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놀기도 잘 놀면서

이런 저런 집안 일도 겹쳐서는

일하랴, 놀랴, 언니들 일에 오지랖 부리랴,

특히 이번 달은 시간이 엄청나게 빨리 갔어요.

밥도 안 해 먹으면서 집에서는 잠만 잔 것 같고.

 

 

 

지난 몇 년은 뉴욕 바닷가 근처에 얼씬도 못했었는데

올해는 세 번이나 다녔왔고

시댁은 내 휴가로 일주일 한 번,

조카들 데리고 2박 3일 한 번 또 했고요.

노인네 두 분 사시는 한적한 시골집을 저희 친정 식구들이 떼로 몰려가서

짧은 시간 동안 확실하게 뒤집어 엎다시피 놀다 왔어요.

 

 

이 와중에

큰 언니와 둘째 언니가

작년부터 진지하게 키우기 시작한 꿈 하나.

 

 

 

자기들 가게를 하나 차려 보고 싶다고 하네요.

저는 처음엔 콧방귀도 안 뀌었었어요.

자본 면에서 '시기상조'라는 것이 확고한 제 첫번 째 의견이었고

가족들하고 가게 하나 차려서 일하는 것이

다른 집들은 그게 충분히 가능할지 몰라도

우리 집은 절대 아니다라는 게 두번 째 의견.

 

 

재밌게 놀자고 모여도 지겹게 쌈박질 해대는 집구석이

무슨 사업씩이나 같이 하냐고.

상상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음.

 

 

둘째 언니가 하겠다고 하면 저는 당연히 도와주겠다, 지만

여기에 큰 언니가 합세하면 판도가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하려면 둘째 언니 혼자 하라고(큰 언니 끼지 말고) 저는 초지일관 변함이 없는데

둘째 언니는

'그래도 서로 도울 수 있는 사람은 가족 밖에 없다'는 입장.

생전 사업이니 이런 것에 관심이 없던 둘째 언니가 처음으로 마음을 먹은 일이라

저는 제 노동력 참여는 확답을 줬어요.

뭔가를 차려 놓으면 내가 가서 일은 해 주겠다, 라고.

 

 

 

어디선가 둘이 자리를 보고 와서는 저더러도 봐 달래요.

말은 그렇게 합디다.

'우리가 보기엔 괜찮은데 니가 보는 건 또 다르니까.

우리가 못 보고 놓친걸 니가 볼 수도 있으니까

한 번 가서 봐 줘.'

 

 

제가 워낙에 일 안하는 시간은 집안에서 휴식하는데만 올인하는 걸 잘 알아서

저 움직여 달라고 할 때

굉장히 낮은 자세로 부탁은 해요.

그래서 제가 비싼 몸을 몇 번 움직여 줬어요.

 

 

평소에 머리 속이 쓰레기 통 처럼 쓸데없는 걱정은 많이 끼고 살아도

큰 결정은 또 시원시원 하게 하는 편이거든요.

남들 보기엔 도박하듯이 결정을 쉽게 하는 것 같아도

저도 이러는데는 감만 가지고 하는 거 아니고

나름대로 짧은 시간안에 눈여겨 보고 계산도 하고 다 하고 하는 거거든요?

자기들도 저 이런 걸 알아서 부탁을 했으면서

얘기 듣고 나서는 빈정 상해 하더군요.

 

 

 

자리 보고 와서 제 의견을 말하면

듣지를 않아요.

랜드로드 전화 좀 해달래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일단 거기까지도 합니다.

그러고 나서 또 제 의견을 말하면

역시 듣지를 않아요.

 

 

내 소견을 부탁해 놓고

내 소견을 말했더니

정작 듣지를 않네??

그럼 뭐하러 물어 보고 뭐하러 사람 이렇게 귀찮게 하나???

 

 

집을 보러 다닐 때도

사람 살고 있는 집 볼 때랑

이사 나가고 빈 집 일 때 보는 거랑

와닿는 공간의 느낌이 확 다르잖아요.

빈 가게 자리 보고 와서는 제가 '너무 작다'고 했어요.

언니들이 말하는 그것들이 다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아무 것도 없이 빈 공간 상태만 보지 말고

그 안에 채워질 것들 하나 하나의 덩치를 생각해 보라고.

반도 안 들어갈거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어떤 사람 어디에 가게 하는데 얼마나 코딱지 만한데

거기에서도 이것 저것 다 넣고 장사 잘 하고 있다고 그러더군요.

