이쁜아짐이라

옷 매무새는 멀쩡하게 하고 나갔는데...

긴 면 치마에 씨뜨루 블라우스에 핏 잘된 자켓입고 머리엔 화려한 비녀도 꽂고.

이쁜 아짐의 착한 친구들은 만나자 마자

예쁘게 하고 나왔네. 블라우스 예쁘네.

이러고 칭찬 세례를 했는데...

아...나 어떡해...

 

 

남들 보기엔 내가 저 친구들 엄마처럼씩이나 보이나...

영계 친구들이라 해도

띠동갑도 아니요 꽉 차게 열살 차이도 아니고

여덟 살, 아홉 살 차인데...

 

 

배 보고 임신 했냐는 질문 보다 이게 비교도 안되게 몇 배는 대박 충격이네요.

 

 

제 딸 소리 들은 친구는

어린 애기가 둘이나 있는 육아 스트레스에 지칠대로 지쳤어도

좀 심하게 풋풋하고 어려 보이긴 해요.

어려 보이는 친구 탓이지

내 탓은 아니다, 라고 생각할래요.

 

 

앞으로 이 친구한테 전화하면

 

 

그래, 나다.

니 에미다.

내 손주들 잘 키우고 있냐?

 

 

이럴까 봐요.

 

 

집에 오자 마자 남편한테 이 얘기를 해줬더니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누가 당신을 마흔 넘은 여자라고 생각을 하겠냐,

어떻게 나이를 먹을수록 더 예뻐 지는거냐,

당신 직장 동료들은 무슨 복으로 당신 같은 아름다운 사람을 보며 하루 8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냐,

오늘은 특별히 경찰 피해 다니시라, 너무 예쁘다고 잡아 갈지 모르니까,

 

 

들으면서 짜증내기도 지쳐

이제는 이런 얘기하면 마치 내가 아무 얘기도 안 했었듯

그냥 자기들 하던 얘기로 넘어가는 제 언니들과

정말로 심각하게

어디가서 이런 얘기 절대 하지 말라고,

진짜 니 남편 정신적인 문제있는 사람처럼 보이니까

너만 혼자 듣고 앞으로는 나한테도 이런 얘기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노여사 때문에

그래서 이런 얘기는 가족들한테도 더 이상은 민폐인갑다,

싶어 근질거리는 주댕이 쳐닫고 혼자 마음으로만 흐믓해 하며 살았는데.

 

 

작년 가을이 이미 시작 됐었다가

잠깐 무더웠던 10월 초의 어느 날,

남편이 특히나 예쁘다고 좋아하는 여름 원피스를 입고

동네 수퍼마켓 간다고 함께 길을 나섰던 오후,

눈도 잘 안 보여서

앞 길 조심하고 걸어 다녀야 하는 사람이

 

 

당신 너무 예뻐요. 너무 예뻐요.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예쁜 여자가 이런 거지같은 놈이랑 같이 있냐고 생각할 거예요.

 

 

하면서

고개를 45도 이쁜아짐 쪽으로 고정하고 걸어 가길래

 

 

그만하고 앞 좀 봐.

 

 

하며 손으로 고개를 돌려줬던 그 날 오후에

오늘 지금 이 일도

일기장에만 써야 하는 그런 일인거야.

어디다 주책없이 낄낄대면서 읊어 대면 나는 욕 먹고

남편은 또라이 되고

듣는 사람은 짜증나고 그런 건거야.

이 사람이 나랑 더 이상 함께 하지 않는 그런 날이 온다면

나는 오늘 지금 이 오후를 얼마나 그리워 하게 될까.

돈 안 벌어다 줘서 나를 생활고에 시달리게 했었으나

남들이 다 못생겼다고 하는 여자를

세상에서 최고로 예쁜 여자로 만들어 줬었던 나의 남편을

나중에 나중에

내가 이 남자와 함께일 수 없는 그런 날이 오면

나는 분명

오늘의 지금 이 순간을 너무 너무 너무 너무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할 것이다,

라고 깊이 확신했던 이 날

햇살 따가웠던 가을 오후.

