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내 편이 아닌데 마냥 게으른 이 인생.

 

지난 두어 달 간, 집중적으로 '나라는 사람의 문제'에 관해 깊게 고민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시작은 긍정적으로 하고 싶어서

주변인들한테 '나의 장점에 관해 얘기해 달라'는 요구부터.

짜증이 났을 법도 한데 대부분 친절하게 한 가지씩 얘기는 해주더군요.

 

 

후환이 두려워서 그냥 옛다 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던진 사람도 있으려나..

여하튼, 좋은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 본론으로 들어가서

내가, 이렇게나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왜 어찌 사는 모양이 이런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저의 치명적인 단점은 저 모든 장점을 꿰는 것이 귀찮아

행동은 하지 않고 생각만 하는 이 게으름.

게으름. 이라는 결론에 도달.

 

 

문제의 핵심은 비교적 빨리 파악이 됬는데

문제의 해결이 안된다는데 진정한 문제가 있더군요.

 

 

내가 지금 이 상황에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고

이게 안되면 저렇게 해 보고

많이 이것 저것 움직여야 하는데

과거에도 생각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허송 세월이 몇 년에

핑계 거리는 잘도 찾아 내서 합리화 하는데는 아주 일가견이 있고.

말 재주는 있어 가지고 내가 잘 안되고 있는 탓을 남 한테 덮어 씌우기도 잘 하고.

(친정 식구들이나 남편한테)

 

 

있는 그대로 내 보이는 건 아무래도 창피한 건 알아 가지고

요리조리 포장도 잘 하고.

(남들한테는 잘 하는 것만 말하고 잘못하는 건 숨기고)

 

 

여기서 또 진리가.

 

 

남은 속여도 내 자신은 못 속인다는 거.

 

 

내 자신까지 속이면서 살다 보니 맨날 그 날이 그 날.

발전은 고사하고 사람이 점점 못나지고 있는 거예요.

그걸 계속 합리화 하느라고 이건 이래서 이렇고 저건 저래서 그렇고

내 잘못은 없고 상황은 항상 꼬이기만 하고

재수 좋은 과부는 넘어져도 가지 밭에 넘어지고

재수 없는 년은 호박 밭에 나뒹군다고

나는 하는 것 마다 되는 일이 없고.

 

 

주변을 쫘악 조용하게 둘러 보니

정말로 나처럼 게으르게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군요.

친정 식구들, 연로하신 노 여사 부터

나의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모두 다 엄청나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삽니다.

바쁜 만큼 돈이 안 들어와서 그렇지.

 

 

친구들,

다들 열심히 살아요.

아이가 하나인 집도 있고 둘인 집도 있고 저처럼 없는 집도 있고

다들 각자 상황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삽니다.

반 나절 학교 가 있는 동안 일하는 친구,

둘 낳고 풀타임으로 일하는 친구,

아이 키우면서 집에서 재택 근무하는 친구,

학교 다니면서 일하는 친구.

 

 

 

다들 저보다 바쁘게 사는 사람들인데

제일 한가한 저를 집 밖으로 불러내는데 애들 먹었습니다.

제가 하도 어디 한 번 행차하는데 비싸게 굴어서.

지난 2년 간은 몸 아프다고 사방 팔방에 본격적으로 앵앵앵 징징징 거렸더니

다들 만나자는 약속 한 번 잡을 때 제 스케줄 부터 물어 보고 제 컨디션에 의거해서 시간 잡고.

(이것도 곰곰히 생각해 보니 외출을 싫어하는 나의 게으름 인 것 같아요)

 

 

 

저는 어디가서 남편 흉을 심각하게 보지는 않는 편이고

(친정 식구들한테는 나보다 더 속상할 테니까 안하게 되고

친구들한테는 결국은 내 얼굴에 침 뱉기니까 안하게 되고)

푼수라고 흉 잡힐지라도 되도록이면 남편 좋은 얘기만 떠드는 쪽인데

나의 속을 뒤집는 남편의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제가 정말로 남편한테 고마워하는 거 한 가지는

맨날 아프다는 소리 달고 사는 사람한테 짜증한 번 없이 다 받아 주는 거.

 

 

 

내가 저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지겨워서 나가 떨어 졌을텐데

그거 하나는 대단하고 참 고맙게 생각해요.

 

 

 

작년에...몇 년 만에 일을 다시 시작하고

내 힘으로 생활비를 버는 가장이 된 뿌듯함에

마음은 즐겁고 정신 건강도 양호했는데

몸은 많이 힘들었는지, 살이 많이 빠졌었어요.

평소에 입던 옷들이 너무 헐렁지고

평생 입어 본 적도 없는 싸이즈 '2' 청바지를,

셋째 성이 세일을 크게 하길래 일단 사와 봤다고 하면서 들어가나 입어나 보라고 주길래 입어 봤더니

주먹 하나가 앞에 들어갈 정도였고

 

 

하루는, 알람 소리 듣고 일어 나는데...많이 힘들더군요.

