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셋째 성 치과 치료 받는데 쫒아 갔다가 확실하게 남는 장사하고 왔어요.


셋째 성이 잇몸 수술을 하게 됬는데 같이 가주겠다고 하니
혼자 가도 된다고 그냥 집에 있으라고 하는걸 제가 우기고 우겨서
닭죽 쒀 가지고 들고 나갔거든요.


치과에 따라가야 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어머나, 잇몸 수술이면 음식도 부드러운거 먹어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막판에 들어 가지고 부랴부랴 삼계탕 하고 찹쌀 넉넉히 불려서 엄청나게 많은 양의 닭죽을 쑤어서 반을 담았더니,
유리 김치병 작은걸로 한 가득 나오더군요.
반은 우리집 걸로 남겨두고 김치병에 꽉꽉 채운 닭죽 들고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뚫고 접선 장소인 맨하탄 34가로 갭으로.


배가 고팠었던 관계로, 먼저 32가 고려당 가서 감자 고로케 3개 사고
돈 내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서 화장실 가서 응가도 시원하게 한 판 하고
손 깨에끗이 씻고 빵집을 나서서 갭으로.


치과 가자마자 고로케 꺼내서 먹기 시작하니 바로 언니는 치료실로 들어가고
하나 먹었더니 좀 아쉬워서 한 개 또 꺼내서 먹고.
가방에서 이클립스 꺼내서 읽기 시작했는데, 몇 페이지 읽지도 않은것 같은데
셋째 성 벌써 다 끝났다고 나오더군요.


집에 가자고 지하철 타서는, 내가 닭죽 해왔다~ 하고 병 보여줬더니
셋째 성이 감동받은 눈치.
제가 하는 음식을 받아다 먹는 것에 익숙하고 그렇다고 해서 당연하게 받아 먹는 법 없이
항상 고마워하고 재료값이다 뭐다 꼭 이것저것 쳐주는 셋째 성이지만
이번엔, 몸조리 차원의 음식이라 그런지 고마움을 넘어서서 감동하는 눈치더군요.


지난 주에 제가 김치 절이는 용도로 쓰겠다고 아이스박스 샀는데
그거 값이라고 30불 주고.
한 번은 체면 상 마음에도 없이 거절했는데...
내가 사제 김치 얻어 먹으면서 도구 협찬이라도 해야 면이 선다고 받으라고 하길래 냉큼 받고요.
제가 또 정치적인 처신을 아주 잘하는 면이 있어서
돈 손에 쥐자마자 바로,


아 맞다~
있잖아 미씨 속풀이 방에서~~ 며칠 전에 본건데, 마켓에서 김치 샀는데 있지,
글쎄 모래가 씹히더래.
국물 따라내고 봤더니 숟가락으로 반 숟가락이나 나오더래.
내가 맛은 그닥 그럭저럭이라도 집에서 김치 꼭 담가 먹는 이유가 그거라니깐.
내가 절이고 씻으니까 어떻게 이 김치가 만들어지는지는 최소한 아니까...
도대체 파는 김치 어떻게 만들길래 모래가 그렇게...아휴...


했더니만,
셋째 성이 제 왼손을 자기 두 손으로 꽈악 감싸 쥐더니,


동생아...정말 고맙다...
그런 공포에서 해방시켜 줘서...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의기양양하게, 받아 마땅한 돈 받았다는 듯이
30불 지갑에 깊숙히 넣었습니다.
유리병도 무겁지만 그 안에 죽이 꽉 차 있던던 고로,
무거우니까 언니 집까지 들어다 주겠다고 또 우겨서 셋째 성 집 가서 죽 내려놓고,
셋째 성이 그 동네 KFC에서 닭 사줄테니 집에 가서 신랑하고 먹으라고 해서
후라이드 치킨 또 낼름 받아 왔고요.
(제가 KFC 엄청 좋아해서 한 달에 한 번은 먹어줘야 해요)
KFC 가는 길에 드럭 스토어에서 메이블린이 바이 원 겟 원 프리라고
성님이 립글로스랑 파운데이션 사고 저도 옆에서 하나씩 받아 왔어요.


그래서 5불 짜리 닭 한마리 사다 죽 쒀서 들고 나가서 치과 가서 책 조금 읽고 왔더니
제 수중엔 50불 어치도 넘는 것들이 떨어졌습니다.



그러고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나머지 잇몸 반 쪽은 2주 후에 하기로 되 있다는데...
앞으로 최소 한 달은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할텐데 이거 맨날 닭죽만 먹으라 할 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전 워낙에 입이 고급이라, 아무리 맛 있는 것도 두끼 내리 안 먹는 사람이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도 한 가지로 내리 몇 끼를 먹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오우 노우~


그런데 제가 해 본 것이 닭죽 밖에 없어서, 검색을 했어요.
잣죽.  음..할 만 하겠다.
소고기죽. 그래...이것도 먹을만 하겠다.


해서 오늘 아침에 수퍼가서 재료 사다
잣죽 하고 소고기야채죽 했고요.
소고기야채죽은 제 입에도 잘 맞는 것이 (전 잣죽은 별로..)
저랑 신랑이랑 한 그릇씩 뚝딱 아침으로 먹었고요.


지난 주에 김치 가져간 친구한테,
사먹는 김치 유리병 혹시 남는거 있으면 가져다 달라고 했더니 큰 거 네 개 작은 거 네 개
이렇게 가져다 줬거든요.
작은 병으로 잣죽도 가득, 소고기야채죽도 가득. 했고요.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제가 콩죽도 한 번 해봤었던 거예요.
아 그래, 콩죽도 하자.
어렸을 때, 오이지 무침과 더불어 저 콩죽이 우리 외할머니의 트레이드 마크 요리였거든요.
언젠가 외할머니가 해주시던 콩죽이 먹고 싶어서 해 봤었던 사실이 기억이 나서
그럼 콩죽도 하자! 해가지고
불린 메주콩 삶아서 믹서에 갈아서 콩죽도 또 작은 유리병으로 가득!


