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사장님 왈,

아는 사람이 키우는 개가 새끼를 여덟 마리 낳아서 나눠 줄 사람 찾는다고

저한테 한 마리 원하냐고 물어 보시더라고요.

 

 

시베리안 허스키.

 

 

 

가끔 지나가는 말로 남편한테 강아지 한 마리 키워 볼까? 할 때 마다 남편은 극력 반대.

 

 

저도 지나가는 말로 생각없이 던지는 말이었어서 이 사람이 강아지는 키우고 싶은 마음이 정말 없구나.

정도로 생각해 오다가

 

 

재작년? 제가 한국에서 수술하고 돌아와서

강아지 한 마리 키우고 싶다고 정중하게 의견을 냈더니

남편도 정중하게 반대 의견을 내 놓더군요.

 

 

 

강아지가 그렇게 충동적으로 마음 허전하다고 재미삼아 키우는게 아니라고요.

사람 아기 버금가게 의무감이 필요한게 강아지 키우는 거라고.

우리는 결혼 전에 아이를 키울 그릇이 둘 다 못된 다는 것에 동의를 해서

2세를 안 갖기로 한 사람들인데

아이가 없다고 강아지 한 마리 키워 볼까나...이런 태도로는 강아지 키우면 안되는 거라고

너무나 진지한 반격을..

 

 

 

남편이 고양이들은 키워 봤어요.

 

 

남편이 정색을 하고, 이참에 부인과 이 논의를 확실히 하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한듯이

저한테 말하기를,

 

 

자기 사전에 파양은 없답니다.

어떻게든 데려와서 기르면 기르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서 보살피고

늙어 죽을 때까지 함께 해야 한다고.

허나 그렇게 할 자신이 없으면 시작도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자기는 강아지 키울 자신이 없대요.

부인이 정 원하시면 부인이 강아지 키울 수 있는 역량이 되는지

본인 능력부터 점검해 봐야 한다면서

애완 동물을 전혀 키워 본 적이 없는 부인이니 물고기 부터 시작 하라네요.

 

 

보살피는데 드는 노력, 책임감을 자기가 간단하게 삼단계로 정리하면,

 

 

 

물고기, 고양이, 강아지

 

 

순이라고. 어항 사다 물고기 부터 시작해 보시래요.

물고기 잘 키우겠으면 그 다음 고양이 키워 보시고

고양이도 잘 키워지면

그 때 강아지를 생각해 보자고.

자기랑 함께 버려진 강아지들 있는 쉘터로 가자고.

 

 

태도가 너무나 단호한지라...

 

 

 

물고기 사면 밥주면 되는거지?

 

 

어항 청소 가끔 해주셔야죠.

 

 

어항 청소? 어항도 청소를 해야 돼??? 그거 나더러 하라고?????

 

 

 

 

남편이 그럼 그렇지 하는 태도로 피식 웃으면서,

 

 

 

나의 사랑하는 베이비, 어항 청소하는거 귀찮아서 못해줄 것 같으면

강아지는 정말 정말 못 키우십니다.

 

 

 

노여사한테 얘기 했더니

정말 불같이 화를 내시더이다.

 

 

 

지금 사람 둘이 사는 집도 돼지우리처럼 하고 살면서 거기다 개까지????

볼만 하겠구만.

야!!!!!!!! 너 아파트에서 개 키우는게 그게 얼마나 개한테 못할 짓인지 알아?????????

쪼그맣고 불쌍한게 아침에 사람 다 나가 버리면

하루 종일 얼마나 외로운데 너 잠깐 좋자고 그 짓을 하냐???

 

 

 

셋째 성한테 얘기를 했더니

찬성도 반대도 안해요.

그저 얘가 왜 이렇게 심각하게 강아지를 키우겠다고 하나...

그런 제 마음 상태를 안타까워 하는 눈치.

 

 

 

하려거든 물고기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남편 때문에

강아지 키우겠다고 부리던 성화는 접었어요.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솔직히 제가 개를 많이 무서워도 합니다.

길가다가 조금이라도 덩치있는 개를 보면 무서워서 벌벌 떨고

치와와도 피해가는 저라....

이래저래 현실성 없습니다.

 

 

 

사장님한테 허스키 얘기를 듣고

남편 친구가 생각났어요.

밴드에서 베이스기타 치고 저희 시댁 근처에 사는 친구.

 

 

혼자 산 속 집에서 사는 독거중년.

 

 

원래 키우던 고양이 한 마리,

남한테서 떠 맡은 거 두 마리, 합이 세 마리.

어항에 물고기도 있고,

거기다 덩치는 큰데 아주 아주 순했던 래보라도? 그런 비슷한 이름의 종자가 있나요?

암튼 아주 순하고 착했어요.

이름은 매기였어요.

 

 

 

고양이 중 한 놈이 성질이 아주 안 좋은 놈이 하나 있는데

덩치 큰 개가 그 고양이 녀석한테 맨날 당해서

성질 나쁜 고양이를 밤이면 격리시켜 놓곤 했다는데

얼척없는 사고를 당해서 올 봄에 매기가 죽었어요.

 

 

 

그 친구 집 처음 갔을 때

남편이, 우리 부인이 개를 무서워해서, 과거에 약간 사고를 당하고 트라우마가 있어서,

이런 말 해 가지고

매기가 집 안에서 쫒겨날 뻔 했는데

보는 순간 저도 그 개가 엄청 순하다는거 알아서

제가 괜찮다고 했었어요.

