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온 도시락 기껀 사 놨더니 일주일 천하로 끝나 버리네요.

아우 담 번 직장도 꼭 전자렌지 없는 곳으로 잡아야지.

이 보온 도시락 제가 아주 뽕을 빼고 싶거든요.

 

 

주말 동안 마음도 그렇고 현실도 그렇고 조금 많이 우울했었는데

여튼 좋게 끝이 났어요.

 

 

저한테는 새로운 분야의 일이었어서

할 줄 아는 것,

할 수 있겠다 하는 것 정직하게 말하고 면접을 봤고

사장님도 저를 좋게 보셔서 함께 일하자, 바로 확답을 주셨고

일은 시작은 했는데

결정적으로 제 능력 부족인 영역의 일이 제 잡 듀티 중 하나라는걸 알게 되서

제가 엄청나게 고민하다가

저는 못 하는 일이다, 말씀 드리고 사장님은 후임자로 그 일도 잘 할 수 있는 사람 구하시고.

그렇게 결론이 났어요.

서로 잘 된 일이죠.

 

 

처음 도전해 본 분야에서의 2주는 신선했어요.

긴장도 많이 했지만 제 주관적인 기준으로는 쫌 잘 하기도 했어요ㅎㅎㅎㅎㅎㅎ

 

 

제가 능력자라 그런게 아니고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해야 할 일들 경험도 없는 상태서 그럭 저럭 했다는. 운이 좋았다는.

 

 

사장님은 그 분야에서는 전문가지만

개인 사업은 처음 해 보시는 거고,

저는 저대로 처음 해 보는 일이고.

실무 담당하는 사람은 경험자여야 사장님이 훨 수월하실 건 당연한 이치인데

경험없어도 일을 맡겨 보겠다 하신 결정에 힘 입어

저는 최선을 다하긴 했는데

 

 

결과물이 중요한 밖의 세상은

나의 최선이 다는 아니잖아요.

나는 최선을 한다해도 그게 곧 good enough 는 아니니까.

 

 

물건 하나를 주문하는 일도

사장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거래처를 처음으로 트는 일이라

아는게  없는 거예요.

 

 

저는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니까 사장님이 저한테, 이거 주문해 주세요, 하면

제가 그거 주문해서 물건 받아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해 본 적도 없는 분야고

사실, 그 물건 이름 어떻게 발음하는 건지도 모르겠더군요.

 

 

회사 이름 하나만 가지고 인터넷에서 고객 서비스 전화 번호 찾아서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이 물건 주문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거냐고.

내가 이 물건 이름이나 지금 제대로 발음하고 있는 거냐고. 어떻게 발음 하는 거냐고.

처음 해 보는 일이라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

이해하고 잘 가르쳐 달라,

 

 

했더니,

 

 

그 사람이 엄청나게 친절한 거예요.

 

 

제가 전화 상으로 받은 가격을 기억해서 사장님한테 말씀 드리기는 무리일 것 같다고

팩스로 가격을 보내 줄 수 있겠냐 하니

물론이라고 하면서 정말로 바로 팩스로 보내주고

(고마웠어요)

 

 

제가 팩스로 본 가격을 사장님께서 보시고 당신 회사에 주문을 넣고 싶어 하신다,

주문은 어떻게 넣는 건지 설명을 해 달라,

하고 이메일을 썼더니

 

 

또 친절하게 답이 왔어요.

 

 

그래서 시키는 대로 하고.

 

 

며칠 후에 사장님이 물건은 언제냐 오는 거냐고 물으시길래

제가 지금 알아 보겠습니다 하고

바로 그 사람한테 다시 이 메일.

 

 

주문을 넣긴 넣었는데 내가 제대로 한 건지 모르겠다,

이걸 알아 보려면 내가 어디로 전화나 이메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 주면 고맙겠다.

 

 

 

그 쪽에서 온 답은,

주문 넣는 팩스 번호 주면서 그랬거든요.

뭔가 더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자기네 회사 측 그 쪽 부서에서 저희한테 연락이 올거라고요.

 

 

 

주문한 지 3일 째 였고 아무 연락 없던 상태.

 

 

 

저는 이 메일 보내 면서도 별 기대는 없었어요.