 

 

다음 번엔 큰 가게인데

반을 나눠서 서브 리스 식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왔어요.

언니들 하는 말이

사람 (서브 리스 주려는 사람)이 화끈하고 너무 웃기고 어쩌고 저쩌고.

홀딱 반한 듯이.

 

 

제가 만나고 왔어요.

제가 저 사람하고는 동업 못한다고 했어요.

가게 자리 보러 다니면서 친구 찾아 다녀요?

뭐가 화끈하고 뭐가 웃기다는 건지.

 

 

저는 사업하는 사람들이 왜 거래처 사람들하고 식사 자리를 많이 하는지

정말 잘 알겠거든요.

서로 잘 모르는 상황에서 밥 한 번 같이 먹는 것 만큼

짧은 시간에 그 사람의 성격, 성향, 가치관 등등을 파악하기에 효과적인게 없다고 믿거든요.

특히 한국 사람들은 한식 한 번 먹으러 가면 대충 80%는 나오는 것 같아요.

함께 나눠 먹으라고 나오는 반찬은 어떤 식으로 집어 먹는지

(자기 입에 맞는거 혼자 다 지 입으로 넣는지 남들 먹을 것도 좀 남겨 가며 먹는지)

일하는 사람 대하는 태도는 어떤지

(밥 한끼 사 먹으면서 종업원들 하대하는 추태스러운 언행 정말 못참을 정도로 싫어요.

이런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강자에 비굴하고 약자에 군림하려는 스타일 사람들이 많다고 봄)

팁을 계산하는 마인드는 어떤지

기타 등등.

이 사람과 밥이 편안하게 넘어 가는지 아니면 불쑥불쑥 불편한 순간들이 계속 되는지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

앞으로 더 만나서 먹어도 좋겠다, 아니면 웬만하면 거리두고 살아야 겠다,

이런 결론은 한 끼 만으로도 충분히 제 안에서는 나와요.

 

 

이게 제가 성격이 섣부른 것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 집 양반이나 언니들이 저한테 물어 보는 이유가

'그 사람은 어찌 어찌하고 어찌 어찌한 그런 타입인 것 같아'

하면 나중에 시간가서 보면 대충 맞거든요.

 

 

둘째 언니 큰 약점은

어떤 사람이든

누군가를 만나면 좋은점만 보고 초장에 푹 빠지는 스타일이예요.

제가 경고를 해도 듣지를 않아요.

시간 지나고 보면 제 말이 맞는데.

실망하고 상처받고 괴롭힘도 받고.

그래도 또 다른 새로운 사람을 보면 또 푹 빠져요.

저는 또 말해 줍니다. 저 사람하고 돈 거래는 하지 말아라.

듣지 않습니다.

반복이 됩니다.

사업하기 아주 안좋은 성향이죠.

 

 

 

큰 언니는

고집이 너무 세고 친화력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자기만 너무 잘나서 남들은 다 밑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남의 집 일을 하면서도 주인 무시하고 이런 식.

참으로 안타까워요.

사회 생활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잘난척은 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죠.

잘났으면 잘난만큼 시간 지나면 다 잘났다고 인정해 주니

내 입과 행동으로 굳이 떠들고 목에 힘 줄 필요가 없는데

내가 잘났다는 건

남이 나보다 못하다는 걸 까발림으로 성취되는 것도 아니고,

남의 밑에서 일할 때는 그냥 사장 말 들으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해도 듣지를 않습니다.

뭐가 부당하고 뭐가 지랄같고 어쩌고 저쩌고,

무식한 게 달랑 가게 하나 가지고 있다고 유세를 떨고 어쩌고 저쩌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존중도 매우 많이 부족하고요.

이런 사람이 정작 자기 가게 차리면 '지랄같은 주인 초 고위험군'에 속한다고 봅니다.

 

 

손님 대하는 태도도 호불호가 극명해서

좋은 손님한테는 친절 스마일 샤방샤방,

안 그런 손님한테는 마구 불친절 인상 팍팍 쓰고.

서비스업은 이러면 바로 망하는 거지요.

좋은 손님만 대하면 다들 거저 먹기로 장사하지. 안 그런가요.

그렇지 않은 손님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가 서비스 업의 관건인데.

모든 직종이 그 직업에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 있는 법인데

이거 못하겠으면 하면 안되죠.

