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첫 급여도 받았고요, 이게 꽉차게 4년 만의 일이어요.
이쁜아짐이 생활 전선으로 다시 뛰어든게.
몇 년을 놀다 첫 출근 하는 날, 아침에 뉴욕에 천둥이 치고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셋째 성이 참 안됐다, 속으로 생각했다나요?
그런데 제가 그랬지요.

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놀러가는 날 천둥 번개 치는게 기분이 더 더럽지, 일하러 가는 날 비가 오니 얼마나 다행이야~

참으로 오랜 만에 러시아워의 뉴욕 지하철을 타고 제가 저 날 아침에 한 생각은,
종교가 없는 사람으로써 어디다 딱히 정하고 빌 데는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 속으로 계속 주문처럼 외웠던게,

오늘 첫 날, 무사히 잘 일 할 수 있도록 저게에 육체적, 정신적 힘을 주세요.

첫 날 부터 어려운 고비가 있긴 했지만 아주 아주 만족스런 결과를 가지고 일 잘 마쳤고요,
두번 째 날 세번째 날, 드디어 집에서 놀던 사람이 갑자기 일해서 생기는 당연한 육체적 피로 때문에 좀 고생 했는데, 네 번째 날부터는 몸이 적응을 하기 시작하는 것 같더군요.

도시락도 열심히 싸서 점심 밥도 든든히 잘 먹고 다니고 있어요.

역시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문제가 가장 관건인데, 다행히 지금껏은 내가 감당 못할 만큼의 큰 스트레스의 징후는 아직 없습니다.

다들 오랜 만에 다시 일 시작해서, 피곤하겠네, 어쩌누, 걱정들을 많이 했는데
몸은 피곤은 해도 마음이 편해져서 정말 좋습니다.

첫 출근 앞두고는 일 시작하기 전에 남편하고 미리 확실히 해두고 싶었던 것들 얘기도 했고요.

하나는,
부부 백수 되면서 불가피하게 중단했던 노여사 용돈 드리기,
제가 이번 달 부터 당장 재개하고 싶다고 말을 했어요.

노여사 용돈 드리기는 제가 결혼 전부터 하고 있었던 거라
남편과 결혼을 약속하면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중 하나였어서 이미 그 때 확답은 받아 놓은 사안이긴 하거던요.
엄마 용돈 만큼은 엄마 살아계실 때 까지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라고.
미국인인 당신 입장에서는 왜 자식이 부모한테 용돈(monthly allowance)을 드려야 하는 건지 개념이 없을 테고 이해 하기도 힘들겠지만
당신 상식과 문화로 안되는 이해를 억지로 하려고 하지는 말고 그저 당신 부인이 꼭 하고 싶어하는 일이니 동의를 해주면 내가 참 고맙겠다,
라고 얘기를 했었거든요.

이러니까 제가 무슨 대단한 효심이 있는 딸 같은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는 않고
많이도 아니고 한 달에 꼴랑 2백불씩 드렸어요.
흥청 망청 하고 싶은거 다 하고 살 때 엄마 용돈 한달에 백불 정도는 더 드릴 수 있었는데
그런다고 내가 쓰고 싶은거 못하고 살 건 아니었는데 그 때도 딱 2백 불.

부부 백수되고 내가 하던 것들, 크고 작게 많이 못하게 된 것들 중에서
노여사 용돈 끊은 스트레스가 상당 했거든요.

내가 한 달에 가져올 돈,
거기에서 꼭 나가야 할 돈,
공책에 써 가면서 전자 계산기 두드려 봤더니
집세, 전기세, 전화세...기타 등등에 엄마 용돈, 해서 다 하고 나니
식비와 잡비로 쓸 수 있는 돈, 365불 남더군요.