그 사람은 어떻게 주문하는 건지 알려만 주면 되는 부서의 일하는 사람이었고

(정말 자기 회사가 물건을 얼마나 파는지 어쩌는지 세일즈 실적과는 아무 상관없는 부서니까)

자기 할 일 했으니

저더러는 일단 주문 넣었으면 연락 기다려 보라고.

이런 뻔한 답 메일이 올 줄 알았는데

 

 

저더러 주문 넣은 세부 사항을 이메일로 보내 달라고.

자기가 알아 봐 주겠다고.

(감동 받았어요 정말로. 어디다 전화 해 보라는 말 대신

자기가 알아 봐 주겠다는 말)

 

 

그래 가지고 저도 또 이메일을 바로 보냈더니

그 회사 세일즈 파트에서 바로 전화가 오대요.

 

 

제가 주문한 물건은

아마존에서 냄비 하나 사듯이

불경기에 사 주기만 하면 감사한 그런 물건 아니고

파는 쪽에서 이것 저것 확인하고 확실해야 보내주는,

사는 쪽에서 준비할 게 더 많고

팔 것 보다 주문이 더 많은 그런 물건인가 보더라고요.

 

 

그 회사에서 전화가 오고

뭐 뭐 정보를 더 필요 하다고 팩스로 서류 카피를 보내라 하길래

알았다고 하고 전화 끊으려다가

이렇게 하면 최종적으로 저희가 물건 받는 날은 언제가 되겠냐고 물었더니

일주일 플러스 열흘 정도라 하길래

알았다고 했더니

 

 

저 쪽에서 그러는 거예요.

전화 홀드하고 있을테니 그 서류 지금 찾아 보라고.

제가 한숨을 좀 쉬었거든요.

우리 사장님은 지금 이게 하루라도 빨리 필요하다고 하시던데...하면서.

제가 이 쪽으로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원래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건 줄 몰랐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급할 게 없는 사람들인데

여튼 저는 운이 좋아서 처음으로 컨택한 사람이 제 상황을 딱하게 봤는지

자기가 할 일도 아닌데 직접 다른 부서에 전화해서 빨리 처리해 달라고 부탁한 것 같고

(이게 별게 아닌 것 같아도 미국 사회에서는 엄청난 일이라고 저는 혼자 생각합니다)

 

 

그 사람도 연락 받고 저 한테 전화 해서

이거 이거 더 해서 보내라고

그렇게 말하고 끊으면 그만인데

또 뭐가 마음에 걸렸는지 자기가 전화 붙들고 있을 테니 서류 지금 찾아 보라고.

 

 

저는 급한 마음에

손님 만나고 계신 사장실로 뛰쳐 들어가

중요한 서류 한 군데 모아 둔 서류철을 집어 들고 다시 뛰어 나와

나를 위해 홀드하고 있는 이 사람 전화를 다시 받고

서류를 찾으려니 마음이 급해서 뭐가 하나도 제대로 안 보이는 거예요.

 

 

수화기 저 쪽에서 답답해 하는 마음이 느껴지고.

옆에 동료가 아마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한 마디 한 것 같아요.

왜 전화를 붙들고 있냐고 그냥 끊어 버리지.

영어 못하는 사람한테 걸려서 설명하는데 문제가 있냐? 뭐 이런 식.

 

 

 

제 전화 붙들고 있던 분이 말하는 소리를 제가 전화기 급하게 집어 들다 끝 부분 들었어요.

 

 

노노노 쉬 스픽스 잉글리쉬.

나이스 레이디.

아이 워너  헬 프 허.

 

 

아...너무 고마와 가지고...

 

 

저 말은 일단 못 들은 척 하고.

일단 홀드해 줘서 고맙다는 말 부터 하고.

(정말 나이스하게 살아야 겠어요.

이 분한테 제가 나이스하게 한 건 암 것도 없지만 서도.

이것도 정말 너무 고마웠어요)

필요하다는 정보 겨우 겨우 찾아서 말해 주고

저 쪽에서는 일단 서류가 와야 주문이 제대로 들어가는 게 원칙인데

자기가 일단 전화로 제 말 들은 걸로 주문 넣겠다고.

서류 카피는 바로 팩스로 넣어 달라고.

 

 

저 사람이 저 한테 저렇게 배려를 해 줘서

저는 일주일 시간을 벌었어요.

 

 

저 전화 통화 끝내고

손님하고 볼 일 끝내고 나오신 사장님이 물어 보시길래

 

 

 

쉬크한 태도로, 시킨 일 끝내놓는 거야 직원의 당연한 일인데

몰 또 그걸 물어 보시냐는 식으로 엄청 시건방지게

 

 

아 그거요?

