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종조부님이라고,

올바른 명칭이 그렇다 하는데,

 

 

남편의 어머니의 외삼촌께서 돌아 가셨어요.

향년 90세.

 

 

매일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하는 일이 없어도

밥은 늘상 꼭꼭 챙겨 먹으니

열심히 끼니마다 밥해 먹고

그러다 해지면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갔구나 하고 디비 자고

 

 

그 다음 날 아침은

또 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그러던 어느 날

외종조부님을 뵈러 가서는

그냥 게을러서 그간 못 뵈러 왔다고 솔직하게 말씀 드렸어요.

 

 

집 밖으로 한 번 나오기가 참 힘들다고.

이 사람이 저 한 번 밖으로 끌고 나오기가 참 힘들다고.

제가 이래서 이 사람도 저랑 살기 참 힘들거라고.

그간 못 뵈러 와서 죄송했다고 말씀 드렸어요.

 

 

집으로 돌아 오는 지하철 안에서 남편한테 말했어요.

이제는

이것 저것 이유 둘러대며 말하는 것 싫다고.

어차피 둘러대도 저 쪽이 이유 둘러대는구나...알텐데

그런거 하는거

이제는 하기 싫다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어쨌든 내가 게을러서 안 온거는 맞는데

거기다

그 동안 바빴어요, 뭐가 어째서 정신이 없었어요, 이런 뻔한 거짓말 하기 싫었다고.

 

 

그런 불쉿하기 싫어 이젠.

 

 

그렇게 정말 오랜만에 뵈러 가서

사지 마비가 얼굴 바로 밑까지 진행되고

손가락도 다 곱아서

더는 손톱을 잘라 드리기도 힘들어진 그 손톱을 잘라 드리고

어깨도 조금 주물러 드리고

 

 

남편은 남편대로

그간 못 뵌 핑계를 제가 다 인정하고 말씀드리니 신이 나서

 

 

 

어차피 제가 이 사람 없이 혼자 와도 엉클 밥은 반갑지도 않으셨을 거 아녜요.

엉클 밥이 보고 싶은 사람은 이 사람이니까요.

 

 

하니까

 

 

니 말이 맞다.

 

 

 

 

곱아진 손의 손톱을 자르느라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데

남편이 외삼촌한테

 

 

물 드실래요?

 

 

하고 여쭸더니 뭐라고 대답을 하시는데 저는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 들었어요.

계속 손톱 자르는 것에만 집중을 하고 있었어요.

남편이 다시 한 번 여쭈는 소리가 들렸어요.

버럭 역정을 내시더라고요.

 

 

싫다니깐. 얘가 먹여줄거야!

 

 

제가 깜짝 놀라 가지고 남편더러 나 마실 콜라 한 잔 가져다 달라고 했어요.

 

 

남편이 무안해서 벌떡 일어나서 콜라를 가지러 가고

제가

 

 

엉클 밥, 물 드실래요?

 

 

하니까

 

 

응

 

 

그래서 제가 물을 먹여 드리고.

 

 

남편은 집에 돌아 오는 길에도 무안함이 가시지 않아서 속이 상해 있었어요.

돌아가시는 말년에 그것도 수발이라도 내 시중 받는게 기분이 더 좋아서 그러신 건데

당신은 많이 기분이 나빴겠네.

그래도 나는 당신 식구들이 이렇게 하나같이 나를 예뻐해 줘서

나는 그게 참 고맙네.

당신 마누라 이뻐해 줘서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무안한 건 그만 잊어 버리시게 남편.

내가 좀 더 자주 이렇게 왔어야 했는데...

 

 

 

저렇게 뵙고 온 사흘 후에

음식도 못 씹으셔서

링거로 영양 주사 맞으신다는 소식 들었고

또 한 이틀 후에

코마로 들어 가셨단 소식 들으셨고

그리도 또 이틀 후 쯤에 돌아 가셨어요.

 

 

마지막 인사 잘 하고 왔다고 생각 하기로 했어요.

 

 

시어머니가 이메일로 돌아 가셨다는 소식 전하시면서

이제는 고통없이 좋은데 가셨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 날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

한국 사람들 말하는 호상 (好喪) 에 대해 설명을 해줬어요.

구십세 누리셨고 이제는 아프지 않으시고 저 세상 가신거니까 호상이라고.

 

 

그리고 저희 결혼 기념일이 돌아 왔어요.

 

 

아침에 남편 내 보내고

한복이 들어 있는 상자를 꺼내서는

 

 

새빨간 치마에 아이보리색 저고리.

 

 

패티코트까지 다 갖춰 입고

예행연습한다고 차려 입었습니다.

