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naver.com/pud3599?Redirect=Log&logNo=50102479608

 

 

밑에 밑에 칼럼에 쓴 내용 중에

장소팔 고춘자를 어찌 아냐고 놀라시는 분도 계시고

그들이 누군지 잘 모르겠다고 하신 분도 계시고 하여,

이 만담 콤비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해야겠다..싶어 검색을 했더니

동영상이 올라 온 것이 있어 링크 걸어 봅니다.

 

 

저도 이 분들에 대해 잘은 모르고.

보니까...

60대가 전성기 였던 듯 하고 70대 초 중반 까지 활동을 하셨던 듯 싶고.

제가 알고 있었던 사실 하나는

라디오가 주 무대였다는 것.

텔레비젼이 보편화 되면서 사양길에 접어 들었었다는 것.

 

 

 

70년대 시작! 하고 그 다음해에 태어난 이쁜아짐은

생각해 보니까 학교 들어가기 전 까지의 어리고도 어린 시절,

제가 시간을 가장 많이 보냈던 가족이 '외할머니'였더라고요.

 

 

외할머니하고도 하루 종일을 붙어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언니,오빠들 학교 가고 가면 집에 남은 사람은

나랑 외할머니 뿐이었고

나는 나대로의 라이프를 즐기느라 되는대로 골목길 배회, 및

도봉산 끝자락의 아름다운 산천초목을 감상하면서 시간 때웠고

할머니는 집에서 손주가 다섯이나 되는 딸 집의 '살림'을 도맡아 하고 계셨고

(형편이 좋았을 때나 안 좋았을 때나

노 여사는 '살림'이라는 걸 하지 않으셨음)

밥 때 되면 집에 들어 가서 할머니랑 겸상으로 점심을 먹고.

 

 

점심 먹고 나면

할머니가 심심하시다고 화투나 치자고 하셨던 것,

기억이 납니다.

 

 

제가 항상 평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화투 조기 교육 출신' 이라는 거.

 

 

 

한글 떼기 전에 민화투 마스터.

구구단 떼기 전에 고스돕 마스터.

이력서에는 못 쓰지만

저 혼자는 항상 흐뭇하게 생각합니다.

 

 

 

그 당시 할머니의 유일한 손님은

근처 동네에 사시던 '포도밭 집 마나님'

할머니가 꼬박 꼬박 '마나님'으로 부르시던 근처 사시는 부잣집 할머니셨어요.

저희 할머니 보다는 연배가 10년 쯤 더 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가끔 이 '마나님'께서

어리고 어렸던 제가 보기에도 우리 할머니 보다 훨씬 더 고급스런 한복을 입고

저희 집에 마실 오셨던 걸 선명하게 기억해요.

이 분이 오시면

할머니가 아주 반갑게 맞으셨고 방으로 안내를 하셨고

그리고는 저도 부르셨어요.

 

 

할머니가 부르셔서 방 안으로 쪼르르 들어 가면

군청색 군용 담요가 방 한 군데에 살포시 펼쳐져 있었고

화투 한 짝과 팔각 성냥갑이 놓여 있었고

할머니가, 너도 앉아라, 하셨고

성냥 개비 서른개 정도씩 서로 나눠 앞자리에 놓았고

팔십 줄, 칠십 줄에 계신 할머니 두 분하고

막 다섯 살 쯤 된 이쁜아짐,

이렇게 세 사람이 화기 애애하게 민화투를 쳤더랬습니다.

 

 

'마나님'께서,

 

 

어린 것이 아주 똘똘하구먼..

 

 

하시면, 외할머니께서 흡족하신 목소리로

 

 

네에. 아주 곧잘해요.

 

 

저는 막연히, 저게 좋은 소리겠거니...하고 정말 재밌게 화투에 몰두 했었습니다.

 

 

타임머신이라는 게 있다면

캠코더를 갖고 있는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저 시절 저 장면으로 돌아가

고 올망졸망한 두 손으로 화투짝 일곱 장을 꼬옥 손에 쥐고 있는

미치도록 귀여울 이 이쁜아짐의 모습을 찍어 오고 싶은 마음 굴뚝 같습니다.

 

 

에이, 애가 화투치는게 뭐가 귀여워!!!

 

 

 

하실 분들을 위해

정말로 귀여운 에피소드 하나.

 

 

세상 태어나서 부터 지금까지 정말로 많은 별명을 갖고 살았던 이쁜아짐.

외할머니가 저를 부르시던 별명은 '망광냥이'였어요.

말괄량이,를 할머니가 하시는 발음은 언제가 '망광냥이'

 

 

동네 어디선가 열심히 뛰어 다니고 놀다가

배가 고파 허겁지겁 집으로 뛰어 들어가면,

저를 보시는 할머니 첫 마디는 항상,

 

 

우리 망광냥이 왔구먼..

