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나이에 미국에 오자마자
ESL 하면서 사귄 친구 3인방. 저 포함.
동갑나기 친구 3인방이 있는데, 자주는 못 만나고 딱 일 년에 두 번.
더 자주 보려고 해도, 이게 이렇고 저게 저렇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 보면
시간 맞춰서 정작 보는건 일년에 두 번.
그렇다고 평상시에 전화를 서로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좀 특이해요.

일단 만나면, 지난 번 만났던게 반 년 전이라는 건 아무도 의식 못하고
마치 어제 만났다 오늘 만났던 것처럼 놀다가 오기는 하고.
말로는 우리 좀 자주 봐야 하는거 아니냐? 해도 또 뒤돌면 서로 생활이 바빠서
도루묵 되고요.

저는 좀 뻔뻔하고 못되고 지랄스런 성격이 되놔서 사실 저를 오랫동안 참아주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좀 겪다 보면, 아 쟤는 왜 저래. 좀 밥 맛이네. 쟤는 너무 지가 잘난줄 알아.
이런 저런 수순을 밟아서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요.

셋째 성은 지난 해 파리 여행 이후로 저에게 하는 말,

내가 동생이니까 참았지.
그 때 너 마리 지구 가서 배고프다고 성질 부릴 때 발길로 한 방 시원하게 걷어 차고 싶은거 억지로 참았다.
도대체 니 옆에서 아직도 버티는 사람들은 얼마만한 인내심을 가지고 있는 거지?

저도 인생의 많은 부분을
땡깡이 살 길이다, 하고 배째라 하고 살아온 부분이 너무 길었다는거.

난 좀 싸가지가 없지만,
그래도 난 매력적인 부분이 있어서,
이런 나도 좋다고 하면 댁들이 붙어 있는거구~

하는 태도로
너무 오래 살았어요.


난 옆에 사람들이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난 혼자서도 살 수 있고
난 아쉬운거 없으니깐~


그렇지만 인생은 사실 아쉬움의 연속인데.
누구나 다 그렇잖아요.
좀 더 사랑받고 싶고 좀 더 인기있고 싶고 좀 더 행복하고 싶은거.

안 아쉬운 척 해봐야 그건 척일 뿐이고
남편도 변함없이 혹은 날이 갈수록 더, 나를 사랑해 줬으면 하고,
친정 식구들이 나를 변함없이 애정을 가져 줬으면 하고,
친구들 역시 내가 원하면 나를 만나 줬으면 하고.

보통 때 나 잘났어요 하고 가오잡는거,
진짜 외로워 보면 다 깨갱할 짓거리인데..

나는 항상
내가 원하면, 나를 상대해 줄 사람이 널려 있다는 이런 믿음으로
평소에 나를 잘 해 주는 사람들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왔다는거.
돈 가지고 잘난척 하는 사람보다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진정한 마음을 가지고 하는 저런 잘난척은 정말로
몇 배 왕재수라는거.


저 ESL친구들 두 명은, 저 포함해서 셋이 성격이 다 극과 극이예요.
그래서 셋이 균형을 맞추며 지금 껏 유지해 온 듯 한데.
두 명 다 이 미씨 회원이긴 하지만,
저 빼고 둘 다 직장 생활하는 아이 엄마고요.

둘이 미씨를 이용하는 패턴은 확 틀려요.

한 명은 여행 후기, 여미 방, 이런거. 집 꾸미고 밥 잘 해먹고 이런거에 관심 많고
한 명은 속풀이 방 읽기.
둘 다 말로는 제가 칼럼 시작했다니 읽고 읽다고 말은 하는데
제가 보기엔 진짜로 읽는 것 같진 않아요.
저 무안할까봐 그냥 하는 소리던가
혹은 안 읽고 있다고 하면 제가 지랄할까봐,
그냥 읽고 있다고 말만 저렇게 하는거 같음.


그리하여 우리 친구 셋 중에
유일하게 집 장만해서 사는 그 친구 집으로 가서 일 년에 두 번 만나는게 패턴으로 굳어진 몇 년 째,
가서 그저 해놓은 음식 감탄하면서 미친듯이 먹고 남은거 싸오고
싸줄거 없다 해도 냉장고 뒤져서 달라해서 강탈하다 시피 가져오고.
이 짓거리 몇 년 하던 차에,


작년 봄에 회동하니,
멤버 중 다른 친구가 하는 말, 자기가 고기 양념해가야 한다고.
그래서 제가 묻기를,
왜 니가 고기 양념을 해 가? 우리가 거기 가는데?

했더니,
아니 걔, 가명으로 갑이라고 합시다, 갑이 그러는데 해 와 줬으면 하더라고.

그래서 전 깜짝 놀란게,
제 친구 갑이 워낙 솜씨도 좋고 손님 치르는거 즐거워 해서 우리를 맨날 자기 집으로 부르는 줄 알았어요.


