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365일을 그냥 집하고 동네에만 쳐 박혀 있다 해도

전혀 심심하다거나 답답함을 못 느낄 사람이 저 이쁜아짐인데

(실제로 마지막 직장 그만두고 만 6개월을 지하철 타고 밖에 나가질 않아서

친구한테 대인기피증 상담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들었었음)

 

 

이제는 제가 조금 노력을 하는 중이예요.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귀찮다, 하지 말고 좀 다니고

다녀야 할 일 없어도 좀 다녀도 보고, 하자고.

 

 

어린 아기 때문에 집에 묶여 있는 친구한테 전화해서

제가 먼저, 놀러 가겠다, 라는 말을 꺼내고는 정말로 다녀 왔고,

(참으로 장족의 발전입니다. 저기 뉴욕도 아니고 뉴져지인데)

 

 

친구랑 약속 미리 해 놓고는

갑자기 친척 어른의 상이 있어서, 그 주에 두 번이나 기차 타고 다녀 왔어요.

 

 

시어머님이 4남매 중 막내이신데

큰 오빠 되시는 분이 돌아 가셨어요.

비교적 건강 하시다 갑자기 암이 발병 하셔서

조직 검사 하신다고 하시고 결과 나오면 항암 치료 계획을 짜 보신다 어쩌신다 했는데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그렇게 갑작스럽게 돌아 가셨어요.

 

 

지금까지 남편 쪽으로 먼 친척분들 상이 두어번 있었는데

저는 항상 핑계거리가 있는 사람이라 한 번도 안 갔더랬습니다.

남편조차 잘 모르는 먼 친척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시부모님들이 이런 일가 친척 경조사를 정말로 열심히 챙기시는 분들이라

그 영향으로 남편은 꼬박 갔고요.

남편이 저는 딱히 갈 필요 없다고 해서 저는 안 갔어요)

 

 

이번엔

남편의 외삼촌이니 가까운 친척이고

무엇보다 시어머님이 상심이 크셔서...

 

 

아프시다는 소식이 들린지가 얼마 안되는데

지난 크리스마스 때 시댁 가 있는 동안,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았고

저는 그 때 시어머니 옆에 딱 붙어 앉아 가지고 시어머니 바느질 하시는거 구경하면서

말동무 하고 있었거든요.

 

 

남편하고 시아버님은

만났다 하면 두 사람의 수다는 정말로 끝도 없어요.

장소팔 고춘자 만담에 필적하는 입담.

주고 받고 주고 받고 서로 웃고 또 주고 받고.

저것을 한 이틀쯤 보다 보면

그 두 사람 옆에서 그 수다를 듣는 것 자체가 저는 머리가 아파와서

저는 시어머니가 컴퓨터 앞에 앉아 계실 때를 제외하고는

주로 시어머님 옆에서 껌딱지 노릇.

 

 

파이 만드신다고 부엌에 들어가 계시면 그 옆에서 서 있고

좀 피곤하면 혼자 소파에 드러누워 낮잠 잘 때도 있지만

남편이 시아버님하고 만담하는 동안

저는 시어머님 옆에 붙어 있어요.

 

 

남편하고 시아버님 떠드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조용히 방에 들어 가셔서 전화 통화하시고

다시 거실로 나오셔서 하시던 바느질 감을 손에 쥐시고는

아까 우리 무슨 얘기 하고 있었지? 하시더니

뜬금없이

너는 참 귀여워, 하시면서

갑자기 눈물을.

 

 

어머니 왜 그러세요?

 

 

하니까,

잠깐, 좀 있다 얘기해 줄께, 하시더니

 

 

화장실로 뛰어 가셔서는

우시고 나오셨나 봐요.

 

 

그 전화가..큰 오빠 되시는 분 위독하다는 전화 였다고

병이 생긴 건 알았지만 이렇게 조직 검사 결과 나오기도 전에

위독하게 될 줄을 몰랐다고,

내가...큰 오빠랑은...그렇게 가깝지가 않았거든..

 

 

4남매 중에, 저 분을 빼고 나머지 세 분은 항상, 평생을 가깝게 지내 오셨고 지금도 그러신데

저 분은 나머지 형제들하고 좀 덜 친하게 그랬다고 합니다.

부자였던 아버지 재산을 혼자 다 물려 받고

자식을 여덟이나 낳고 부자 동네에서 성 같은 집에서 한 평생 부유하게,

나머지 형제 셋 하고는 아주 다르게 사셨더랬죠.