 

 

 

일기장에만 써야 하는 멘트를 주구장창 15년도 넘게 듣고 살다 보니까

현실을 직시하게끔 하는 이런 에피소드를 겪을 때

뼈아픈 충격을 받네요.

 

 

돈을 벌기만 하고

쓰지는 않는

요런 알짜베기 생활 넉달 하고 나서

어제 아침에 구좌로 월급 들어온 것 확인하고

오늘 아주 보람되고도 당당한 마음으로

옷 몇 벌 샀더니

기분 또 엄청 좋아요.

 

 

이번 직장,

넉 달여 동안

점심 사먹은 거 딱 두 번.

지하철 비 빼고는

오로지 쓴 돈은 딱 저거랑

바지 두 개. 합해서 25불? 정도.

 

 

세일 정보 빠삭한 친구들 덕에

완전 엑기스 코스로만 돌아서

자라에서 10불 세일 랙에서 무려 십 몇년여간 찾고 있던 검정색 팬슬 스커트와

조금 특이한 디자인의 스웨터 하나.

 

 

바나나 리퍼블릭에서

세일 더하기 추가 40% 하는 랙에서

탑 2개

 

 

H&M 에서 다홍색 가디건

 

 

60불 조금 넘게 쓰고 옷 다섯 개 사왔어요.

 

 

점심 값 더하기 커피랑 빵 값 해서 35불

취직하고 친구들 처음 만난거라 취직 턱으로

점심을 쐈으면 아주 멋있었을 뻔 했는데

점심은 더치하고

쪼잔하게 커피 쐈어요.

담에 월급 오르면 그 때는 밥 쏠께, 일단 말로만 쏘고.

 

 

오늘 열심히 지난 넉 달 돈 벌고 나서

나를 위해 쓰고 들어 온 돈이 $100인데

뭐 요 정도면 기분 전환 확실히 한 비용으로는 알뜰했다, 고렇게 봐요.

 

 

H&M에서

진짜로 마음에 들었던 니트가 하나 있었는데

35불이라 안 샀어요.

그거 샀어도 내 인생 앞으로 3-40년 더 사는데 있어서

크게 지장있을 건 아닌데

저는 정말 여러모로 청개구리 스러워서

일 안 할 때는 탱자탱자 하고 걔기면서 에라 모르겠다 요러고 카드 회사 먹여 살려주는 경향이 있는데

돈을 벌고 살 때 오히려 자제력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생각 조금 더 해 보고 정이 갖고 싶으면 나중에 사자, 하고

오늘은 일단 참았어요.

 

 

새로 사 온 옷,

얻어 온 옷,

차례로 입어 가며 보여 주니까

미의 기준이 엉망진창인 남편은

환호성을 질러 대며 난리 한 바탕 해주시고.

 

 

하와이에 전화 때리신다고.

마누라 쇼핑하고 온 날은

꼭 자기 여동생들한테 보고하는 버릇이 있어요.

 

 

오늘 저 사람이

얼마나 예쁜 옷을

원래는 얼마 짜리를 얼마나 싸게 사 왔는지 동생들한테 자랑하는 거요.

그럼 또

그녀들의 오빠와 비슷하게 푼수스러운 그의 여동생들은

 

 

언젠가는 이쁜아짐과 꼭 한 번 쇼핑을 함께 가리라,

하는 일생일대의 로망을 불태우는 멘트로 끝을 맺어요.

 

 

낯선 사람한테

친구의 엄마냐는 소리 들었단 핑계로

푼수 남편으로 부터 여신 추앙 받는다고

결국은 지하고 싶던 자랑질 할대로 다 한 이쁜아짐은

오늘 이야기도 무방비 상태로 클릭하신 분들께

입금 해드려야 마땅하겠지만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 처지를 방패 삼아

현찰 입금은 배째라 하고

격하게 후유증을 호소하는 분들에 한하여

메스꺼운 속을 달래줄 소화제를 보내 드릴 용의는 있습니다.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오늘의 보람찬 회동에 대해 마무리 했어요.