그냥 놔 두라고.

 

 

늦은 여름에 저 집을 갔을 때

방문객이 남편 다른 친구들도 두 명 있었고

밖에서 맥주 하나씩 들고 얘기 나누고 있었는데

매기가 제 앞으로 와서 앉았어요.

제가 슬쩍 슬쩍 대충 대충 쓰다 듬어 주고.

 

 

 

사람이고 동물이고 자기 좋아하는 사람 다 안다고 말들 하지만,

 

 

일어나서 잠깐 슬슬 돌아 다니다

다시 사람들 곁으로 왔을 때는 제 앞에 딱 자리잡고 앉는 모습.

내가 뭘 그렇게 특출나게 저를 이뻐한 것도 아닌데 참...

몇 번 쓰다듬어 준 게 다예요.

어찌 이리 순하냐...속으로 감탄하면서.

나도 너처럼 순하게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다..항상 이렇게 뾰족하게 각 세우고 살지 않고.

쓰다 듬어 주는게 기분이 좋아도 그렇지 어쩜 이렇게 순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냐..

그래도 명색이 개인데

저 성질 나쁜 고양이 암상 떠는 것도 맨날 참고 도망다니고..

어쩜 이리 순해 어쩜 이리 이뻐..

 

 

 

개 주인 되는 양반은

매기가 이쁜아짐이 저 이뻐하는거 알아서 그러는 거라고,

참 착한 개라고 흐뭇해 하고.

 

 

 

한 번 짖지도 않고

자기보다 몸집이 열 배쯤은 적은 고양이한테 시달리고 살던  

착한 매기가

올 초에 사고로 죽었다는 소리 들으니 저도 마음이 슬펐죠.

 

 

 

나도 마음이 이런데

매기 아버지 마음은 어떠려나.

많이 슬펐습니다.

 

 

 

허스키 얘기에 저는 못 키운다고 거절하고 나서

가만 생각해 보니까

저 아저씨가 키우면 어떨까, 생각이 미치더군요.

 

 

남편한테

그 친구한테 전화해서 생각 있냐고 물어 보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하고는 벌써 일주일.

 

 

 

좀 전에 전화 걸었어요.

 

 

 

집에 지금 손님이 와서 길게는 얘기 못 한다고 했대요.

생각해 보고 알려 주겠다고.

 

 

 

그 강아지들도 지금쯤 다 어디론가 제 살 집들 찾아 갔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제가 사장님한테 말은 해 놓았어요.

저는 못 키우지만 시골 집에, 마음껏 뛰어 다니며 살 수 있는 집에 데려다 줄 곳 얘기 중이라고.

 

 

 

강아지는 태어난 지 한 달이고,

저희가 내달 초에 시골 갈 계획이 있거든요.

데려오면 한 달 정도 저희 집에서.

야호~~~~~~~~~~~~

 

 

 

 

남편 친구가 생각 없다고 할 수도 있고

키우고 싶다 해도

강아지들 이미 다 어디론가 갔을 수도 있는데

인연이 된다면

한 마리 데려와서 저희 집에서 한 달 보살피다

마음 착하고 성실한 독거중년한테 새 친구와 잘 지내 보라고 하고 싶어요.

 

 

 

 

인연이라는게 사람 힘으로 어찌 한다고 되는게 아니니까

성사가 안돼도 할 수 없는 일이고.

 

 

 

그냥 저 혼자 중간에서 지금 막 흥분이 돼서 좋아하고 있는 중.

 

 

 

20년 전에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오빠가 어디선가 막 태어난 강아지를 데리고 왔더랬어요.

세파트.

 

 

 

노여사가 노발대발 하셔서는

세파트를 어디 아파트에서 키우냐고.

태어난 지 일주일 된 녀석이어서

겉 폼새는 그냥 저냥 일반 강아지랑 별 차이 없는.

강아지 종류에 무식한 제 눈엔 그랬어요.

너무 너무 귀엽고 이쁘고 앙증맞고,

그러나 힘은 장사더구만요.

 

 

오빠 항렬이, 받들 '봉'자

'봉'자 들어가서 뭐 멋있는 이름이 나올까~~~요.

아 불쌍한 우리 오빠....

 

 

설상가상으로 나머지 한 글자도 '봉'자랑 합체해서 완전 깨는.

아.....진짜 불쌍한 우리 오빠....

 

 

 

내가 우리 오빠였으면 지금쯤 법원에 개명 신청하고도 남았을 텐데,

어쨌든 그 당시 우리 여동생들은

그 강아지가 사내 놈이니

항렬을 존중하여 이름을 짓자, 하여 '봉식'이라 명명 하였는데

 

 

저희 집에서 채 일주일을 못 살고

다른 집으로 갔어요.

노여사 말씀대로 봉식이한테 더 나은 환경으로.

 

 

 

20년 전에 잠깐 우리 집에 있었던 봉식이는 지금쯤은 이 세상 봉식이가 아닐 수도 있겠네요.

 

 

허스키 강아지가 우리 집에 한 달이라도 온다면

남편 친구한테는 알아서 자기 친구 이름 지어주라 하고

저는 임시 한국 이름 지어 주려고요.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는 이쁜아짐.

 

 

 

인연이 돼서, 그래서 온다면

제가 지구력이 없는 인간이라 평생은 책임 못져도

한 달 정도는 잘 돌 봐 줄 자신이 있는데 말이죠.

 

 

 

계속 강아지 이름 궁리 중.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