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중순부터 두 주간.

제가 무지하게 바빴어요.

항상 어느 정도는 아무 것도 안하고 뒹굴뒹굴 하는 내 시간이 있어야 하는 사람인데

빼도 박도 못하고

2주 간을 풀로 뺑뺑이를 치느라

체력 고갈, 스트레스 만땅

(왜 이렇게 갑자기 바빴어야만 했는가...는 내 책임)

 

 

뉴욕 한참 폭염이 시작되고 연일 90도가 넘는데

이것저것 짐들고 한 시간씩 왔다 갔다만 하루 두 시간

더위 먹지 않겠다고 살살 걸어 다녔어도

매일 저러고 돌아 다니고 일하고 이러느라

저녁에 집에 오면 상태가 아주 예민하고 안 좋았어요.

 

 

그러던 차에

많이 사람 됐다고 제 자신한테 점수를 주어 오던

'분노 조절' 부분에서 무너져서

부부 싸움 대차게 한 판 했고요.

그 다음 날

내 자신이 싫어질 정도로 막무가내로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남편을 밀어치고

미친소 날뛰기를 간만에 했더랬습니다.

 

 

내가 지금 너무 바쁜 것,

그래서 너무 피곤한 것,

이 모든 원인은 내가 자초한 일인데

화살은 제일 만만한 남편한테 돌아가서

 

 

당신은 인생이 참 편하지?

 

 

라는 비꼬는 말로 시작해서 아주 제대로 뒤집었어요.

 

 

다음 날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너무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꽉 찼다고.

제 입장에서는 해명

남편 입장에서는 변명

을 하고

 

 

남편이 자기가 이해를 한다고

남은 일주일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열심히 힘을 보탤테니 알려 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마무리를 했습니다.

 

 

이 사람은 이런 여자랑 사는게 얼마나 힘들까..

내가 자꾸 이러면 이 사람도 내가 지겨워 지겠지..

 

 

이런 대오각성을 하고 집중 '분노 조절'에 힘쓴지가 어언 몇 년 째인데

이렇게 간만에 또 한 번 무너지고 나니까

참 제가 싫더군요.

어쨌든 이번에도 제 지랄 발광을 남편이 한 번 더 품어 주는 걸로 이렇게 마무리가 됐어요.

 

 

마음 다잡고 남은 일주일, 정말 고도의 정신력으로 버텼습니다.

일 마무리 짓고

드디어 온전히 쉴 수 있는 저의 데이 오프가 왔는데

다음 날이 독립 기념일이라고

애들 데리고 바닷가 다녀 오자는 둘째 언니의 전화.

저는 못 가겠다고 했어요. 일단 좀 쉬어야 한다고.

 

 

조카들 네 명에 어른은 둘째 언니 혼자.

먹는거 신경쓰지 말고 몸만 오라고 계속 꼬시는 겁니다.

삼겹살 몇 팩 사고

갈비는 한국 정육점에 양념된 걸로 주문해서 사겠다고.

애들 들떠 있는데 너 안가면 어떡해.

꼭 내가 안가면 아예 바닷가 계획이 취소가 될 듯이 막 이러는데

저는 정말 이렇게 몰아 부치기 식으로 강요 받는거 진짜 싫어 하는데

어른은 둘째 언니 혼자 뿐이면 좀 거시기는 할 것 같아서 마지 못해 오케이.

 

 

 

저녁 때 전화해서 수박 한 통 사다 놨고 갈비 양념 해 놨다고 하니까 

목소리에 급 화색이 돌면서 

자기는 뭐 준비하면 돼냐고 묻습니다.

밥이랑 김치 가져 오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아침에는 갈비 주문 할거라고 하더니 그럼 저녁 때 쯤에는 주문이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주문조차 하지 않았어요.

전 이럴 줄 알았습니다.

 

 

삼겹살이나 먹으면 돼지.

 

 

이러고 능구렁이처럼 넘어갈 거라고 저는 다 예상하고 있었어요.

 

 

저는 애들하고 뉴욕 바닷가 출동이 몇 년 만인데

기껀 나가서 삼겹살이나 구워 먹고 올 수는 없습니다.

야외 바베큐는 엘에이 갈비 꼭 있어야죠.

 

 

아침에 둘째 언니랑 전화 끊고

남편한테 '나 내일 바닷가 가기로 했어' 한 다음에

수박 사러 가자고 끌고 나가서 한 통 사고

동네 정육점 가서 갈비를 옆으로 얇게 썰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해 준다고 해서

5파운드 샀어요.

 

 

김치 대량으로 담글 때 배추 절이기 용으로 쓰겠다고 장만했던

아이스박스도 꺼내고

(이것 때문에도 제가 꼭 가기는 해야 했군요)

상추 사다 씻어 놓고 화분에서 깻잎 따서 씻어 놓고

된장, 고추장 꺼내서 할라피뇨 고추 다져서 쌈장 만들어 놓고

종이컵 챙기고

고기 구울 도구랑 호일이랑 챙겨 놓고

 

 

 

몸만 오는 사람은 정작 누구?

 

 

애들이 잘 먹어서 보람은 있었어요.

그릴 찾아 삼만리 하다 우여 곡절 끝에 확보한 뒤라

아침도 안 먹은 일행이 애 어른 할 것 없이 전부 다 배가 고플대로 고팠어서

고기 맛있다고 난리.

 

 

첫 입 먹고 나서 순진을 가장해서 하고픈 말 다하는 둘째 언니 아들래미가

 

 

'이모, 이거 이모가 만들었어?'

(양념 제가 했냐는 뜻)

 

 

그렇다고 했더니

 

'베러 댄 엄마'스. 으음...여미....'