헉! 갑이 그래???


그런 다음에 제가 전화 걸어서,
아니 야, 너 누가 음식 해오기 바랬으면 나한테 먼저 얘길 해야지.
을은 걔도 직장 생활하고 걔도 바쁜데 음식을 해가면 내가 해가는게 맞지.
너 우리 너네 집에 가는거 그 동안 부담스러웠던거야???


그랬더니, 갑의 말.
다른 건 아무 것도 없고, 너네들 우리 집 올 때 마다 그렇게 주는 것 마다 맛 있다고
허겁지겁 먹는거 보는거 자기도 즐겁고 기쁘긴 한데,
자기도 가끔은 남이 해주는 걸 먹고 싶다고.
그런데 너한테는 그 말을 하기가 어려워서 을 한테 한 거라고.

흐미....


제가 미안하다, 반성하겠다. 갑자기 안하던 짓으로 친구한테 사죄를 하고.
내가 그럼 뭐 하나 해갈께 이 번에.
뭐 먹고 싶어? 했더니
골뱅이 무침 할 수 있겠냐고.
접 때 너 블로그에서 골뱅이 무침한 사진 보고 자기가 먹고 싶었다고.

오케이.
장난이지. 알았어. 가서 즉석에서 무쳐주마.


그 동안,
저 친구는 번듯한 집도 있고,
나보다 솜씨가 좋아서 요리도 훨씬 잘하고,
뭐든지 똑 소리 나게 잘하는 친구니까 그러려니.
가서 대접받고 그저 게걸스럽게 먹고나 오고 남의 집 냉장고 들쑤셔서 음식 이것저것 챙겨오고.
이게 내 딴엔 귀여운 짓거리라고 생각해 왔는데...


내가 뭘 한다고 해봐야 쟤보다 더 맛있게 할리는 없고.
그저 이렇게 생각해 왔는데.
맛이 있고 없고, 간이 좀 안 맞고 어쩌고를 떠나
우리는 어쨌든 누군가 차려주는 밥상을 그리워하는 아줌마들이었던 것을..


그러다 제가 한국 가서 아픈거 처리하면서
병원에 있는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죠.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남편,
엄마,
셋째 성,
일가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이 날 사랑하니까 이만큼 하는 거지.
나 역시 그들한테 사랑 받고 있음을 감사해야 하고
나도 그만큼 사랑을 표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수술 받고 와서
갑이라는 친구한테 전화를 해서, 그간 정말 많이 미안했다고 했어요.

항상 나보다 잘 되고,
내가 보기엔 너는 항상 공식대로 잘 살아가는 것 처럼 보이고,
아마 내가 그런 너를 보면서
너는 다 가진 사람이라고 질투를 했나 보다. 하고요.

그랬더니 그 친구 왈,

이제라도 아네?
맨날 니네가 (저랑 다른 친구 을) 내가 무슨 얘기만 하면
나는 마치 어려운거 하나 없이 시댁 도움, 친정 엄마 도움으로 다 산다는 듯이 말해서
나도 얼마다 말문이 막혔는데..
내가 내 성격 때문에 어려운 얘기를 가장 친한 친구들한테도 못 한다 뿐인데
니네 정말 그거 모르더라.


그니깐...
앓는 소리는 해 버릇 해야 한다니깐.
어쨋든 니 잘못이 맞아.
앓는 소리 한 번 안하고 살았으니까.
나 봐라. 얼마나 주위에서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냐.


이렇게 끝까지 친구가 잘못한 거라고 덮어 씌우고.


친구 왈,
마음이 어려울 때 어렵다는 소리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고.


그렇죠.
울 셋째 성만 봐도 그렇고.
내가 어려운 상황, 힘든거, 그런거 남한테 왜 떠드냐고.
결국은 내가 해결해야 할 몫인데.
나 형편 안좋은 소리 해봐야 결국은 남이 나를 무시하는 걸로 되돌아 오는데.


제 친구 갑은,
자기도 셋째 성 마음 이해한다고
자존심이 쎈 사람은 정말 누군가한테 얘기를 하고 싶어도
성격 상 못할 때가 많다고.
혹은 어쩌다 깜빡해서 했다 하더라도,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고요.



친구한테, 정말 미안하다고 했어요.
많은 세월 너를 부러워 하고 너를 질투하고 그렇게 사느라
널 모르는 사람한테까지 너 얘기하면서 내가 너 흉보듯 얘기하고.

친구가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야, 사실 니가 날 질투한다는 건 말이 안돼지.
그 지난 세월 동안 난 너를 얼마나 부러워 했는데.
그래도...용서하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다른 친구 을은,
야 야, 다른 건 다 됬고, 너 김치 담가 먹는다며...김치 맛 있게 되면 나한테 연락 좀 하고.


