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을 하면 항상 도시락을 싸 다니는 편이고

요즘은 전자렌지 라는게 보통 어디나 다 있다 보니까

그냥 일반 도시락통에 싸서 전 날 준비해 놨다가 아침에 들고 나가서

일하는 곳에서 전자렌지에 데워 먹으면 되는데

이번에 일 시작한 곳에 미쳐 전자렌지가 준비가 안 되있어서

(사장님이 안 사주시겠다 한게 아니고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사업체라 아직 준비가 안 된 상태)

일주일 고민 하다 아마존에서 질렀습니다.

 

 

도시락은 싸 다녀야 하겠고

전자렌지는 없고

찬 밥은 죽어도 먹기 싫고

하여 한국마켓을 갔더니 보온 도시락이 꽤나 비싸더군요.

그래서 친구한테 사연을 토로했더니 아마존에 가 보라고.

지금 언니가 말하는 그 도시락 그 한국마켓 보다 12불 싸게 판다고.

저랑 전화 통화하는 중에 바로 알아 보더니 이런 정보를.

 

 

그래서 43불에, 세금내고, 쉬핑비는 없이 그렇게 샀어요.

살 때는 47불이나 돈 쓴다고 참 비싸다 했는데

저거 안 사면, 매일 찬밥을 먹을 수는 없고

사 먹으면 저게 딱 일주일 점심값 정도 되니까

일주일 사먹는 점심값 투자해서 내내 쓰는 셈 치면 되겠구나, 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질렀습니다.

 

 

3일만에 금새 도착한 내 새 보온 도시락은

내가 옛날에 학교 다닐 때 보던 그런 보온 도시락보다 훨씬 날렵한 모양새에

도시락 가방까지 딸려 온 것이 마음에 쏙 듭니다.

 

 

그 옛날 ,

국민학생 때,

나는 발도 시렵고 너무 춥고만

교실에 난로를 때기에는 덜 춥다고 했던 수 많은 날들.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여전히 나는 충분히 발이 시렵고 충분히 추운데

석탄을 나눠 주기엔 충분히 춥지는 않았던 날들,

 

 

내가 만약에

한 열 살 쯤 많았다면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

어쩌다 충분히 추워서 난로를 때던 날,

난로위에 양철 도시락이 줄줄이 올라있는 그런 날,

양철 도시락 외에는 다른 도시락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런 시절에 학교를 마쳤다면

 

 

그런 사진을 지금 본다면

그래 그 땐 그랬지, 하고 추억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시락을 싸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한 해 한 해

양철 도시락은 자취를 감추던 그런 시절에 저는 학교를 다녔지요.

중학교 1학년,

2학년,

3학년,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3학년.

 

 

겨울에 플라스틱 도시락 싸 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보온 도시락이 그닥 좀 사는 집 아이들이나 가지는 것이 아닌 것이 된지

한참이 지난 그런 시절에도

그래서 난로를 때기에는 충분히 안 추운 날에도

털달린 실내화를 신는 아이들이 이미  대세가 되어

 

 

이러나 저러나

하얀 천 실내화를 신은 내 발가락은 이리 저리 오그라 들 정도로 시렵고

나는 찬밥을 먹는 반에서 몇 안되는 아이 중 하나이고.

 

 

찬밥을 먹는게 너무나 싫었어요.

 

 

점심 시간에 친구들이 보온 도시락을 열어

뜨겁지는 않아도 아직 온기는 남아 있는 밥을 먹을 때

찬밥을 꾸역 꾸역 먹는게 너무나 싫었어요.

저도 그런 따뜻한 밥을 먹고 싶었어요.

 

 

그래서 밥이 너무 차가와 지기 전에 항상 먹었어요.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라 배가 자주 고파서

점심 시간 전에 미리 먹는 아이들, 물론 저 말고도 많았고

항상 선생님들이 수업 들어 오시면 창문 좀 열라고 짜증 내시고.

 

 

그 때 저랑 같이 1교시 끝나기 무섭게 도시락을 먹던 친구들.

오늘에야 생각 났어요.

공통점이 모두, 보온 도시락이 없던 아이들이라는 거.

우리 모두 추운 겨울 날,

찬밥이 먹기 싫었던 거예요.

 

 

 

제가 차갑게 해서 먹는 음식이나 반찬들 말고

상온이나 따뜻하게 해서 먹는 음식들은 꼭 제대로 데워 먹는 철저함이 있는데,

그 중에 특히 밥이요. 전 밥이 항상 뜨뜻해야 해요.

언젠가 셋째 성이 저더러 그랬어요.

그렇게 까지 데우지 않아도 괜찮은데 저더러 유난 떤다고요.

저는 그 때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몰랐는데

 

 

보온 도시락을 사니까 내가 왜 그랬는지 알 것도 같아요.

아마도...

나는 학교 다니던 시절, 겨울에 차가운 도시락 먹는게 싫었던 사실이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밑에 글에 올린 도시락 사진있죠.

아침에 밥을 다시 데우긴 했는데 점심에 먹으려니 '찬밥' 됬더군요.

그게 월요일이었고 그 날 마침 보온 도시락이 배달이 되었어요.

그래서 화요일 부터는 보온 도시락에 점심 싸 갔어요.

 

 

제가 2년 쯤 전에,

막 배가 매일 매일 아프기 시작했을 적에,

그래서 산부인과를 다니고 초음파를 찍고,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 듣고

그 때 마음이 무너졌을 때,

 

 

더 큰 병 앓는 사람,

고칠 수도 없는 병을 앓는 사람,

그런 사람들한테 크나큰 사치일 수 있는 그런 병을 가지고

저는 많이 힘들었거든요.

