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은 어제 였지만, 언니들 시간이 내일이 좋겠다 해서 내일 저희 집으로 저녁 먹으로 오기로 했어요.
하루에 다하면 힘들 것 같아서
오늘 반, 내일 반. 이렇게 나눠서 하려고 오늘 시작.


어제 밤에 신랑이랑 손잡고 우유사러 동네 수퍼로 밤 마실 나가서는
잠깐 서서 달님한테 소원도 빌고.
신랑은 뭐라 빌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신랑한테 뭐라고 빌었는지 얘기 안해주긴 했지만 ㅎㅎ)
달님한테 눈 떼고 저한테로 눈 돌리면서
사랑한다, 고 하길래 저도 그렇다고 하고 마무리 했네요.


집에 들어 와서 고사리랑 취나물 미지근한 물에,
도라지는 찬물에 담가야 쓴 맛이 빠진다 해서 찬물에. 요렇게 세 가지 담가 놓고 잤어요.
오늘은 일어나자 마자 눈꼽만 떼고 응가도 하기 전에 준비 시작해서요,
심지어 커피도, 큰 냄비에 물부텀 올린 다음에 내렸음.


고사리 삶아서 찬물에 담고,
그 다음 취나물 삶고.
고사리 건져서 국간장, 고추가루, 파, 마늘, 마지막에 깨소금, 들기름. 해서 볶아 놓고.
지금 취나물은 아직 찬물에 담겨 있어요. 취나물은 한 시간 정도는 담가 놔야 쓴 물이 빠진다고 해서.
냄비에는 고구마순 삶을 물이 끓고 있고요.


고사리는 양념들 넣고 볶다 막판에 들기름 쪼옥 치니, 맛있는 냄새 일시에 화악~~
신랑한테 손가락으로 집어서 한 입 먹여주니,
아 맛있다 아 맛있다~~


아하하!
그래서 글라스락에 고사리 옮겨 담고,


이야~~ 하나는 끝냈다~~ 하니까 그럼 앞으로 몇 개 더해야 하냬요.


음..원 다운 에잇 투 고~!


했더니, 오마이 갓 하면서 고개 절레절레 흔들면서 방으로 들어갑디다.


이번에 한국 마켓에서 신문 광고 나온거에 보니, 대보름 나물 반찬이 정석이 아홉 가지라는군요.
처음 알았어요.
이번 보름을 맞이하여 오랜 만에 큰 맘 먹고 나물 반찬 좀 할란다 하고 셋째 성한테 회사로 전화했을 때,
점심 먹고 졸다가 전화 받은 셋째 성 첫 마디가,


동생아...고맙다...


그러면서 힘드니까 딱 세 가지만 하라는데, 저는 달랑 나물 세 개 해놓고 언니들 와서 밥 먹으라고 못합니다.


알잖아..난 비빔밥 혼자 해 먹어도 최소 다섯 가지는 있어야 되는거.


또 저더러 입이 고급이라고 뭐라 하대요.
아홉 가지 다 할 수 있을 지는 저도 이 시점에서는 그냥 희망 사항이고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 보려고 음식을 이틀에 걸쳐 하기로 했잖아요?
일단 오늘의 목표는,

고사리, 취나물, 고구마순, 도라지, 고춧잎 까지 고요.

내일 할 것은

시금치, 숙주, 무, 오이요. 그리고 국 하나 끓이려고요.

이렇게 하면 아홉 가지 되죠?
시래기도 있는데...요거 된장에 조린걸 셋째 성이 많이 좋아하지만, 이번엔 나물처럼 말고 국으로 끓이려고요.
시래기 된장국. 캬캬~~~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일단 시작하면 하나 하나 되기는 되거든요.
거기다, 미리 불려서 삶아서 볶는 나물 삼총사인 고사리, 취나물, 고구마순.
저거 삼총사가 제일로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라 저것들 부터 일단 해 놓으면
나머지는 외려 수월한 기분으로 계속 가게되는 것 같아요.


아 그런데...이번에 말린 호박도 처음 사봤는데 저걸 빠트렸네? 저것도 해야 하나??? 그럼 열 갠데? 우짜죠?


언니들 와서 저녁 먹는다니까, 신랑이 청소해야 한다고 해서
주말에는 신랑이 쓸고 걸레질하고 그거는 했는데
제가 냉장고 정리도 해야 하고,
그리고 이참에 찬장 정리도 좀 해야겠다 하고는 제가 찬장을 다 휘집어 놓고.
찬장 정리는 남편을 시킬 수가 없는게, 다 제가 쓰는 것들이니 쓸 사람이 해야 하잖아요.
바닥에 주루룩 늘어 놓고는, 그러고 나니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머리 속이 하얘져서
3일을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 살살 피해서 냉장고로 진입했다 빠져 나오는 생활을 하다
오늘 다시 고대로 집어 쳐 넣어 버렸어요.


밥 해 먹자...하면
뭐부터 해야 할지, 이거하는 동안 저거 준비하고,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순서랑 동선이 머리 속에 그림이 쫘악 그려지는데
청소를 하자고 하면 공황 상태가 되버려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슬퍼지고.


왜 청소란, 바닥 쓸고 걸레질이 전부일 수가 없는건지,
이 현실이 참으로 암담해서...


어쨌든 휘집은 물건 며칠 동안 쳐다 보면서 저걸 어떻게 정리를 해야 나도 찬장에 있는 것들이 한 눈에 보일까
한숨을 내리 쉬다가 재능도 없는 일에 뾰족한 수 내 보겠다고 머리 쓰는거 싫어서
그냥 오늘 아침 도로 다 쑤셔 박으니까
어쨌든 지금 이 순간 제 눈에는 안 보여서 속이 편해요.