 

 

어머님은

별로 살갑게 왕래하지 않았던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이었을 거고

이제는 그것을 만회활 시간이 없다는데서 오는 안타까움

그런 마음이셨겠죠.

 

 

저는 아직 형제를 잃는다는 것,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저도 5남매의 막내다 보니

자연의 섭리 대로 간다면 저도 형제들을 먼저 보내고 내가 제일 나중에 남게 될 확률이 높겠죠.

 

 

그보다 먼저

친정 엄마,

시부모님

먼저 가시게 될테고.

 

 

크리스마스 때 위독하시다는 전화 받고 제 앞에서 눈물 보이실 때만 해도

남편이나 아들, 딸 보다 그래도 나는 며느리니까

덜 가까운 사람이라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오히려 수월할 수도 있겠다 생각 했는데

 

 

새해 되고 며칠 안되서 부음을 듣고

장례식 전 날 장의사에 잡힌 wake(이 행사를 한국말로 뭐라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고인의 관이 모셔져 있고 사람들이 와서 예를 표하는 일)엘 갔는데

 

 

조문객들하고 담소 나누시고 계신 시어머님이 보이고

입구에서 저를 보시고 저는 손을 흔들고 어머님을 향해 걸어 가는데

어머님이 또 저를 보시더니 눈물이 글썽...

허그 하면서 인사를 하는데 우시고.

 

 

저는 너무 당황스러웠던 것이...

왜 저만 보면 우시는 것인지...

그리고 저는 원래 눈물이 참 쉽게 나는 사람이라...

어머님 저러시면 저도 따라 눈물이 나는데...

저는 저 돌아가신 어른하고 아무런 추억이나 관계가 없거든요...

그런데 미국 사람들만 쭈욱 모인 저런 자리에서

직계 가족 아무도 눈물 찍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시어머니 저를 안고 우시고

혼자 동양 사람인 아무 상관없는 이쁜 아짐 같이 눈물 흘리고.

저는 그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그 날 두 시간 동안 꽉 차게 저 자리에 있다가

집에 오고

다음 날 아침 10시가 장례식.

남편은 저더러 너무 힘들다고 어제 갔으니 장례식까지는 안가도 된다고

혼자 다녀 오겠다고 하는데

(기차 타고 가야 하는 곳이라 아침 열 시면 저희가 상당히 일찍 움직였어야 했어요)

 

 

시어머니 때문에 가야 할 것 같더라고요.

내가 가면 어머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 그래서 가야 될 것 같아.

 

 

그래서 새벽에, 제가 남편보다도 더 일찍 일어나서

남편은 일어 나서도 저를 보더니

마눌님 이틀 연짱으로 장거리 뛰시면 너무 힘들거라고, 그냥 집에 계시라고 하는데

강행했어요.

 

 

기차 역에서 시부모님 모시고 온 둘째 시누 차에 탑승해서

성당으로 가서.

장례 미사 시작.

 

 

 

성당에 앉아 미사라는 것에 참석한 것이 평생에 도합 세 번째고

장례 미사는 평생 처음이고,

흘끗 뒤돌아 보니 2층에 전자 오르간을 치는 남자가 보이고

그 옆에 마이크 앞에 선 여자가 보이고

어떤 성가를 부르기 시작하고

관이 들어 오고 가족들이 그 뒤를 일렬로 따라 들어오고.

 

 

시어머님 울기 시작하시고 난 그냥 이 상황 자체가

한 사람이(나와는 일대일로 아무런 개인적인 관계나 추억이 없었던) 삶을 마감했다는 그냥 그 평범한 사실 앞에서도

마구 생각이 혼자 복잡해지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시어머님이 우시니까 나도 또 눈물이 같이 흐르고.

 

 

장례 미사 내내 눈물을 흘리시는 시어머니 때문에

저는 안 울려고 너무나 노력하느라 힘들었고.

8남매의 자식과 그들의 배우자들, 손자 손녀 21명

그 뒷줄에 제 시댁 식구들과 앉아서

내 앞줄로는 아무도 우는 사람이 없는데

연로하신 시어머님의 언니, 제 시이모님의 작은 어깨가 계속 들썩이고

시어머님 계속 우시고,

저는 따라 눈물을 흘리는게

누가 나를 흘끗 본다면, 자식들도 울지 않는 장례식에 저 여자는 뭔가...할까봐

 

 

너무 또라이스러워 보일까봐 그게 민망해서

저는 안 우려고 너무나 많은 노력을 했어요.