 

 

애들이 아하하~~~~~~~

 

 

원래 집에서 먹는 것 보다 밖에 나와서 숯불에 구워 먹으면 다 더 맛있는거야.

너 엄마 실망해서 앞으로 갈비 안해주면 어떡 하려고 그런 말을 해.

 

 

큰 언니 딸이 한 번은

골뱅이 무침이 이모가 한 게 더 맛있다고 했다가

그 집 엄마 빈정 상해서

다음 부터는 나한테 해 달래지 말고 이모한테 가서 해 달라고 하라고

꽥 꽥 소리를 질렀대요.

 

 

그 뒤로 자기는 이모가 한 게 더 맛있다는 소리 엄마 앞에서 안 한다고

'이모만 알고 있어. 김밥 이모가 싼 게 더 맛있어'

이러곤 해요.

 

 

다 큰 것들은 그래도 이모 걱정을 해 주더라고요.

이모 많이 피곤했다며...엄마가 이모 바닷가 못 갈 거 같다고 그랬는데...

이모 괜찮아?

이모 고기 양념하느라고 힘들었겠다.

 

 

옆에서 둘째 언니 딸래미는 대화에 참여도 않고

상추를 쌈장에 찍어 먹느라 정신이 없어요.

 

 

쌈장이 아주 맛있게 됐네.

 

 

이런 노인네 같은 소리 한 마디 하더군요.

(쌈장에 너무나 열광하길래 남은거 집에 가서 먹으라고 줬어요)

 

 

이모는 있잖아.

아예 안 움직이면 안 움직였지

일단 움직이면 먹을건 제대로 있어야 되거든. 알잖아.

 

 

애들이 맞다고 그래서 자기들이 행복하다고.

제일 조그만 녀석은 밥 잘 먹었다고 어깨 안마까지 해주고.

 

 

배 채웠으니까 물놀이 할 시간이 왔는데

둘째 언니는 전형적인 '짐 지키는 엄마'라 자리 깔자 마자 모자 뒤집어 쓰고 낮잠.

멕였으니까 이제 노는건 너희들끼리 알아서 놀아라. 이런 스타일이고

저는 노는 것까지 함께 하는 참여형 어른이예요.

아주 건전하고 올바른 보호자임.

이라기 보다 노는게 저도 아직은 너무 재밌어서ㅋ

 

 

애들이랑 손잡고 물에 뛰어 들어가서 집에 오는 순간까지 물 속에서 놀았어요.

 

 

그릴을 찾느라 전략적으로 움직일 때도

이모 지휘아래 일사 분란하게 따라 주고

짜증 안내고

밥 잘 먹어주고

밖에 데려온 보람있게 알차게 물 속에서 잘 놀아주고

오고 가는 차 안에서도 많은 웃음들이 있었고

애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처럼 정말 좋았어요.

 

 

차 안에서 무슨 걸그룹 노래라며

현경 양하고 큰 조카 양이 따라 부르는데

노래를 잘 부르길래

아이구 노래들 잘하네? 우리 조카들도 걸그룹 하나 만들어 줘야겠네. 했더니

 

 

큰 언니 아들 녀석이 그룹 이름을 '어글리즈'로 하면 되겠다나.

이쁜 동생하고 이쁜 누나한테 어글리즈가 뭐냐고,

그런 식으로 하면 너도 그룹에 끼워 버릴 거라고 제가 한마디 했어요.

'어글리즈 앤드 뉴욕 쩌리'

너 거기서 랩 해.

 

 

했더니 애들이 또 까르르 까르르~~~~~~~~~~

쩌리 소리 들은 당사자까지 웃기다고 배를 잡고 웃어요. ㅋㅋ

 

 

아직은 제가 이 아이들의 골목 대장 역할이 먹힌다는게

즐겁고 감사한 하루 였습니다.

 

 

바닷가에서 오지게 잘 놀고 와서 그 다음 날은 또 일찍부터 일어나서

짐 챙겨서 시골 다녀 왔어요.

이 계획 때문에도 바닷가를 안 가려고 했었는데

빨래도 해야 하고 어쩌고 저쩌고.

가서 입을 빨래는 그냥 짐 속에 쑤셔 넣었어요.

가자 마자 시댁 세탁기에 돌리지 뭐.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는 걸. 음하하.

 

 

시골 가서 7박 8일을

아마존 원숭이처럼 뛰어 놀았어요.

아프리카 황소 개구리처럼 시커매져서 돌아 왔습니다.

 

 

이틀 후면 먼데서 오빠 아들이 뉴욕엘 와요.

정말 정말 오래 간만에 보는 거예요.

이 아이 데리고 일주일 보내고

그 다음은 일주일은 또 조카들 다섯 명 모두 함께 둘째 언니와

로드 트립 여행 계획이 있고요.

그럼 7월 다 가요.

이 달은 노느라 바빠요.

노느라 바쁜 건 스트레스가 없네요.

 

 

두번 째 일주일 휴가는 너무나 죄송스럽게 사장님께 '문의' 했더니

한 번만 또 그러면 짜른다, 이러면서

흔쾌히 다녀 오라고 하시더군요. 웃는 얼굴로.

당연히 안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노는건 왜 이렇게 상황도 다 잘 맞아 떨어지는지..

 

 

이 달은 즐겁게 노는 달로 정하고

8월 부터는 돈을 버는데 좀 더 노력하려고 해요.

선 플레이 후 메잌 머니.

인생 컵셉이 항상 이렇다는.

 

 

 

힘들거나 즐겁거나 남편한테는 감정의 널뛰기를 더욱 더 조심하겠다고 다짐도 많이 했어요.

 

 

그 날 바닷가에서 맛있게 먹었던 엘에이 갈비 사진 하나 올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