 

 

패션 디자이너 친구한테는

원피스 둘 다 정말 잘 맞는다고 보고 올리고

고맙다고 인사 다시 하면서

산 옷들도 다시 입어 보니까 진짜 다 잘 산 것 같다고

뭔 놈의 몸이 기성복들이 이렇게 다 맞춤 옷처럼 다 잘 맞는지 모르겠다고

인에 박힌

귀찮은 듯 던지는 잘난척해서

결국은

언니가 옷걸이가 좋아서 그런거다

뭐 이런 식의

반강제 칭찬 다시 한 번 듣는 걸로 끝내고

 

 

제 딸이 되어버린 친구한테는

너네 신랑 좋아하는 빵 하나 사서 들려 보냈어야 하는데 미처 못 챙겼다고 했더니

언니가 왜.

그러길래

애들 아빠가 반나절 애들 보면서 육아에 지친 부인 간만에 친구들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건

당연한 건 맞는데

당연한 일이라도 칭찬은 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당연한 일 안하는 애 아빠들하고 남편들이 더 많기도 하고

아무리 당연한 일이라도 고마워 해주면 서로 좋은 거니까

오늘 애기들 맡아 주고 너 내보내 줘서 내가 고맙다고 하더라고

너네 신랑 착한 신랑이라고 했다라는 말 꼭 전하라고 했어요.

 

 

날씨 좋아질

5월엔

맨하탄 사는 친구와

퀸즈 사는 이쁜아짐이

동안 애기 엄마가 사는 뉴져지로 출동해서

아울렛가서 콜 한 플랫 슈즈 사는 걸

다음 회동 목표로 정했어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좋다..라고 느낄 때,

그래서 행복할 때.

그래서 새삼 나는 내 옆에 좋은 사람들이 이렇게 있어서

복 받은 사람이고 이런 것이 참 감사하다고 느낄 때 있는데

오늘도 그랬어요.

 

 

어떤 날은

언니들이 날 그렇게 해주고

오빠와 결혼 한 새언니라는 사람도

내가 내 피붙이와의 관계 때문에 속상해서 전화하면 내 기분 이해해 줘서 그렇게 해주고

가끔은 나를 절망적이고 화나게 하는 남편도 평소에 많이 그렇게 해주고

오늘은

친구는 참 좋은 거구나.

친구들이 절 그렇게 느끼게 해줬어요.

 

 

맨날 때 되면 먹는 밥,

맨날 마실 수 있는 커피,

매날 혼자서도 돈만 가지고 가면 살 수 있는 옷,

 

 

그런 거 그냥 같이 한 것 뿐인데.

 

 

같은 밥을 먹어도

같은 커피를 마셔도

같은 물건을 사도

그 과정을 함께 하면서

그냥 마구 마구 오고가는 서로의 애정 탓인가 봐요.

 

 

밥 한 입 먹으면서도 서로 챙겨주고

커피 마시면서도 또 서로 챙겨주고

마음에는 드는데...살까 말까...망설일 때

 

 

언니 그냥 사. 일 그렇게 열심히 하고 번 돈 인데 언니 사.

언니 일단 들고 가서 최종 가격 알아나 봐. 그리고 결정해. 이럼서 옆구리에 계속 찔러 주고.

 

이런 부추김 속에 담뿍 담긴 나에 대한 누군가의 애정.

 

 

혼자 옷 살 때는 이런거 없잖아요.

 

 

나도 참...

하필...

인생이

도처에 나 사랑해 주는 사람들 밖에 없다.

사랑이 항상 고프다고

마음 못 붙이고 이리 저리

이리 저리

 

그렇게 이리 저리

 

 

항상 떠도는 마음 못 붙 잡아서

인생의 본질은 외로운 거라고 힘주어 외치고 살았는데

도처에

정말로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무슨 인생이

이렇게나 복이 많은지.

 

 

오늘 진심

정말로 감사하고

행복한

그런 하루였어요.

 

제 친구들도 저만큼 행복했던 그랬던 하루였길 바래요.

 

저도 맘껏 친구들한테 사랑 주고 왔어요.

사랑 주고

사랑 받고.

 

 

많이 사랑 받고 많이 사랑 주고.

 

 

이 엄청나게 효과적인 돈도 안드는 선순환,

사랑 사랑 사랑.

더 열심히 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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