참 힘들었어요.

 

 

시어머니가 두 손으로 제 한 손을 꽉 움켜 쥐시고 계시는데

저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괴로웠습니다.

시어머니가 우시니 나도 눈물이 흐르고 울면 안되겠고 울고 싶지 않은데...

흐미...

왜 시어머니는 아들도 있고 딸도 있고 남편도 있는데

하필 내 옆에 앉아 내 손만 꽉 쥐고 계신가...

아...괴롭다...

 

 

장례 미사 끝나고

부잣집 답게 리셉션을 좋은데서 하더군요.

무슨 컨츄리 클럽이라고 남편이 저한테 귓속말로

음식 아마 아주 맛있을 거예요. 수고 많았으니 맛있는거 실컷 드세요.

 

 

컨츄리 클럽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시아버님도 아주 만족스워 하시더군요. 아주 좋은데라고.

 

 

저는 장례 미사를 지켜 보면서

내 엄마가 떠나실 날,

내 시부모님이 떠나실 날,

그리고 노후 대책이라는 것이 나 죽는 날 나 장례 비용 마련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것,

이런 것 생각하게 되서 머리가 복잡했거든요.

 

 

자식이 여덟 명이나 되고

부자 부모 밑에서 큰 자식들은 잘 자라서

결혼들도 다 비슷하게 해서 여전히 혹은 더더욱 부자로 살고

부모 떠나는 길에

관도 좋은 것으로 모시고.

 

 

이런 생각들.

 

 

관 값이 그렇게나 비싸다는데 충격을 먹었거든요.

 

 

컨츄리 클럽으로 향하는 길에

시부모님이,

유언장, 당신들 장례식, 이런 얘기를 아주 스스럼없이 꺼내시더군요.

 

 

남편한테

유언장 고치고 싶다고 서류를 다시 만들라고 하셨던 말씀,

조만간에 빨리 마무리 짓고 싶으시다는 말씀,

그리고 당신들은 돌아 가시면 관이 필요 없으시다는 말씀.

 

 

아주 아주 오래 전에 벌써

어떤 기관에 당신들 돌아가신 몸을 기부하겠다는 각서를 쓰셨다고.

(의대생들 해부용으로 기증하신다고 하시네요)

그 쪽에서 다 쓰고 나면(당신들 몸을)

화장을 해서 유족한테 전달을 해주는 거래요.

 

 

 

장례 미사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이라고는 저희 시댁 식구 밖에 없긴 했지만

여튼 리셉션에 가서는

시어머니도 더 이상은 울지 않으시고

조문객들 모두 좋은 분위기로 술 마시고 밥 먹고 그러고 집에 왔어요.

 

 

시어머님의 언니,

저한테는 시이모님이 수녀님이신데

(16살 때 부터..)

시이모님의 동생 수녀님들이 몇 분 같이 오셨거든요.

그 분들 테이블에 제가 동생 수녀님들 중 한 분한테 손목잡혀 가서 함께 앉게 됬는데

(우리랑 같이 앉아야지~~ 하시면서 막 끌고 가셨음)

 

 

 

저는

좀 전에 또라이처럼 보일까 신경 쓰면서 눈물 뚝뚝 흘린게 언젠가 싶게

또 속없이 맛있는 음식 앞에 있으니 어찌나 잘 들어가던지...

 

 

시어머니는 또 수녀님들 앞에서

얘는, 엄청 먹어요. 얘는 얼마나 잘 먹는지 몰라요.

남편은 옆에서 질세라 거들고.

시이모님 83세,

동생 수녀님들 다들 칠십 훌쩍 넘으신 분들,

저 먹는거 구경 하시면서 거진 박수칠 기세들.

 

 

그래서 할머니 수녀님들 앞에서

엄청나게 귀여운 척 하면서 발랄한 모습으로

비싼 음씩 겁나게 해치우고 왔어요.

