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주로 쓰면서 집 전화 안 쓴지는 꽤 되었는데
제가 집 전화 끊으면 한 달에 30불은 절약 된다고 제안한 지가 거의 일년여인데
남편이 안 내켜해서 질질 끌다 지난 달에 마침내 끊었어요.

남편의 이유인 즉슨,
전화를 안 받을 자유가 집 전화에는 있다는 거죠.
일면, 스크리닝.
누가 전화를 거는지 응답기가 돌아갈 때 까지 기다렸다 (콜러 아이디 없음) 받고 싶으면 받고 받기 싫으면 안 받고.
집으로 전화를 거는 자기 쪽의 사람은 친구들, 누이들, 부모님.
핸드폰 번호로 직접 거는 사람들은 아주 친한 친구 두어명 밖에 없거든요.
집 전화는 안 받아도 집에 없었다는 핑계를 댈 수 있지만
핸드폰은 핑계 거리가 없지 않냐고 하면서.
현대 사회가 점점 프라이버시가 없어진다고 한탄까지.


일의 경우를 따지자면야 제가 집전화 없애자고 한 주장이 훨씬 타당하긴 하지만
제 마음대로 밀어 부치면 또 소심한 남편이 이 집안에서 자기가 가지는 결정권은 하나도 없다고 궁시렁 궁시렁 댈까 싶어서
저 사람 스스로 오케이를 해 올 때까지 기다린 시간이 일년여.
한 달에 돈 삽심불이냐 남편 자존심이냐로 저울질 하면서 버티다
이번에 핸드폰 2년 계약 바꾸는 참에 드디어 합의에 도달해서 지난 달에 전화 끊었어요.


3월 초에 전화 회사에 전화해서 한 달 고지서 끊어지는 시점에 맞춰 끊어 달라고 했더니
3월 18일 부로 끊어진다고 하더군요.
그동안 제가 한 일은, 저한테 집 전화로 전화하는 사람들한테 전화해서
18일 이후로는 핸드폰으로 하라고 알려주고
남편한테도 남편쪽 사람들한테 알리라고 한 마디 했고요.


집 전화 끊어지기 전에 알리는게 중요해. 안그러면 상대방이 기분이 많이 나쁠거야.


그래서 시어른들께 전화하면서 비상 연락망 개념으로 제 핸드폰 번호도 처음으로 알려 드리고.


여기까지는 계획대로 다 좋았는데,
전화 끊어지기 일주일 여를 앞두고, 정말 오래전에 연락을 끊었던 제 친구한테서
몇 년 만에 전화가 온 거여요.
그 날 따라 우리 신랑은 왜 전화를 받은건지...
그 때 쯤에 집전화가 좀 많이 울리긴 했어요.
안 받고 응답기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면 응답기 돌아가자 마자 끊고.
남편은 저 날에, 대체 누가 전화를 갑자기 이렇게 열심히 하나 궁금해서 받는다고 하고
전 좀 피곤했어서, 제가 저 날 그 말을 했네요.

나 지금 아무랑도 전화 통화할 상태가 아니거든.
내 전화면 나 없다고 해.

남편이 전화 받고는,

아니 이게 누구셔, 누구누구씨 정말 오랜만이야~~

하는데 제가 속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거의 10년을 내 언니들보다 친하게, 거의 매일 보고 살던 친구.
거진 매일 내 아파트로 퇴근해서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같이 맥주 마시고
밤 열한시나 되서야 자기 집으로 가던 친구 (둘 다 아가씨였을 때)

처한 상황이 비슷해서 그만그만한 고민을 같이 나눌 수 있어서 많이 가까울 수 있었던 친구
(뉴욕에서 아무 것도 없는 집 출신 이민자로써 사람답게 사는 길에 대한 고민,
어떡하면 아무 것도 없는 부모를 책임져 가면서 고소득자가 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이 영세민의 굴레를 벗어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영어를 영어답게 하면서 살 것인가 뭐 이런 고민들)

그러면서 둘 다 옷 가방 신발 이런 것들 좋아해서
우리 수준에 갈 수 있는 옷가게들 함께 돌아 다니면서 수다 떨고 구경하고 가끔씩 질러대고,

또한 술 좋아해서 맨날 둘이 얼굴 맞대고 마시고
마시다 취하면 춤추러 다니고.