저는 사실 살림을 하면서도 저희 두 사람 한 달 식비가 얼만지 대충도 몰라요.
제 생각엔 잡비라고 하면 샴푸니 비누니 치약이니 이런 것들이고
식비까지 저 정도 액수면 빵꾸 안 나고 될 듯도 한데, 한 번 해 봐야지요.
생활비라는게 계산한대로 꼭 되지는 않다는 건 알고는 있어요.
저기에서 제가 몸이 허락한다면 일하는 시간을 좀 늘리면 추가 2-3백 불 정도 수입이 늘 수도 있고
아무튼 지금 현재 고정급으로 계산을 하니 저 액수가 됬어요.

그래서 남편한테 브리핑을 해주면서, 엄마 용돈 다시 시작했으면 한다,
그 동안 내가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지금 우리 상황에도 2백불이 중요하지만 늙은 엄마한테는 그 2백불이 더 요긴하다,
우리가 비록 깔린 빚이 엄청 나지만
내가 버는 돈으로 우리 두 사람 생활비는 나오니
당신이 직장을 잡으면 금방 빚 갚을 수 있을 테니 일단 엄마 용돈은 당장 했으면 내 마음이 한결 편하겠다,

설명을 찬찬히 했더니 남편도, 그럽시다, 해서 문제 하나는 쉽게 합의에 도달했고요.

두 번째 제가 한 부탁은,
내가 일하는 날, 제발 굶지 말고 혼자 저녁까지 해결해 줬으면 한다, 였어요.

당신이 알다시피 내가 건강하게 살려고, 위장 보호를 위해서
살을 깎는 노력으로 늦은 저녁을 안 먹은지가 지금 반 년이 넘어가고 있으니
나는 집에 와서 저녁을 안 먹을 건데
일하고 들어와서 당신 저녁 따로 못 챙겨 준다.
당신이, 배가 고프다, 든지 집에 먹을게 뭐가 있나...?, 이런 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스트레스니 아예 안 듣게 해줬으면 좋겠다.

남편이 노력하겠다고 하더군요.

지금껏은 잘 하고 있는데 요건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잘 할건지.
워낙에 밥을 잘 안 챙겨 먹는 사람이라..
자기 일 다닐 때는, 아침 굶고, 점심은 오후 서너시 되서 대충 먹거나 이 조차도 안 먹는 날도 있고, 집에 와서 저녁 한 끼 먹기도 계속 배가 안 고프다고 우기다가
열시 열한시 되서, 집에 먹을게 뭐가 있나...., 이런 식으로 하던 사람이라.
제가 저렇게 늦은 시간에 저녁 챙겨 주는거 굉장히 귀찮았거든요.
그래도 아홉시 쯤에는 먹고 소화도 시키고 그러다 자면 좋으련만 꼭 배 안 고픈 척 하다가
저는 침대에 누워서 잘 준비할 시간 되서야 배 고프다고 하면
제 입장에서는 저녁을 안 챙겨줄 수도 없고 챙겨주자니 귀찮아서 화딱지 나고.
나도 저 시간에 먹는 날이 다반사이긴 했어도
내가 나 먹을 거 챙겨 먹는건 해도 남 챙겨주는 건 왜 그리 귀찮은지.


남편 일 그만두고 나서는 제가 매 끼니 잘 챙겨 먹여서 살 토실토실 올려 놨거든요.
셋째 성이 어쩌다 저희 집에 놀러 와서 남편보고 갈 때 마다 한 말.

니네 신랑은 아주 뽀동뽀동 살이 올랐더구나.
엄마 젖 먹고 젖살오른 애기처럼.
집 밥 얻어 먹는게 그렇게 좋은거야.


일을 하면서는 예전처럼 집 밥 해 먹는 것에 공을 들일 수는 없지만
셋째 성하고 한 약속은,

다른 거 다 못해 먹어도 김치 만큼은 계속 담글 거니까 안심하도록.

셋째 성은 거진 떨리는 목소리로,

동생아...정말 고맙다...