 

 

이 수녀님들이

제가 재작년에, 아니 벌써 3년 전이라 해야겠군요!,  한국에 수술하러 갔을 때

수술 당일 날,

한국 현지 시간 맞춰서 실시간 미사 해주신 분들,

 

 

동생 수녀님들 중 한 분,

저를 같이 앉아 먹자고 잡아 끄셨던 분은

남편이 기저귀 차던 시절부터 보아 오셨던 분이라고,

한국 어른들 하는 말씀하고 똑같이 하셔서 저는 너무 우스웠어요.

내가 이 놈을 똥 기저귀 찼을 때부터 봤는데

어느 새 어른이 됬다고 이런 이쁜 색시를 얻어 산다고.

이 복터진 녀석아, 하면서 남편 머리 통을 두 손으로 부여 잡고 뽀뽀를 쪽 하시더군요.

저한테는, 내가 너를 자주 보고 싶은데

결혼식 때 처음 보고 재작년에 두 번째 보고 오늘로 세 번째 본다고.

 

 

시이모님 생신이 8월인데

이 핑계거리 많은 이쁜아짐,

딱 두 번 갔었어요.

함께 기거하시는 수녀님들하고 저희 시댁하고 이렇게 조촐하게 기념하시는데.

 

 

이제부터 매년 가도록 노력해야 겠어요.

 

 

친구들도 조금 더 자주 만나도록 할 거고요.

 

 

요즘 친정하고 두루두루 또 사이가 많이 안 좋은데

하루 빨리 우리 가족 모두 좋은 사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노력해 보려고요.

 

 

큰 언니 딸이

며칠 전에 저를 보러 와서는

이모가 있어서 자기는 참 행복하다고 말을 하는데

저는 그 애가 자라는 동안

둘째 언니 애들만큼 관심과 정성을 못 보여준 것이 참 마음에 걸렸고요,

저는 그 애 한테 해준게 정말 없는데

이모가 있어서 든든하고 이모가 자기는 정말 좋다고 하는데

뭐랄까...

앞으로 두루두루 사랑을 더더욱 많이 표현하고 살아야 겠다,

물질적으로는 능력이 안되니까

말로라도 (내 평생의 컨셉ㅋ)...

라는 다짐.

 

 

 

자기가 앞으로 돈 많이 벌면

자기 엄마랑 이모 좋은데 여행 보내주겠다고.

이제 제 나이가 벌써

조카가 여행 보내 주겠다고 하는 말을 들을 나이가 됬네요.

 

 

이거 맨날 제가 제 이모한테 하는 말이었는데ㅋㅋㅋ

 

 

컨츄리 클럽에서 밥 잘 먹음으로 장례식 일정 다 마치고

헤어지는 인사를 하는데

시어머님이 저를 안고

 

 

I love you, I love you, I love you.

 

 

러브에 아주 강세가 매번 꽉 들어 갔어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이렇게 삼세번 연속으로는 남편한테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집에 잘 도착하셨냐는 전화를 남편이 드리니 시어머님이 그러시더래요.

 

 

제가 good hand holder, 라고.

 

 

내가...

이리 찌질하게 살아도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참 이렇게나 많구나...

 

 

나는 절대 내가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되겠구나...

 

 

그래서 내가 사는 동안,

돈은 없이 살 지언정

사랑은 많이 하고 살아야 겠다.

 

 

나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

나랑 있으면 좋다고 하는 사람들,

더 자주 보고 더 자주 만나고

나 꼴보기 싫다고 하는 사람들(친정 식구들 중 일부)

내가 더 시간을 줘야지.

 

 

그래서 내일은 또 뉴져지 친구 집 놀러 가기로 했어요.

 

 

이 달에만 지금 장거리 네 번째 뛰는 겁니다.

예전 같으며 장거리 한 번 뛰고 사나흘은 침대에 드러누웠을 텐데

이 만큼의 체력을 얻기까지

엄청난 식이 요법과 생활 습관 관리를 해 온

이쁜아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시간이 있을 때

사랑할 수 있을 때

 

 

그렇게 많이 사랑하면서

서로가 함께 존재함을 감사하며

그렇게 살아야겠다 마음을 다집니다.

 

 

 

아둥바둥 뭔가를 해 보겠다고 하는 만큼 한다고 하는데

계획처럼 일들이 진행되지 않아서

마구 마구 가라앉고 슬펐던 연말이었는데

친척 어른의 상을 겪으면서

그냥 무심하게 보던 내 주변 사람들의 나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새삼 느끼면서

 

 

나는 이대로도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라고

확신을 합니다.

 

 

 

사랑할 수 있을 때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살아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