평소에 저는 저의 행복 지수를
1-10 스케일로 했을 때, 9이상. 으로 평가하고 사는 사람이거든요.
신랑이 직장 생활할 때까지 그저 최고치가 9 정도 였는데
아이러니하게 작년부터 지금까지 9이상으로 올랐어요.
요건 어찌되서 이러한지 제가 다음 번에 자세히 얘기해 드릴께요.


그래도 어쨌든,
애써서 끌어 올리던 컨디션이 어느 날 갑자기 바닥을 치는 날이 지금도 있기는 있어요.
어쩔 땐 기분이 확 가라 앉아서 어쩔 줄 모르겠을 때도 있고
문득 불안해 질 때도 있고
갑자기 울고 싶어질 때도 있고


그 기분에는 딱 꼬집어 말 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고.


작년에 한국에 다녀온 이후로 새로 생긴 버릇이 저런 기분일 때 요리에 몰입하는 것.
정신 수양하느라 배추 김치 담고, 동치미 담고, 섞박지 담고, 장아찌 담고.
인터넷 보고 새로운 것들 찾아서 신랑 타이 닭요리도 해 먹이고, 베트남식 폭찹도 해먹이고
후라이드 치킨 해먹이고, 핫윙도 해먹이고,
단무지 담가서 김밥 열 줄 말아서 셋째 성 다섯 줄, 우리 다섯 줄 나눠 먹고.


울화를 삮히는 방법으로는 저게 참 좋더군요. 저한테는요.
화 낼 기운을 밥 하는데 쏟으면, 일단 결과물이 있어서 좋고요.
화는 내고 나면 내 기운 빠지고 그리고 어쩔 땐 기분이 외려 더 나빠지기만 할 때도 있는데
나중 방법은 '밥' 이라는게 생기니까.


단, 요리하는게 취미가 아닌 사람에게는 먹히지 않는 방법이겠고,
외려 더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을테니
식비가 많이 든다는 것도 단점이 될 수 있겠네요.


청소를 하면서도 정신 수양이 되면
우리집이 파리가 미끌어지도록 반짝 반짝 할텐데 이점이 아쉬워요.


이번에 오늘, 내일 이렇게 몰아서 나물 반찬 해대는 것은
정신 수양 하느라 이런 것 아니고
아주 정상적으로 '명절 치르는 기분으로 잔치 음식 준비' 하는 것이어요.


지난 달에 둘째 언니 생일이 있었는데, 왜 그렇게 둘째 언니 생일은 해마다 까먹는지...
순해 빠지고 착해 빠져서 자랄 때도 맨날 위 아래 형제들한테 치이면서도 화 한 번을 안내고
엄마 미국오신 다음에 나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
직장 다니면서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도시락 싸준 저한테는 엄마같은 언니인데 말이죠.


동생들이 자기보다 공부 잘 한다고 항상 자랑스러워 하고
미국에 와서는, 동생들은 여기서 공부해서 자기보다 영어 잘 한다고 그게 또 자랑이었고
그래서 오만 군데서 영어가 좀 안된다고 이것 저것 물어보는 사람들 일거리 가져다 저한테 부탁하고,
저는 한 두번 남의 일 해주고 뒤에서 욕 하는 사람들 경험한 뒤로는 딱 잘라서 안하는 편인데
(지금도 절대 이것저것 물어 보는거 저는 대답 안해요.
이러 이러하다, 그러니 이렇게 하라는 내용이다, 라고 편지 읽고 실컷 설명해 줘도
자기가 엉뚱한 짓 해놓고는 나중에 문제 생기니 제가 그렇게 말 안 했다고,
이런 소리 하는거 듣고 뚜껑 열린 다음부터 저는 절대 남의 일 안 끼어듭니다)
오지랖 넓게 그러고 산다고 맨날 싸가지 없이 언니 타박하고.


그렇게 사람들한테 당하고도 여직 그러고 싶냐?
바보짓 하면 누가 상주냐?


저는 언니한테 저렇게 싸가지 없이 막 해대거든요.
그래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저한테 면전에서 구박은 자기가 당하고
어쨌든 물어보고 대답듣고 그러고 그 사람한테 가서 대답해주고.


그래도 둘째 언니는 저렇게 살기 때문에, 실망스러운 일도 간간이 경험을 하지만
대체적으로 주변에 좋은 사람들 많더이다.
많이들 서로 도와주고 챙겨주고.
언니 언니, 하면서 따르는 사람들도 많고요.
얘기 들어보면 그 사람들이 언니한테 참 잘하고 그래요.


셋째 성이랑 저랑 둘째 언니를


오지랖의 여왕, 인맥의 여왕, 미국 대통령보다 바쁜 사람,


등등으로 칭합니다.


둘째 언니 생일 기억하는건  왜 이렇게 매번 블랙홀인지 참 알 수가 없어요.
내가 아무리 날짜 기억하는게 쥐약인 사람이라
첫번째 결혼기념일도 까먹고 친구랑 저녁 약속 잡았던 인간이라 해도
혼신의 힘을 다해 노여사 생신까지는 어찌어찌 기억하는데 둘째 언니 생일은 정말 해마다 이러네요.
생일 상 차려 주려고 메뉴까지 다 생각해 놨었구만...


그래서 이번은
대보름 겸, 언니 생일 상 못 차려준 것 만회하는 겸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부엌 일 하면서 왔다 갔다 하면서 이 글 썼는데
지금 이 시점에
고사리, 취나물, 고구마순, 도라지 까지 끝냈어요. 아하하!
고춧잎은 아직 불리는 중인데 이건 오늘 마저 해도 되고 하기 싫음 내일 해도 되고.
요거 올리고는 맥주 한 잔 할래요.
오늘 부엌 일 열심히 했으니까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저녁은 인터넷 하고 놀래요.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