또 한 술 하시는 우리 아저씨랑도 쿵짝이 잘 맞아서
맨날 셋이 내 아파트 앉아서 맥주 마시고 놀고.
그러다 제가 결혼을 했을 때, 신혼 여행 가 있는 동안 언니 집 열쇠 달라고.
결혼하고 이사도 못 가는 주제에 그래도 신혼집인데 '깨끗'이나 해야 할 것 아니냐고.
저 신혼 여행 가 있는 동안 와서 집을 확 디벼서 청소 해주겠다고.

제가 결혼을 하고도, 여전히 저 친구는 우리 집으로 퇴근.

그러다 저 친구도 결혼.
저 집 신랑도 무지하게 바쁜 사람이라 밤 열한시 열두시 퇴근 기본.
자기는 언니처럼 혼자 아파트 살다 결혼한게 아니고 엄마 아빠 동생이랑 살다 결혼을 해서 그런가,
빈 집에 혼자 들어가는게 참 싫다고,
자기 집이란 생각이 안 든다고 하면서 여전히 우리 집으로.
매일 오기는 미안한지 주중에 반은 자기 친정 집, 반은 우리 집.
저 집 남편이 퇴근 길에 자기 색시 픽업해서 집으로 가는 패턴.

며칠 안 왔다 싶으면, 어느 날 전화해서 아주 당연한 듯,

언니, 맛 있는 것 좀 먹자. 엄마가 해주는거 며칠 먹었더니 입맛 없어서 괴롭다.

(자기 엄마는 음식 못 한다고, 자기도 엄마 닮아서 뭘 해도 맛이 없다고 그게 저 아이 대사)
언니 밥 며칠 안 먹으면 입맛이 없다고.
그래 봐야 우리 집도 김치에 카레. 뭐 이게 다인 수준인데.
어쨌든 와서 밥 먹고 밥 먹고 나면 맥주 마시고.
이게 생활이었어요.

많은 부분이 둘이 서로 거리낄게 없이 잘 맞는 사이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저 친구가 다른 사람들한테는 '차갑다'는 평을 듣는 그런 성격.
자기 엄마나 여동생도 그 말을 제일 많이 한다고 하더군요.
사람이 차다고.

저는 '차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다혈질'에 '욱하면 제대로 드러운' '지 수 틀리면 아무 말이나 막 하는' 뭐 이런 쪽.
저는 사람을 사귈 때, 저랑 다른 성격의 사람을 또 기본적으로 좋아해요.
여자가 좀 깍쟁이처럼 보이고 새침해 보이고 이런 것 저는 좋아 하거든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귀엽고 매력적이고 호감가고.

나는 성격이 이래서, 나와 마주 앉은 사람한테 거칠것이 없이 내 보이는데
저 쪽은 나와는 다르다고 해서 그런 것에 실망하고 상처받은 적은 없어요.
이건 내 성격이고, 저건 저 사람 성격이니까.
제가 견디기 힘든 것은, 내가 봤을 때 나를 예의없이 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예요.

예를 들면,
시간 약속 밥 먹듯이 어기는 사람.
약속 시간에 예사로 늦는 사람. 그러고도 당연한 듯 행동하는 사람.
가까운 사이라고 지켜줘야 할 것들 무시하고 무례하게 하는 사람.
잘난척이 뼈 속까지 스며 있어서 말 싸가지 없이 하는 사람.
(기껀 세일하는거 잘 건졌다고 새 옷 입고 나갔더니, 그거 유행 지난지가 언젠데 막차 탔네? 이런 식.
내지는, 야 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런데 옷을 입니. 돈 좀 써라.
저런식으로 항상 말해서 끊은 사람도 진짜 있어요.)


저 친구는 다른 사람한테는 차갑다는 소리를 들어도 적어도 나한테는 차갑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문제 될 것 없었고.