 

 

큰 언니가 결혼 선물로 한복 해 준다고 했을 때

그렇게 거품 물고 쓸데없는 짓이라고 차라리 돈으로 달라고 난리를 쳤는데도

그 때 한국에 살고 있던 큰 언니가 기어이 한복을 맞춰 줬거든요.

이렇게 기어이 할 거였으면

차라리 색이나 저렇게 대놓고 새색시 색이 아닌

좀 웬만한 색으로 했으면 좋았을 것을.

 

 

 

어쨌든,

 

 

돈만 쳐 들이고 실용성은 하나도 없는 새색시 한복이란게 여튼 생겨 버렸으므로

저거 또 결혼식 때 한 번 입고 쳐박아 두면

그야말로 돈 값을 못하는게 되므로

기왕지사 이렇게 된거

할 수 있는 한 많이 입어야 한다고.

그렇잖아요.

상자에 쳐박아 두면 그냥 애물단지 되는 것이고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입으면 본전 찾기에 가까와 지는 것이고.

 

 

 

그래서

 

 

저는 새 해가 되면 엄마한테 인사하러 간다고 저거 차려 입고

택시 불러서 갔다 오고

추석이라고 맨하탄에서 행사한다길래 차려 입고 나갔더니

한복 입고 꽃 차에 탈 사람 부족하다고 제발 타 달라길래

꽃 차에 타고 손 흔들며 행차도 하고

(아 이 때 돈 달라고 할 걸...)

 

 

그 뒤로도

가끔 심심하면

플러싱 리커 스토어에서 백세주 사 온 날엔

빈대떡 부쳐 먹을 때도 입고.

 

 

서방님 한 잔,

나도 한 잔,

짝! 건배하고

빈대떡 찢어서 서방님 한 입,

나도 한 입.

 

 

결혼 기념일을 맞이하야

오랜 만에

잊었던 새색시 놀이 좀 해볼까, 하고

한복을 차려 입고

사뿐사뿐 걸어 봤더니

 

 

패티코트가 샤샤삭 내는 소리가 참으로 마음에 드는 거예요.

걸어 봐야 다섯 발짝인 거실 안에서

하나 둘 셋 넷 샤샤샥 할 때

다섯 발짝 돌리면서 여밈 자락 확 걷어 올리면서 방향 틀고

다시 한 발 두발 세발 네 발 다섯 발짝 째 샤샤삭 확 치맛 자락 치켜 들고,

 

 

아 재밌네.

 

 

이럴 줄 알았으면 백세주 두어 병 미리 사다 놓는 건데

이따가는 무슨 재미로 이 새색시 놀이를 할까나....

이러고 냉장고를 보니

구석에 맥주 두 병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마셨어요.

 

 

미리 기분 좀 느껴 볼라고.

 

 

아침 식전에 한복 차려 입고 맥주 두 병 마시고

아하 이따가 이러고 놀면 되겠구나,

하고 문득 거울을 보니

 

 

 

내 마음에

내 머리에

있던 나의 모습은

어우동? 내지는 황진이? 아니면 기타 다른 상상 속의 어떤 멋지고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이었는데...

 

 

 

시커먼 얼굴에

다다닥 붙어 있는 주근깨가

식전 맥주 두 캔의 알콜을 받아 시뻘개져서는

 

 

심술 사나운 뺑덕 어멈의 모습이 여기 있네.

오마나!

 

 

 

아...

 

 

기분이 확 상해 버렸어요.

 

 

 

다 벗어 버리고

다시 상자 속에 넣고는

빨래 했어요.

 

 

 

괴로움을 잊고자 빨래를 열심히 하고

종종 거리며 뛰어 다니느라

밥은 오후 세 시나 넘어서 먹고

남편이 집에 들어 와서

 

 

 

오늘 저녁은 뭐할까요?

뭐하고 싶으세요?

뭐 드시고 싶으세요?

 

 

 

하는데

 

 

 

너무 피곤해서 뻗어 버렸어요.

계속 잤어요.

 

 

 

 

다음 날,

시부모님이 남편 전화로 저희 결혼 기념일 축하 메세지를 보내 셨다길래 들어 봤더니,

 

 

 

두 분이 노래를 불러서 저희 결혼 기념일을 축하해 주시고

노래 끝난 다음에는

어머님 말씀.

 

 

너희 둘,

엉클 밥 한테 잘했던 거 다시 한 번 고맙고, 울먹,

착한 아이들,

고맙다,  행복해라, 그리고 사랑한다.

 

 

 

 

새색시 놀이는 다음에

컨디션 좋을 때

화장도 좀 하고

백세주도 사도 놓고 그랬을 때

다시 제대로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