남편한테도 해 먹으라, 밖에 음식 절대 사 먹지 마라, 이런 뜻은 아니고
제가 집에 있는 날, 자기가 챙겨 먹을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음식을 해 놓을 참이예요.
카레라든지, 찌개라든지, 데워서 먹을 수 있는 음식.
이건 제가 남편을 지극 정성 수발 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고
그 누구든 밖에 음식을 주 끼니 해결 수단으로 삼거나, 냉동 음식을 자주 먹는다는 사람 보면 항상 제가 오지랖 넓게 하는 건강 걱정 때문에
할 수 있는 한은 남편이 정크 푸드나 냉동 음식 덜 먹는게 나에게도 정신적인 행복이라
노력해 보려고요.

저도 밖에 음식 먹기 싫어서 도시락 실하게 챙겨 가거든요.

남편한테 내가 이 정도 성의를 보일테니 제발 쫄쫄 굶지 말고 좀 챙겨서 먹어라,
이게 제 부탁이요.

제가 주에 5일을 일 한다면 이틀 쉬면서 저렇게 못하겠지만
시간은 하루에 길어도 몰아서 하기 때문에 쉬는 날이 3일에서 4일도 될 수 있고 그렇거든요.
그래서 이틀 정도는 내 몸을 위해 안정을 취하고 하루 정도 음식을 몰아서 하면
예전처럼 잘 해 먹지는 못해도 내 도시락이랑 남편이 밖에 음식 덜 먹을 수는 있게끔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김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담그면 될 것 같고요.


두어 달 전에 친구가 저희 집에 와서 김치 가져 가고 그 날 저녁에 잘 먹겠다고 전화를 해서는
깜짝 놀랐다는 거예요.
너나 너네 신랑이나 둘 다 표정이 너무 밝아서 자기가 속으로 정말 깜짝 놀랐다고.


걱정 한다고 안되는 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우거지 죽상하고 살면 뭐 하냐고,
우리는 옛날보다 지금 사이가 더 좋아.
둘이 하루 종일 얼마나 하하 호호 웃고 사는데~ 했더니
친구가 너무나 걱정된다는 목소리로,


야, 이쁜아, 사람이 긍정적인 것도 좋은데...너네 좀 너무 대책없는거 아니니?


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저 친구가 김치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하루 저녁 사준다고 나오라는데 무려 두 달을 제가 집구석에서 나가질 않았어요.
그리고는 저 일하게 됬다고 기쁜 소식을 전했더니,

너는 집에 있을 때도 저녁 한 번 먹자고 하는 걸 그렇게 안 나오는 애가 이제 일까지 하면 우리는 언제나 보니?


그래서 제가 노력은 해 보겠다고 했는데 친구가 저 말을 믿지는 않을 거예요 아마.
제가 워낙에 동네 벗어나는 걸 싫어한 생활이 오래 되서 일까지 하면서 일부러 외출을 하겠어 쟤가 설마. 이러는 눈치.

예전엔 해 뜨는 거 보고 집에 오는 날이 다반사일 정도로
술집에 나이트에 노래방에
24시간 영업 설렁탕 집에 들러 해장까지 하고 나서야 집에 기어 들어가던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집순이가 되었는지...


제가 일을 잡은 건 우리 부부한테는 참으로 숨통이 확~ 트이는 일이지만
이 와중에 남편은 남자 자존심이라는게 있어서 살짝 침통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고요,
제가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지금 우리가 얘기한대로 나는 내 일에 충실하고 당신은 당신 일에 충실하면
직장이 오늘 내일 안 잡아지는 결과에 대해 너무 의기소침 하지 말라고.
당신이 하기로 한 당신의 할 일을 열심히 해주면 (구직 노력) 나는 그걸로 됬으니까
당분간 마음 편하게 가지라고요.


지금 벌써부터 자기 아버지한테 '찌질이' 소리 들을까봐 그 스트레스 받고 있거든요.
소심한 사람이 너무 걱정을 하길래,
혹시라도 아버님이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당신도 당당하게 말해.

나는 지난 3년을 혼자 일 했다고요!
그 3년 동안 난 저 사람 하고 싶다는거 다 할 수 있게 해줬다고요!

라고.