저 친구의 엄마, 아빠와도 저는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정말 피는 안 섞였지만 거진 '한 식구' 개념으로 그렇게 오래 잘 지냈어요.
제 친구는 고스돕을 못 치는데 친구 엄마 아빠는 남는 시간에 두 분이 항상 맞고.
그래서 가끔 제가 집에서 동전 모은 보따리 차고 가서 셋이 고스돕도 쳤고요.
친구 엄마가 한국 나가셨을 때, 제가 그 집 가서 아버지 드시라고 밥도 한 번씩 해 드렸고.
저는 먹지도 않는 간장게장(저는 빨간것만 좋아해요. 매운거.)
셋째 성 먹여 볼라고 담가서는 반 덜어서 저 친구네 갖다 주고. 엄마 아빠 맛이나 보시라고.


친구 엄마가 드셔 보시고는, 그러시더랍니다.


얘가 손 맛이 있는 앤데....미국 남자랑 결혼을 해서 너무 아깝네.
이런 걸 한국 사람이랑 해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래서 제 친구가,

걱정을 하덜 마. 그 집 아저씨, 그 언니가 먹는건 다 먹어.
맨날 한식만 해 먹고 사는데 뭘.

당신 딸은 차갑다고 서운한 마음이 있는 친구 엄마라 저 많이 이뻐하셨죠.
칭찬도 듣고, 욕도 먹고.
둘이 아가씨일 적에 밤새 술 마시고 나이트 가고 그러고 친구가 새벽에 들어가고
그 다음 번 쯤에 엄마 마주하면 저한테

'웬 기지배들이 그렇게 술을 쳐먹고 다니냐.
술 좀 작작 쳐 먹어라 이 년들아
말만한 년들이 시집은 안가고 맨날 술이나 쳐 먹고 다니고'

그럼 저는, 말 돌리는 것 밖에 할 말이 없으므로,

'엄마, 한국에서 가져오신 오징어 이제 없나요? 마켓에서 사는건 맛이 없어서...'

그럼 그 집 냉동실에 마지막으로 남은 쥐포라도 한 마리 얻어 먹고 나오고.

아빠는 또 정말 말이 없으신 분인데...
정말 말이 없어서 수다스러운 엄마가 맨날 심심해 미치겠다고 불평하시고
하루 종일 정말 서너마디 밖에 안하신다고.
그러신 분이 저 결혼 한다고,
시간대가 좀 애매하긴 한데 싸게 하느라고 그런 시간 잡았으니 꼭 오셔야 해요. 했더니


'가야지. 큰 딸 결혼인데'


저 친구 엄마는 활달하고 거침없는 성격 탓에 제 결혼식에 오셔서
신랑, 신부 옷 갈아 입는데까지 그냥 막 들어오셔 가지고 제 신랑한테
한국말로 계속 다다다다~~ 한복을 그렇게 입는게 아니지. 그걸 이렇게 올려야지.
신랑 옷 갈아 입다가 친구 엄마 뛰어 들어오시는 바람에 식겁하고.

그 날 무슨 이유인지 계속 어두운 얼굴로 그냥 테이블 앞에 앉아만 계시던 노 여사 제치고
친구 엄마가 결혼식 장 구석구석을 하도 활달하게 활보 하셔가지고
잘 모르는 신랑 하객들은, 제 친구 엄마가 장모인줄 알았다는ㅋㅋㅋ


그랬던 친구였는데,
저 친구가 자기도 결혼을 하면서 부터
저를 크게 삼세번 실망을 시켰어요.

내 친 언니들 보다 더 자주 보던 친구와의 10년 관계를 청산하는 데에는
그저 '기분 나쁨' '삐짐'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밖에는 저도 저 친구에 대한 예의로 그 것 밖에 말 못하지만,
저로써는 정말 너무나 크게 한 번 허탈.
옆에서 남편이 '당신이 이해해요' 라고 해서 넘어가고,
좀 있다 더 크게 허탈,
'그래도 친구가 미안해 하잖아요. 한 번 더 용서를 해요'
삼 세번째 제가 그랬어요.