월요일 날짜로 배송되고 수요일이면 저희가 받을 거래요.

 

 

 

이렇게 간단하게 대답.

그게 뭐 별 일이었냐는 듯이. 심지어 쫌 귀찮다는 듯이.

후훗~~

미소 지으며 얼굴은 다시 컴퓨터로.

 

 

사장님,

만족 하셔서는,

수고 하셨어요.

 

 

저렇게 2주를 보냈어요.

순간 순간 똥줄이 타는 상황에서도

하라는 일 떨어지면

일단 전화부터 해서

 

 

어디서 전화거는 누구인데

내가 이 일은 처음하는 사람이라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으니

잘 좀 설명해 주면 고맙겠다, 하고 말 시작해서.

 

 

 

전화 거는 곳마다 참 너무 잘 해 주는 거예요.

미국 사회가 냉정하고

하는 일 매일 똑같은 사람들이

메마르고 신경질적이고, 어떤 분야든 그렇겠지만, 그럴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제가 지난 2주 일 하면서

저렇게 말 시작하고 전화 통화 했던 곳에서는

다들 너무나 잘 설명해 주고 친절한 거예요.

 

 

저는 덕분에 사장님한테

처음 하는 일 치고는 그런대로 이런 저런 진도를 나가는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었어요.

 

 

제가 정말 못 하겠다고 고사한 일은

사장님 사업에 정말 중요한 일이고,

사장님은 제가 할 수 있다고 해 보라고 하셨는데

 

 

저는 제 자신을 잘 알지만

주변에서 저를 좀 과대평가 하는 경향이 있어요.

 

 

제 친구한테 이 고민을 말 했더니

그 친구 하는 말이,

너라면 할 수 있겠지, 너가 왜 못 해, 그런데 중요한 일이니까 그것까지 하면 지금받는 것보다  돈을 조금 더 달라고 해야 하지 않겠니?

 

 

그런데 저는요,

돈은,

처음에 받고 일 시작한 거,

그 돈이면 됬는데요,

그 중요한 일을 제가 할 자신이 없었어요.

 

 

 

할 수 있는 일이면 저는 해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하나 해 놓고 나서

그거 잘 했다고 칭찬 한 번 받으면

너무 기분 좋아서 내가 더 미쳐 날뛰며

더 잘 하려고.

저는 그래요.

 

 

제가 잠깐 사무실에 없었을 때

고객이 와서

사장님이 직접 상대하시고,

제가 말씀 드리길,

 

 

저 없을 때 손님 오시면요,

제가 요기다 이 서류 이렇게 해 놨고,

여기 이거 이거 서류 있고요,

 

 

했더니,

 

 

사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네 네.

워낙 일 잘 해 놓으셔서 제가 금방 다 찾았어요.

 

 

 

저 말 듣고 너무 행복해서

그 날 오후 완전 뿌듯한 기분으로.

 

 

 

그런데 제가 자신도 없고 내 자신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가운데

일자리 안 놓치려고, 제 능력을 높이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해 보겠습니다, 한 다음에

그거 망가지면

사장님한테는 엄청난 피해이자 손해인데

그런 상황 닥쳤을 때

저는 그냥 직원일 뿐이므로 제 입장 곤란해 지면

 

 

 

웁쓰, 아 임 쏘리.

 

 

 

하고 2주 노티스 주고 그만두면 그만이거든요.

 

 

지금 당장 일해서 돈 버는거 엄청나게 중요한게 제 현실이지만

저는 저렇게는 못하겠어요.

 

 

 

그런데 왜 제 주변 사람들은

제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 하는지.

 

 

저 물건 주문한 것도

아무 것도 모르지만 제가 불쌍한 척 하고

그게 먹혀서 그 쪽 사람들이 도와줘서 가능했던 거지

제가 뭘 알고 한 게 절대 아니거든요.

 

 

 

이제 또 무슨 직장을 어찌 구하나...

그 생각에 우울했던 주말 보냈는데

 

 

지금은 또 마음이 홀가분 한 것이

뭔가 그냥 앞으로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면서

내가 나로써

내가 나인걸로

앞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신경 쓰면서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면

일이 잘 풀리지 않겠나...이런 생각 드네요.

 

 

잘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