저녁 때는 둘째 언니가 현경이 데리고 저희 집으로 오기로 되있었어요.
요즘 토요일마다 신랑이 현경이 튜더 해주고 있거든요.
오늘이 그 다섯 번째 세션이었고요,
셋째 성이 둘째 언니한테 고구마랑 소면 한 봉지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해서
저도 녹두 한 봉지 사다 달라고 했죠.


검색해 봤더니 녹두죽도 그리 어렵진 않은거 같아서...
현경이 공부하는 동안 녹두죽 하려고 했는데
둘째 언니가 버럭! 하더군요.
그만 하라고.


명색은 튜더링인데,
일단은 저희 집 들이닥치면 모두들 '배고파'가 인사인지라
저는 항상 밥 준비도 해 놓고 있어야 하거던요.
현경양 현영군 그리고 둘째 언니.
닭죽 데워 줬더니 세 사람이 아무 대화도 없이 몇 끼 굶은 사람들처럼..
뜯어 놓았던 닭고기도 데워서 죽 위에 얹어 줬더니 애들은 더 달라고 난리.


콩죽은 둘째 언니도 좀 싸줄 것이 되서 둘째 언니도 조금 주고,
잣죽하고 소고기야채죽은 몽땅 셋째 성한테로 싸 보냈고요,
역시나 경우 바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셋째 성은,
둘째 언니는 자기 장 봐준다고 고맙다는 뜻에서 갈비 한 팩,
저는 밥 하느라 수고 한다는 뜻에서 갈비 한 팩.
이렇게 사라고 일렀다는 군요.


그래서 저희집 찜갈비 좋은거 한 팩 생겼어요. 유후~~!
지난 번 갈비찜 먹은데 크리스마스 때 시댁에서 였는데
오랜만에 신랑 좋아하는 갈비찜 내일 해주려고요.


닭죽 데워서 퍼주고, 우리 집 이후로 셋째 성네 들릴 예정이었던 둘째 언니한테
제가 김치병 하나 하나 가르키면서
이게 잣죽이고 이게 콩죽이고 이건 소고기죽, 하고 설명을 했더니
가끔 한국말을 노인네처럼 하는 현경양 왈,


죽집해도 되것네.


현경 양이 신랑하고 공부하는 동안, 제가 나머지 군식구들은 방으로 몰아 넣고
저는 거실에서 같이 5분 대기조로 있거든요.
신랑이 직장을 잡게 되면 아무래도 튜더를 계속 못 해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되면 제가 받아서 해주려고
어떤 식으로 공부를 가르치나...이거 튜더링 염탐질 하느라고 저도 거실에 놓은
교자상 앞에서 책 펴 놓고 앉아 있어요.
책은 보는 척만 하는 거고, 주된 임무는 염탐질.


어느 덧 한 시간이 후딱 가서, 음식들 싸서 둘째 언니네 배웅 해주고 집에 들어 왔더니..
죽 쑤는거 별게 아닌것 같아도 그래도 세 가지 하고
거기다 튜더 하는 것 참견질까지 하고 났더니 노곤~~ 해요.


둘째 언니네 식구들 다 내보내고,
신랑이랑 둘이 눈 쳐다 보고 있다 둘이 통해 가지고..
지금 맥주 한 잔씩. ㅋㅋㅋ


인생이...혼자 가는게 맞고 이래도 외롭고 저래도 외롭고.
나는 나일 뿐, 남편도 남이고 어쩌고 저쩌고 고독한 인간의 존재,
홀로 서야 하는 인생,
고독한 인생.


하지만...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것,
가족이라는 것.
정말..감사한 존재. 정말...소중한 존재.
나를 외롭지 않게 해주는 사람들.
내 존재감을 일깨워 주는 사람들.


남하고의 관계 맺기가 어렵다고 생각되어 질 때,
남편은 어느 덧 나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 있고,
남하고 나누기에는 부끄럽고 어려운 상황에도 언니들은 내 옆을 지키는 베스트 프렌드들이고,
갑자기 우리 모르게 훌쩍 커버린듯한, 그래서 갑자기 낯설기까지 한 조카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니
나의 친구이자 나의 후원자인 남편은 또 선뜻 조카의 튜더를 맞겠다고 해서
나는 또 이렇게 일주일에 꼬박 한 번씩,
학교 생활 엄청나게 바쁘셔서 귀하신 조카양을 볼 수 있게 됬고.


지금 스테잇 와이드 시험 결과 발표가 가까워질수록 유급이 유력시 되는,
3학년이나 구구단도 못 외면서
시험 보고 와서는 자기가 최고 점수를 받을 것 같다고
씨알도 안 먹힐 뻥을 치는 현영군은,
(아니 우리가 저를 몰라??? 뻥을 쳐도 유분수지...)


이모를 보고 생글생글, 애교가 넘치고.
이모 나 바나나 하나만 먹어도 돼?
이모 나 스무디 먹고 싶어.
이모 김치, 굿이야.


하면서 작별 인사도 착착 달라 붙으면서 아주 쪽 소리나게 뽀뽀를 해주고 가더군요.
이모, 또 만나~~~아 윌 미쓰 유~~~
하면서.


2주 후에도 악착같이 셋째 성 치과 또 쫒아갈 참인데
그 땐 또 뭐가 얼마나 떨어지려나...기대 만빵입니다.


사랑은 좋은 것,
할수록 더 좋은 것,
가진게 없을 때 하면 더 귀한 것,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