나 이제 이 관계 진짜 접는다.
또 말리면 이번엔 당신이 국물도 없어.


울 신랑 얼굴 하애져 가지고....ㅋㅋㅋㅋㅋ


그렇게 끝이 났어요.


너 나한테 이러는거, 내가 너 이해하기엔
내가 너무 축난다.
너 너대로 잘 살고, 나 나대로 잘 사는 쪽으로 하자.


저게 3년 전이예요.


3년 만에, 정말 생각지도 않게 전화가 와서, 그 전화를 남편이 받고.
남편한테 그러더래요.


전화해서 미안하다. 그런데 아 미쓰 유 가이즈 투 머치...


신랑은 엄청 발랄하게 전화를 받더군요.
지금 어디 사는지, 일은 어디서 하는지, 친구 남편 안부도 묻고,
연락처 달라고. 
한참을 즐겁게 전화 통화하고 끊더군요.


그럼서 제 눈치를 보는 거예요.

쉬 싸운디드 라잌 쉬 뤼얼리 미쓰 유.

그 사이, 아이는 둘이나 낳았고, 집은 어데로 이사를 갔으며, 학교 공부 마치고 지금 일은 어데서 하고.
저한테 블라블라블라 보고해 주고.


저는 그랬어요.


나도 그 애와 10년 추억이 창창한 젊은 날 추억의 거진 다야.
힘들었고, 우울했고, 그래도 희망이 있었고, 재밌었고.
그런데...망가져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잖아?
추억 때문에 미련 가지고 다시 시작하긴 싫어.


어느 날, 그 친구가 했던 말.
제가 몸이 많이 아팠어서 일 그만두고 생활비는 카드로 땡겨 쓰고 (딱 지금처럼ㅋㅋㅋ) 있을 때
날 좋으니 공원가서 햇빛이라도 쐬자, 해서 우리 동네 공원가서 자리깔고 누워 있는데
그러더군요.


난...돈 없는건 별로 걱정을 안 하는데....
돈이 없어도 좋으니까 시간이 지금처럼만 됬으면 좋겠어.
앞 일이 불안해도 아직은 젊다는 생각으로 위안이 되는 거.
늙지 않고 지금처럼만 이러면, 난 돈 없어도 좋을것 같아.
돈 없어도 그냥 지하철 타고 여기 오면 이렇게 언니랑 썬탠이나 하고 누워 있을 수 있는거.
이렇게 영원했으면 좋겠어.


그 친구는 정말 세상을 치열하고 열심히 살았어서,
저처럼 맨날 말로만 생각으로만 미래를 개척하는게 아니라 정말 행동으로,
들어가기 힘든 학교 척 들어가고 잘 졸업하고 지금 치과 선생님 됬어요.


남편한테,

세상엔 수선이 가능한 관계가 있고, 수선이 불가능한 관계가 있다고 보거든.
나는 그 애와는 관계는 그냥 아쉬운 추억으로 남겨놓는게 옳다고 봐.
그런데 왜 지금 다시 전화를 했을까...
일주일이면 집 전화 끊기는데...
혹시 또 전화 했다가 집 전화 끊긴거, 자기가 전화해서 끊었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그런 오해로 그 애한테 불필요한 상처까지 주는건 싫은데 말이야.
마음이 좀 안 좋네.
그래도 있잖아. 그 애랑 나랑은 여기까지 좋아. 난 내가 3년 전 그 때 한 선택이 아직도 옳았다고 봐.


그렇게 얘기를 하고.


근데 나 왼쪽 어금니 지금 다시 아프네..
이거 돈 꽤 들텐데.


남편은 옆에서


나도 오른쪽 어금니 아픈데...


내가 한 달 30불이냐 남편 자존심이냐, 와의 싸움에선 남편 자존심으로 마음을 기울였었지만,
치과는...이게...한 두푼도 아니고,
보험도 없어 놓으니...


이는 또 왜 부부가 세트로 아프고 지랄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