 

 

우리 집 살림을 해주실 때나

나중에 이쁜아짐네 가세가 더더더 기울어서

이모네 집으로 가시고 돌아 가실 때까지 내내 그 곳에 계실 때

할머니는 주로 혼자 식사를 하셨어요.

고추장, 된장, 간장 기본으로 매해 다 담그신 것은 물론이고

평소에도 부엌에서 이것 저것 반찬들 잘 만드시던 분이신데

당신 식사는 항상 찬 두어 가지를 넘지 않고

소식에 천천히 천천히 아주 아주 오래 씹어 드시던.

 

 

 

애들 잘 먹는 반찬하고 어른들 좋아하는 반찬은

그 때나 지금이나 따로 있잖아요.

할머니는 항상 그래서 당신이 드시는 밥상 따로 보시고 혼자 드셨는데

저는 할머니랑 겸상을 많이 했어요.

우리 집에 사실 때나

이모네 사실 때나

저는 밥 그릇 들고 할머니 방으로 가서 할머니랑 둘이 같이 먹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 때 당시 부터

이쁜아짐 입맛이 좀 노숙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안 먹는 것 없고 안 좋아하는 것 없는 사람이지만

특히나 그 중에서

모든 '쌈' 종류를 좋아 하는데,

양배추 쌈, 상추 쌈, 호박잎 쌈, 배추 쌈, 쌈쌈쌈...

쌈도 잘 하지만 먹는 '쌈' 아주 좋아합니다.

 

 

 

어느 날 헐레벌떡 집으로 들어 갔더니

할머니가 막 점심 드신다고 밥상 앞에 앉아 계시더라고요.

우리 망광냥이 왔어, 하는 인사부텀 듣고

밥상 앞에 납싹 앉았더니 할머니가 제 밥을 떠 오셨어요.

내 밥 공기 받자 마자,

배추 고갱이에다 된장 푹 얹고 밥을 담아서

입이 터져라 쌈을 싸서 우악우악 우악우악 씹고 있는데

할머니가 당신은 드시질 않고 이런 제 모습을 쳐다 보고 계신 거예요.

 

 

 

두 번째 쌈을 싸서

또 우억우억 먹고 있는데,

 

 

 

우리 망광냥이는 먹는 것도 참 복시럽게 먹는구만.

 

 

 

배추 고갱이에 쌈 싸먹던 저 날 오후의 기억이

왜 내 머리에 남아 있는 지는 모르지만

할머니께서 이쁜아짐한테 '복시럽게' 먹는다고 하셨던 말씀,

하는 짓이 '복시러워서' 나중에 아주 잘 살거라고 하셨던 말씀,

왜인지 제 머리에 아주 또렷이 남아 있어요.

(아니 근데 왜 잘 살지 못하고 지금 이 모냥이냐고요....헐...)

 

 

 

타임머신이라는 게 있다면...

다섯 살 짜리 여자애가 된장에 배추 쌈을 입이 터져라 싸먹는 모습을 찍을 수 있다면...

정말 미치도록 귀여울 것 같다.

그리고 이 세상에 어떤 씨니컬의 최강자가 있어 이것조차,

에이, 그게 뭐가 귀여워! 라고 하면...

내 말하리라.

 

 

이것도 안 귀여우면

이 세상에 귀여울 것, 한 개도 없다!!!!!

 

 

 

 

작년에, 이모 뉴욕 계실 때

이모랑 셋째 성이랑 베트남 식당엘 갔었어요.

제가 쌀국수랑 폭챱이랑 아주 좋아 하거든요.

(다시 한 번, 안 먹는 거 안 좋아하는 게 별로 없는 이쁜아짐)

음식을 너무 급하게 먹는 것이, 제가 지금 시급하게 고쳐야 할 점이예요.

빨리 먹으면 안 좋다는 거,

천천히 오래 씹어 먹어야 한다는 거,

잘 알고 있는데 음식 앞에서 이게 절제가 참 안되요. 고민 임.

 

 

 

제가 쌀국수를 너무나 열심히 먹는 모습을

이모가, 옛날 외할머니가 저를 쳐다 보시던 그 눈빛으로 한참을 보시더니,

 

 

 

얘..그게 그렇게 맛있니?

 

 

 

네!!! 전요, 내가 한 것도 맛있고 남이 한 것도 맛있고

전부 다 다아~~ 맛 있어요!!!

 

 

 

이모가

그렇게 맛 있을 때 열심히 먹으라고 하시더라고요.