최소한의 손님 접대가 안되면 서비스 업 하면 안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머리 안 아프세요?

제 입장이 이해가 가시죠?

 

 

내 얼굴에 침뱉기인

언니들 흉은 일단 이 정도로 하기로 하고.

 

 

이 두 사람이 저까지 끌여 들여서 뭔가를 저질러 보겠다고 하는데

저는 제가 만약 제 자본으로 하는 사업이면

당연히 가족들 안 끌어 들이고 저 혼자 하고요.

굳이 가족 중 누군가와 함께 한다면 둘째 언니는 초빙할 수도 있어요.

 

 

밥 사 먹고 놀고 쇼핑을 하고

이런 쪽으로는 언니들 중에 큰언니랑 저랑 제일 마음이 잘 맞는데

일 쪽으로는 절대 함께 하고 싶지 않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봐 달라, 사람을 만나 달라

하도 요청을 해 싸서 그렇게는 해오고 있습니다.

두번 째 본 곳에서 저 사람하고 동업은 안된다고 한 이유를 제가 조목조목 짚어 줬더니

이번엔 둘이 화를 내요.

저처럼 모든 걸 부정적으로 보면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다나?

 

 

취지는 자기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고 얘기해 달라는 거였지만

둘의 진심은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얘기를 해 줘,

 

 

였던 거예요.

 

 

의견이고 조언이고

결국은 자기가 이미 생각하고 있는 것을 확인해 주고 동참해 달란 소리지

절대 진짜 솔직한 얘기를 듣고 싶은 게 아님.

도움 구해 놓고

다른 소리 한다고 저렇게 화들을 내니.

그렇다고 제가 그거 받아 줄 사람도 아니고요.

 

 

 

제가 말하길,

지금부터는 가게 안 봐 줄 테니까 둘이 알아서 하라고 했어요.

자리를 보고

계약을 하고

다 꾸며 놓고

영업할 준비 되면 그 때는 내가 가서 일은 해줄께,

그런데 그 전까지는 언니들 둘이 다 알아서 해.

 

 

어차피 듣지도 않을 내 의견 물어 보지도 말라고.

처음 두 군데는 제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밀어 부치려다

다른 이유로 엎어진 것이고

가장 최근은 제가 속으로만 반대 의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엎어 졌어요.

(이것도 아주 잘 된 일이라고 봄)

 

 

꿈을 가지고 사는 건 참 좋은 일인데

그 꿈을 위해 얼마나 현실적인 노력을 해 왔느냐, 지금도 하고 있느냐,

현재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 개시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이런 생각을 요즘 제가 많이 했어요.

 

 

역시나 결론은 언니들 둘이 함께 일을 추진하기에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것.

 

 

그럼 나는 여기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건강 관리에나 힘쓰려고요.

올 여름, 더위를 유난히 타느라 힘 들었어요.

다른 해 보다 유난히 공사다망해서 또 체력이 많이 소모됐고

밥은 두달 여 정도나 부엌일을 거의 작파하다 시피 해서

그 만큼 좋은 음식 대신 나쁜 음식 먹어댔고

언니들 일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엄청나게 피곤했고

 

 

지난 주에 엎어진 가게는

막판에 이거 하면 안되는데...하며

걱정을 어찌나 했던지

엎어진 다음에 긴장이 풀리면서 병이 다 날 지경이었어요.

 

 

분위기 상

언니들은 당분간 가게 보러 다니는 건 안할 것 같고

(제가 누누이 한 2년 정도 각자 자리에서 더 준비를 하자...

이래 왔는데 아마 이렇게 될 듯)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저는 제일 시급한 게

체력과 건강이라

이거 신경 쓰려고요.

종자돈을 모으려고 해도 일을 더 해야 돈을 더 벌 수 있는데

이 상태 몸으로는 지금보다  더 일을 할 수도 없고.

 

 

제가 회장으로 있는 직장에서 결성한 제 팬 클럽 회원들은 밥 한 번 먹자고 난린데

아직도 못하고 있어요.

밖에 나가서 밥 사 먹고 놀 기력 만드려면

일단 집 밥 부터 열심히 해 먹어야 할 것 같아요.

 

 

뭘 먹어야 기운이 팍팍 솟아 나려나...

더불어 여름 내내 집 밥 못 얻어 먹은 남편도 좀 불쌍해서

(몸이 나빠진게 느껴진다나 뭐라나...)

오랜 만에 삼계탕 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