그래도 평소 하던 대로 꾸역 꾸역 일어 나서

화장실, 모닝 쉬야 하고 일어 나서 샤워로 진도 나가야 하는데

변기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식은 땀이 마구 나면서

놀라 가지고 방에 있는 남편을 불러야 겠다...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입도 안 떨어지고.

그대로 욕실 바닥에 고꾸라 졌어요.

쉬야 하고 속옷이랑 잠옷 바지도 못 추키고 그대로 욕실 바닥에.

아이고 이러다 정신 잃고 죽으면 안되고 빨리 남편 불러서 응급실로 가던지 해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아니고

어쩌나...내가 빤쓰도 못 추키고 이게 뭐야...

이런 생각을 가물 가물.

 

 

정신이 들길래 라디오 소리 귀 기울여 보니 딱 15분 그렇게 기절을 했었더군요.

식은 땀으로 온 몸이 젖어 있고.

샤워 하고 출근 했습니다. 지각도 안하고.

 

 

 

그 날 제가 느낀 건

저런 몸으로 출근을 해도 하루가 어찌 어찌 걔겨 지더라는 것.

몸이 아파도 먹고 사는 문제가 절실하면

정신력으로 그게 버텨 지는 거구나. 괴롭긴 해도.

나의 엄마는 아마도 이런 날들이 수없이 많았으리라.

새끼들 때문에 정신력으로 버티는 날들이..

 

 

저 날의 일은

언니들한테는 말 안하고

(알면 속이 찢어질 만큼 아프고 도대체 니 남편은 집에서 놀면서 그게 뭐하는 짓거리냐 열불이 날 테니까)

남편한테도 말 안하고

(말 했다가 내가 원하는 만큼의 가슴아픈 모습을 안 보여주면 내가 너무 열불이 날 것 같아서)

 

 

 

그렇게 지나갔어요.

 

 

 

저 직장을 그만 두고

딱 한 달 만에 15파운드까지 빠졌었던 체중은 정상으로 돌아 왔고

남편한테는 얼마 간의 고정 수입이 생겼지만 여전히 가정 경제는 심각한 상태고

그 때 제가 마침 일을 또 잡았고

그래서 열심히 즐겁게 일 하는데

뜬금없이 빼도 박도 못하게 목돈 들어갈 일이 생겨 버리고

어쨌든 그건 지난 주에 제가 한 달간 번 돈으로 무사히 막았고.

 

 

 

요즘은 몸도 많이 건강해 져서

일하는 것,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저녁에 일찍 곯아 떨어 지지만 잠 충분히 자니까 견딜만 해요.

무엇보다 먹는 것, 정말 열심히 잘 챙겨 먹고 삽니다.

 

 

남편도

밴드 생활 잠시 휴식을 가지겠다고 하네요.

드러머 씨가 속 썩이는 것도 한 부분이지만

앞으로 당분간은 돈 버는데 총력을 쏟겠다고.

 

 

저도 용기를 내서

기절 했다가도 벌떡 일어 나서 출근하니 하루가 때워 지던데

하다가 도저히 체력이 안 받쳐줘서 포기 하더라도

하고 싶었던 거 더 늦기 전에 도전을 해 봐야 겠다고 결심을 하고

정말 귀찮은 일 하나 벌였어요.

 

 

내가 정말로 할 수가 없는 것이냐...

아니면 게을러서 안 하는 것이냐...

 

 

 

생각을 곰곰히 해 봤더니

정말로 할 수가 없는 건지는 일단 해 보고  최선을 다 해 봐야 알 수 있는 거고

못 할 것 같아서 안 하는 것은

게으름, 이다. 로 결론을.

 

 

 

게으른 것만 어떻게 하면

나는 정말 지금보다 훨씬 더 괜찮은 앞 날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내가 나를 속일 필요 없는

그런 하루를 앞으로는 살고 싶어요.

 

 

나 오늘 하루 열심히 자알~ 살았다, 그런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고 싶어요.

내일은  어떠려나...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직장 갖고 싶어요.

내 적성에도 맞는.

그래서 요즘 영어 공부 중입니다.

미국에서 18년을 살았는데,

게으르게 18년을 살았더니만 지금 이 모양.

이번 시험 결과가 안 좋으면 내년에 또 한 번 하고.

내년에도 안 좋으면 후년에도 또 하고.

 

 

결과 좋으면,

소 한 마리 때려 잡든가

떡 맞춰서 온 동네 돌리든가

칼럼에 자랑질을 듣는 사람 토가 쏠리도록 거하게 하든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고

긴 긴 뉴욕의 겨울은 곧 올테고

그래도 힘내서 살아 봐야 겠어요.  힘내서 또 한 번의 이 겨울도 버텨 봐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