부모님이야 내 건강이 걱정스러우셔서 이런 저런 얘기 하실 수 있는거고,
나에 대한 사랑으로 그러시는 거지 당신이 미워서 그러는게 아닐 거다,
그건 부모니까 당연히 할 수 있는 소리라고 그렇게 듣고 넘겼으면 좋겠다,
자식 걱정을 부모가 하지 그럼 누가 하겠느냐,
우리가 잘 하고 있다고 그렇게 안심시켜 드리면 된다.


살살 달래줘 가면서...
노여사는 제 취직 소식에 아주 활기가 차셔 가지고는 잘 됐다고 하시고
몸이 많이 힘들지는 않냐고 하셔서 제가 할 만 하다고 했어요.
사실이 또 그렇고.
시작 전에는 저도 사실 걱정이 많이 됬었는데 생각보다 몸이 잘 버텨주고 있어요.
마음이 편해지고 의욕이 생기니 정말로 그 좋은 기운이 몸으로도 가는 것 같고.
홍삼 잘 챙겨 먹고 있고요.

치과 잇몸 치료는 반쪽이 아직 남았는데, 지난 번에 하고 와서 좀 힘들었어 가지고
일이 좀 적응되서 몸이 덜 피곤해지면 마저 하려고 어제 약속이 잡혀 있었는데
일주일 뒤로 미뤘네요.
차근차근 하나씩 해결하려고요.


작년 10월에 한참 남편이 미워서 마음이 많이 힘들었을 때,
짐 싸가지고 셋째 성네로 도망가 버릴 마음까지 들을 정도로 남편이 밉고 무능력해 보여서 싫었는데
그 위기를 극복하고 나니 내가 생각 고쳐먹길 잘 했구나 싶어요.


대체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뭉갤 참인지,
일년이 되간다 인간아,
다시 직장을 구할 생각은 있기나 한건지,
마누라가 수술까지 하고 와서 이 모양이면 퍼뜩퍼뜩 다시 돈 벌어와서 그 걱정이라도 덜어 줘야지,
대체 내가 이 걱정하느라 몸조리도 못 하겠다,
무슨 남편이 이 따위냐.
이런 한심한 인간 같으니라고!!!


저런 생각으로 10월을 꽉차게 한달 제가 마음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러다간 울화 때문에 속이 뻥 터져 버리겠다 싶어서 짐싸서 도망 가려다가 생각해 보니
셋째 성은 무슨 죄로 결혼까지 한 동생을 먹여 살려야 하는지
내가 인간의 탈을 쓰고 저기 가서 엉겨 붙으면 안돼지 암만.

그래서 울화의 방향을 다시 잡은게,
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 하는 주체를 내 자신으로 두어야지 남편으로 두면 안되겠다.
나는 지금 내 몸 상태로 할 수 있는 일, 파트타임이라도 잡는데 주력하고
남편 구직 일은 남편의 몫으로 일임을 해 버리자.

남편이 이 상황을 전적으로 구제해 주길 바랄 때는 마음이 지옥이 따로 없더만
저렇게 생각을 고쳐 먹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요.
역시나 사람이 하는 일이 다 계획대로는 안되서
생각보다 더디게 제 일이 잡혔고 남편은 아직도 구직 중이지만
지난 해 연 말 그리고 올 해의 반, 둘이 아주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사이 좋게 보내 왔어요.

일 하고 부터 온 식구가 매일 매일 전화 하면서 제 일 얘기 들으면서 좋아하고 기뻐하고 재밌어 하고.


앞으로 지금 하는 일을 꾸준히 무탈하게 장기적으로 소화하는게 중요하지만
오랜 만에 일을 다시 시작한, 지금의 초심은,


나에게 일자리가 생겼다는 감사함,
그리고 그 일을 한 댓가로 받는 돈이 우리 두 사람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 액수라는 내 자신에 대한 뿌듯함.
내가 일을 시작함으로 온 식구가 활기를 찾았다는 즐거움.


역시, 내 행복은 내 손으로 만드는 거였어.
내 생각이 옳았어.
이쁜아짐 화이팅!!!