지금이나 이렇게 생각하지, 그 당시에는 내 몸 상태가 이렇구나, 라는 사실을 알고

아직은 받아 들이지는 못하는

그저 마냥 슬픈 상태였을 때, 많이 울었어요.

이유없이 그냥 눈물이 시도 때도 없이 나서 참 곤란했어요.

 

 

많이 아픈 사람한테는,

내 상황이 그저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그저 빼내면 되는 그런 거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기 닥친 상황을 제일 아프고 불행하게 느끼는 거.

그 때는 제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너무 너무 아팠어요.

그걸 빼내자고 결심 하기까지가 참 힘든 시간이었어요.

그냥 모든 것이..슬펐어요.

 

 

그 때 많이 울었어요.

 

 

남편도 밉고, 나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냥 그렇게 나도 의식하지 못하면서

정신 퍼뜩 차리고 보면 내가 울고 있고.

내 마음을 이해 못하는 남편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아서 산책한다고 동네를 나가서는

어느 새 길거리 걸어 가면서 울고 있다는 걸 깨닫고 급 당황해서 집으로 다시 뛰어 오기도 하고.

 

 

아유 내가 좀 작작 울어야지. 내가 왜 이래. 하면서

어느 날은 굳게 다짐을 하고 집을 나서서

동네 99전 가게를 갔어요. 평소처럼 그냥 가게 안을 심드렁하게 구경하는데,

그릇 파는 섹션에서 생각지도 않은 물건을 발견.

 

 

옛날 옛날

내가 국민학교 시절에나 봤을 법한 투박한 검정색 보온 도시락.

많이도 아니고 딱 하나 진열대에 있던데,

저 그거 보고 너무 놀랐어요.

뉴욕에서 내 동네 싸구려 물건 파는 가게에서 이런 추억의 물건을 보게 될 줄 상상도 못했으니.

 

 

그 보온 도시락을,

아주 찬찬히, 아주 찬찬히 살펴 봤어요.

맨 위에 뚜껑을 열고, 그 안에 구성물들 꺼내서

반찬통, 밥통, 국통, 하나 하나 정말 찬찬히 봤어요.

찬찬히 만져 보고 찬찬히 다시 집어 넣었어요.

 

 

 

저거...

그 때 한국에서,

내가 학교 다닐 때,

도대체 얼마였길래 나는 그걸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을까.

 

 

추운 겨울 날,

교실에서 얼어 붙은 발가락 동동 부비고,

오늘도 난로를 안 때주니 찬밥을 먹겠구나, 속상해 하던

그 옛날이 생각나 버렸어요.

 

 

또 울었어요.

 

 

살면서 처음으로 속으로 내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위로해 줬어요.

 

 

이쁜아....(물론 이것이 실명이 아니므로 진짜 이렇게 부르지는 않았음. 오해 없으시기 바람)

찬밥 먹고 크느라 애 썼어...

 

 

그리고 저 날 이후로는 잊고 있었던 보온 도시락.

 

 

내 무의식에 찬밥은 절대로 다시는 안 먹고 싶다는 의지가 통했는지

플라스틱 도시락은 하루로 끝을 낼 수 있었습니다.

보온 도시락에 싼 점심을 생애 처음으로 먹던 화요일,

감개 무량한 가운데 곧이어 드는 생각.

 

 

뭐 별 것도 아니구만. 이게 그 때는 절대 가질 수가 없는 그 무엇이었다니 헐헐헐...

 

 

밥 잘 먹었습니다.

 

 

이쁜아짐이 요즘 하는 생각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런 말 많이들 하잖아요. 성경 말씀에 나오는 것이던가요?

 

 

저는 제 버젼으로 조금 바꿨어요.

이것 또한, 지나고 나면 지금처럼 괴롭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마냥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것 때문에 괴로운 현재의 내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인정해 줘야 할 것 같아요.

오늘만 넘기면

내일은 좀 덜 괴로울 것이다 라고.

 

 

그 때는 그렇게나 많이 울었는데 지나고 나니 지금은 씩씩하게 잘 살잖아요.

그렇게 살아 냈더니

오늘은 오매불망 꿈에도 그리던 보온 도시락도 가졌잖아요.

절대 나는 저런 걸 가질 수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그런 물건인데.

 

 

오늘 남편 무릎에서 조금 울었어요.

그냥 사는 게 내 뜻 같지 않다는 평범한 사실 앞에서

몸도 피곤하고,

남들한테는 별 것 아닐 일들에 나는 왜 항상 이런가 하는

내 성질이 너무 예민한 것이 내 자신이 너무 피곤도 하여

그 사람 무릎에 얼굴을 파 뭍었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오랜만에 울었어요.

 

 

남편이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와중에

가만 놔 두라고 부탁하고는 한 동안 그렇게 울고 났더니

기분이 한결 낫습니다.

 

 

그러고 나서 거실에 나와

남편 손에 깨끗이 설거지 된 나의 새 보물, 보온 도시락을 보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은 생각이 또 듭니다.

그렇게 찬밥을 먹는게 싫었는데,

그렇게 저게 갖고 싶었는데...

갖고만 싶었지 내가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던 건데...

나이 마흔에 드디어 보온 도시락을 가지다...

 

 

꿈은...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