그 돈 주고 왜 집에서 김치 담가 먹냐고 소리 지를 땐 언제고,
김치 담그면 연락해라도 아니고
맛 있게 되면 연락하라고???


지난 주에 배추 8포기 했거던요.
한 박스 10불 주고 사니까 12포기 들어 있던데
제가 그걸 다 할 엄두는 도저히 안나서 4포기는 위에 사는 한국 언니네 그냥 던져주고 왔어요.
김치를 담그던 썩어 내 버리던 알아서 하겠지 하고
가니깐 애들만 있던데, 응 아래층 '언닌데..' 함서  (곧 죽어도 내 입으로 아래층 아줌마란 소리는 안함) 이거 엄마 드려.
하고 숑 내뺐음.



지금 친구 을하고 막 통화를 했는데,


김치하면 연락하래매. 여덞포기 했다. 생각있어? 했더니
당장 토요일에 만나자고 하면서,


야 내가 그 귀한 김치를 그냥 얻어 먹을 순 없고,
집에서 담그는 김치 재료값 많이 드는거 내가 아니까...재료값 돈으로 줄까
아니면 맛 있는거 사줄까?


하길래,
재료값이 사실 상당히 중요하긴 한데, 그건 셋째 성이 충분히 해주고 있다고.
절임 소금 5킬로 짜리도 사다 주고
이것 저것 받아 가면서 그냥 가는 법 없이 얼마라도 찔러 주면
전 따박 따박 다 받거든요.


재료값은 셋째 성한테 이미 받았으니
너는 나 맛있는거나 사 줘.
몇 포기 원해?


했더니, 그래 그래 뭐든 말만 해라. 내가 사 줄께. 한 포기만 줘도 감사한데 두 포기 가능하니?


두 포기??
음..가능은 해. 내가 마음만 먹으면. 4포기 언니들 주고, 지금 집에 확보한게 4포기니깐.
넌 나의 오랜 친구니깐 내가 아까워 않고 주마.


야, 뭐든지 내가 다 사 줄테니까
먹고 싶은 거 생각해 놔.




아싸~~
갈뷔 먹어 버릴테닷!!!!!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뭐든 감사할 것 투성이죠.


공짜 식사 하나 꽈 놓고 이렇게 좋아하는 이쁜아짐.


18년을 친구라고, 이름만 그렇게 걸쳐 놓고
하는 일 마다 다아 걱정없이 풀린다고 막연히 질투를 해대던
이 못되 쳐먹은 이쁜아짐,
친구가, 야 그동안 나도 너 많이 부러웠어.
나도 말을 안해서 그렇지 힘든거 많았어,
하는 말 듣고야 마구 죄책감 느끼는 이쁜아짐.


성격이 워낙 좋아서 그간 아무 생각없이 사는 구나 했던 친구가
니 김치 얻어 먹고 싶으니 다른거 먹고 싶은거 아무거나 다 사 주겠다고 하는 말 듣고,
역시 난 참 인복이 많아. 하는
내 잘난척에 빠져 있는 이쁜아짐.


니네는 근데...나 정말 재수없지 않니?
왜 나랑 계속  친구하니?


했더니,


언젠가 친구 을 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너는 그래도 귀여워.
그런데로 친구할만 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더라고요.


세상에
정말 당연한 건 아무 것도 없다.


피붙이라고 내내 애정을 쏟아주는 형제들,
사랑하는 여자라고 힘든 순간에도 중심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나를 지켜주는 남편,
많이 싸가지가 없을지라도 우리 마지막으로 철없이 행동해도 됬을 그 시절
함께 그 시절 겪었다는 이유만으로 꾸준히 나를 옆에 두는
많지도 않은 달랑 두 명의 친구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이렇게 말이야...
이런데 칼럼은 아무나 쓰냐고요.
이렇게 출세를 해서
이렇게 엄청나게 인기 칼럼으로 유지하고자
혼자 대낮에 열나게 조회수 높일라고 팔목이 아프도록 혼자 클릭질 한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콧방귀도 안 뀌고 내 칼럼 읽지도 않은 친구들이지만...
야, 나 나름 유명해. 니네 너무 나 무시하는거 아니야?
하면,
금방, 알지 알지. 너 유명하지. 우리가 다 알지.
하고 달래 주는데...
저렇게 바로 나 댈래주는 것도 사실 찝찝하다는.
꼭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이런 말도 생각 나면서...



밧뜨, 그러나,
본론으로 돌아가서,,,,,,,,,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자.


많이 감사하고 많이 보답하고 살자.
사랑은 사랑을 부르는 법,
돈도 안드는 사랑이니
마음이나마 부자로 살자.


일단 친구한테  갈뷔 배 터지게 얻어 먹자.
인생이...
아마도 많이 매우 진짜 심하게 아름다워 보일 듯.


아우 좋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