나이 들면 맛 있는 게 점점 없어진다고요.

 

 

 

재작년 파리에 갔을 때,

가는 식당 마다 와인 소스 홍합 요리에 열광하는 저를 보고

사촌 언니도 한참을 쳐다 봤었어요.

 

 

저렇게 좋아서 맛있게 먹는 음식이 있다는게 부럽다고 하더라고요.

 

 

작년 여름에는,

과일을 사면 항상 예쁘게 먹기 좋게 깎고 잘라서 통에 담았다가 대접하는 셋째 성이

사다가 시원하게 해 놓은 수박이 있다고

 

 

수박 줄께.

 

 

하더니 부엌에 가서 한 입 크기로 예쁘게 자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단 걸로 잘 사 왔는지 모르겠다고

맛있는 건지 한 입 먼저 먹어 보라고 주길래

 

 

제가 수박 국물 한 방울이라고 안 놓치려고

셋째 성 손가락 끝 부터 떨어지는 수박 물을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빨아 들이듯이 수박 한 입을 입에 넣고

아삭 아삭 아삭 아삭 먹고는,

 

 

응 잘 샀네. 아주 달아.

 

 

했더니,

 

 

저보고

 

 

야, 너 있잖아,

독거 노인들 밥 함께 먹어주는 아르바이트 같은 거 있으면 그런거 해라.

 

 

 

어쩌면 그렇게 맛있게 먹냐고.

방금 너 수박 먹는 소리에 자기가 침이 흠뻑 고였다고.

셋째 성이 항상 그러거든요.

배가 안 고픈데도 너 먹는 거 보고 있으면 옆에서 한 입 얻어 먹고 싶다고.

 

 

 

저희 친정 엄마인 노여사께서는

저의 이런 밥먹는 모습을 굉장히 싫어 하셔서

맨날 귀가 따갑도록

밖에 나가서는 그렇게 먹지 마라, 숭 떨린다, 여자가 너무 추접스럽게 먹어서.

이러시거든요.

 

 

그래서 저는 가족 말고 다른 사람들과 밥 먹을 때는

좀 밥 먹는 게 괴로워요.

내가 너무 지저분하게 먹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그런 걱정이 문득 문득 들어서.

 

 

 

항상 배가 고팠던 기억은 아스라하고

지금은 먹을 게 없어서 배 곯는 일은 없는데

음식을 보면 게걸스럽게 달려드는 버릇은 여전하고

여전히

매 끼니, 매 번,

먹는 것이, 배 고플 때 내 앞에 있는 음식이 참 고맙습니다.

 

 

 

 

밥 복스럽게 먹던 다섯 살 이쁜아짐이

외할머니와 단 둘이 점심 맛있게 먹고

외할머리로 부터 민화투 조기 교육을 받고 있을 때

그 때 아마도 우리 집 라디오에서

장소팔, 고춘자의 만담이 흘러 나왔던 거겠죠. 내가 확실히 기억은 못해도...

 

 

 

제 머리로 기억하는 확실한 장소팔 고춘자는

그 당시 동네 어른들이 저더러 한 말.

 

 

나중에 커서 고춘자 같은 만담가가 되라는.

 

 

그 말들이 더 기억에 남아요.

저 정말, 저 말 무지하게 많이 들었어요.

 

 

아이고야...쟤는 말로는 못 당한다...

고춘자 뺨 친다...

 

 

이러면서 고개 좌우로 절레 절레 흔드시던 동네 어른들.

구체적으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다녔는지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지만,

내 나이 다섯 살 때

이미 동네에서 소문 난 '청산유수'였고

동네 어른들이 말로는 쟤 못 이긴다고 하며 쉬던 한숨은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동네에서

'차세대 고춘자'로 각광을 받았던 이쁜아짐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장소팔, 고춘자의 만담 내용은 기억에 없지만

프로 하나 끝나고 나오던 광고 중에 샘표 간장 광고는 아직도 기억이 나요.

 

 

 

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 간장

(간장 간장 샘표 간장~~~~)

빛깔을 보세요 향긋한 냄새

입맛을 돋구는  샘,표,간장~

 

 

 

 

제가 지금 집에서 저 간장을 쓰지는 않지만

옛날 저 광고 노래는 잘도 따라 불렀었다는.

 

 

 

 

 

그 옛날,

삽십 년도 더 전에

차세대 만담꾼으로 온 동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이쁜아짐

라디오나 텔레비젼은 못 나가도

미씨의 이야기꾼으로

 

 

 

대략...

동네 어른들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삶을 살고 있네요.

여전히...

귀여운 그 옛날 그 모습대로...입이 터져라 쌈도 먹어 가면서.

 

 

푸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